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출국으로 대미외교 시동···정작 '바이든 채널' 안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08 17:59

업데이트 2020.11.08 18:26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고 있다. [뉴스1]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7일(현지시간) 승리를 확정 지으면서 정부도 본격적인 대미 외교라인 가동에 돌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8일 오전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하며 “두루두루 의회나 학계 쪽 인사들을 많이 만나 유익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초 9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한·미 장관회담을 여는 게 핵심 일정이었지만, 바이든 당선인 측과 민주당 인사들과 접촉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 됐다. 이와 관련, 차기 정부에서 각각 국무부, 국방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과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정책 차관을 만나는 일정도 추진되고 있다.

다만 강 장관은 현 트럼프 행정부를 의식한 듯 “일정 자체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가서도 계속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방미에는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동행했다.

정부는 가급적 빨리 바이든 당선인측에 대북 정책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문제는 소통 채널 부족이다. 당장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정책 좌장인 앤서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이나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과의 직통 채널을 갖춘 인사가 정부 내에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미 외교 최전방인 워싱턴 주미대사관 관계자들조차 바이든 캠프의 핵심 관계자들을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장벽이 높아진 건 바이든 캠프가 해외 인사와의 접촉을 엄격히 단속하고 나선 영향도 있다. 한 소식통은 “대선 기간 캠프에 '외국인 접촉 금지령'이 내려진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외교 소식통도 “설리번 전 보좌관 같은 이는 힐러리 캠프 시절부터 접촉이 쉽지 않았다”며 “당선이 확정된 이번에는 더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캠프의 '외부 문단속'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례를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24일 만에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 측과 내통한 혐의로 사퇴하며 도덕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더구나 바이든의 승리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 소송에 나서는 등 유례없이 불확실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어 이런 경향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마음이 급한 정부로선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대미 채널 부족 현상은 내부에서 자초한 면도 크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그 자신이 상원 외교위원장·부통령으로 재직한 외교 베테랑이다. 그만큼 국내 인사들과의 접촉 반경도 넓었다. 하지만 현재 정부 고위급은 물론 실무라인에서도 뚜렷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위급 중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한통에 가깝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바이든 당선인과의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박지원 국정원장 정도가 젊은 시절부터 안면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 1차관ㆍ북미국 등 실무라인은 더 심각하다. 과거 오바마 정부 때 활동했던 이른바 '워싱턴스쿨' 외교관들이 외교부 내에서 자취를 감추면서다. 워싱턴스쿨의 핵심 라인 들은 지난 정권에서 대미 외교에 전진 배치됐다는 이유로 적폐로 몰려 줄줄이 퇴직하거나, 외곽으로 밀려나 있다. 특히 핵심인 북미국장 출신은 전멸에 가깝다.

지난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앤서니 블링컨 당시 국무부 부장관(왼쪽)과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현 국회의원). [중앙포토]

지난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앤서니 블링컨 당시 국무부 부장관(왼쪽)과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현 국회의원). [중앙포토]

일례로 지난 정권에서 블링컨 전 부장관의 카운터파트였던 조태용 전 외교부 1차관(현 국민의힘 의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NSC 1차장을 지낸 이력 탓에 문 정부의 외교 자원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조현동 전 주미대사관 공사, 장호진 전 북미국장도 퇴직 수순을 밟았다. 현직에 남아있는 이들 가운데는 김형진 서울시 국제관계 대사, 여승배 국무총리실 외교보좌관, 조구래 튀니지 대사 등이 한때 워싱턴스쿨로 분류됐다.

이와 관련 바이든 당선인과 상원의원 시절 친분을 쌓은 박진 국민의힘 의원은 “외교부에서 수십 년에 걸쳐 훈련된 전문가들을 당파에 상관없이 적재적소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태용 의원은 “지금 있는 현직 외교관들부터 제대로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도 “중요한 건 정책의 방향성을 수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 입구론이나 선(先)제재 완화·남북경협론 같은 문 정부의 정책을 갖고선 누가 맡아도 바이든 정부와 갈등을 빚을 것”이라면서다.

미 행정부 교체로 대미 외교는 물론 대북 관계의 여건이 크게 변화한 만큼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책과 로드맵을 재검토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바이든 진영과 민주당 주요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해 왔다"면서 "그간 구축해 온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통해 한·미동맹 강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유정·김다영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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