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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맹신적 팬덤 정치, 2022 한국 대선도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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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 한국에 주는 교훈

지난 7일 미국 오리건주 세일럼에 위치한 주의회의사당 앞에서 트럼프 지지자(가운데 왼쪽)와 바이든 지지자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AP=연합뉴스]

지난 7일 미국 오리건주 세일럼에 위치한 주의회의사당 앞에서 트럼프 지지자(가운데 왼쪽)와 바이든 지지자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AP=연합뉴스]

미국 대선에서 드러난 지지층의 ‘영끌’ 현상은 2022년 한국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두 진영 모두 역대 최다 득표 기록을 갈아치우고 투표 후에도 비난과 폭력이 난무하는 ‘치킨게임’을 벌였다.

미국, 트럼프식 반자유·반지성 #갈등 조장해 민주주의 위협 #한국도 ‘내편 말고는 적’ 팽배 #“이견 인정, 합의로 문제 해결을”

극단 정치의 큰 책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 민주주의의 룰 자체를 무력화 시켰기 때문이다. 크게 3A로 요약된다. 반자유주의(Anti liberalism), 반지성주의(Anti intellectualism),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가짜뉴스)다.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의 표현대로 ‘가짜 민주주의’ 현상이다.

스나이더는 트럼프가 러시아 댓글부대(IRA)의 가짜뉴스 덕을 톡톡히 봤다고 주장한다. 그는 “IRA 콘텐츠는 3억4000만 번 공유됐고 1억2600만 명이 접했다”며 “주로 혐오와 분노를 조장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당선 뒤에도 트럼프는 비판을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대안적 사실’이라며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야스차 뭉크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트럼프를 다양성과 관용, 소수 배려가 사라진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전형으로 꼽았다. 그는 “민주주의 위기의 대표적 사례”라며 “자유세계의 동맹국보다 독재정권을 선호하고 헌법 규범들을 공개적으로 멸시한다”고 비판했다(『위험한 민주주의』).

잘못된 코로나19 대응처럼 전문가 의견과 과학적 사고를 무시하는 반지성주의도 문제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치코 가쿠타니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명백한 거짓말까지 합리화 한다”며 “사실에 대한 무관심, 이성을 대체한 감성, 좀먹은 언어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3A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맹신적 ‘팬덤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증거에 기반 한 이성적 논의, 이견을 받아들이는 다원성이 팬덤엔 존재하지 않는다”며 “상대를 쓰러뜨려야할 적으로 규정하는 한국의 진영 논리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은 광화문과 서초동, 토착왜구와 주사파, 친문과 반문 등으로 나뉘어 정당부터 시민사회까지 두 개의 세력으로 수직 계열화 돼 있다. 윤성이 한국정치학회장은 “정치세력이 다양한 이익과 갈등을 대의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략적 이슈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고 지지층을 결집한다”고 분석했다. ‘편향성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 전략이다.

팬덤을 기초로 동원된 두 세력 사이엔 이성과 합리가 숨 쉬지 못한다. 합의와 토론보다는 ‘너 죽고 나 사는’ 목숨 건 투쟁만 존재한다. 안병진 교수는 “자유주의와 법의 지배(rules of law) 같은 민주주의 규칙들이 무너졌다”며 “2022년 대선은 미국 못지않은 갈등이 예상 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촛불정권에 이런 가치를 기대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해결책은 조 바이든 당선인의 일성처럼 ‘통합과 치유’다. “서로를 적으로 가르지 말고, 상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치인뿐만 아니라 3A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통령 당선인 카멀라 해리스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게 아니라 행동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만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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