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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남는 중기부의 ‘중고차 버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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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지켜야 하는 법 규정이긴 한데, 안 지켜도 불이익은 없는 규정이 있다. 일반 시민 입장에서 ‘안 지켜도 그만인 의무’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에겐 ‘권고 조항’이란 게 그 대상이 된다.

요즘 경제 뉴스에서 거론되는 권고 조항 논란이 있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 가능 여부를 둔 정부의 결정 시한에 대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중고차 매매 시장에 대한 대기업의 진입을 막아왔다. 이 시장의 영세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에 대한 유효 기간이 지난해 끝났고, 정부는 다시 소규모 판매자 단체들의 신청을 받아 대기업 진출 제한 규제를 5년 더 연장할 지 검토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 매매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현대차 등 이 시장을 노리는 대기업은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를 사전 심사하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대기업 진출을 막는 건 부적합하다’는 취지의 추천의견을 내면서 중기부의 고심이 깊어졌다. 고심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6개월이다.

노트북을 열며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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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시한이 끝나고(올해 5월) 반년 정도가 더 지났지만 중기부의 공식 답변은 “아직 논의중”이다. ‘동반위 의견을 받은 뒤 최장 6개월 안에 결정하라’는 규정은 있지만, 결정을 미룬 데 따른 벌칙 등의 강제 이행 조항은 법에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중기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해 관계자 의견 수렴을 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업규제 3법’ 등 경제·노동 관련 법안 토론이 벌어지는 수준과 비교하면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중기부의 결정 보류 상황을 쉽게 납득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이미 찬반 양측의 공개된 입장과 논리는 차고 넘친다.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본다. 대기업 진출 여부에 따라 중고차 가격 판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구입·판매 시점을 두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시장 신규 진입을 고민하는 다른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진입을 열거나 막아야한다는 양측 논리는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다. 찬성 측은 경쟁 활성화와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하고, 반대 측은 소상공인의 생계 문제를 호소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결단을 내리면 찬반 어느 한쪽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인심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걸 감당하고 이에 대한 보완책을 내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누군가의 정치적 전략은 아닐 거라 믿는다.

최선욱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