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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美 바이든 당선에 목소리 커진 與 환경론자…이르면 10일 탈탄소기본법 발의

중앙일보

입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등 강도 높은 탄소 규제 정책을 예고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등 강도 높은 탄소 규제 정책을 예고했다. AFP·연합뉴스

“정확히 77일 안에 바이든 행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승리가 유력시되던 지난 4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에서 ▶2050년 탄소 제로(zero) 목표 ▶2035년 전력 부분 탄소 제로 달성 등 강력한 ‘탄소 중립’ 정책을 전면에 내걸었다. ‘탄소 중립’은 국가나 기업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숲을 조성하거나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못한 기업·국가엔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핵심 과제로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을 내세웠던 더불어민주당은 바이든 당선에 맞춰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르면 10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탈탄소 기본법)’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녹색금융 촉진 특별법(녹색금융촉진법)’을 공식 발의한다. 이들 법안은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의 중점 법안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탈탄소’ 대통령 직속 기구 설립

민주당 그린뉴딜 정책의 핵심 법안인 탈탄소기본법은 민주당 K-뉴딜위원회 그린뉴딜 분과 간사인 이소영 의원이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 의원이 지난 9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제안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민주당 그린뉴딜 정책의 핵심 법안인 탈탄소기본법은 민주당 K-뉴딜위원회 그린뉴딜 분과 간사인 이소영 의원이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 의원이 지난 9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제안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이 발의하는 탈탄소기본법에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탄소중립 2050 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기구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사회로 간다’는 정책 목표를 설계하고 추진하는 중심 축으로, 단순한 자문 기구가 아닌 행정 기구 역할까지 맡게 될 전망이다.

탈탄소기본법에는 국내 기관들이 탄소 중립 목표를 준수하지 않았을 때 구속력 있는 조치를 관할 부처에 부과하는 근거 규정도 담는다. 이 의원은 지난 4일 국정감사에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우리의 2030년 감축 목표가 국제적으로 매우 불충분하다고 하는 평가를 지금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2030년 목표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형배 의원이 준비 중인 녹색금융촉진법에는 녹색금융공사 설립 내용이 담긴다. 녹색금융공사는 관련 기업의 주식을 응모·인수하거나 자금을 대출하는 방식으로 친환경 산업을 지원한다. 민주당은 당초 녹색금융공사 자본금의 규모를 10조원 규모로 출범시키려 했으나, 당정 협의 과정에서 자본금 규모를 낮추는 방안이 논의중이라고 한다.

국회 기후위기 그린뉴딜연구회 대표 우원식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유럽연합(EU)이 탄소 국경세를 도입했고, 바이든 행정부까지 출범하는 상황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당장 우리 기업 수출에 차질이 생긴다”며 “에너지 전환 정책은 이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한 경제 문제”라고 말했다.

‘친환경 강경파’ 목소리 커지나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이 재석 인원 258명 가운데 252명의 찬성(기권 6명)으로 통과되는 모습. 당시 결의안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의당 의원들이 낸 4개의 결의안을 병합해 마련됐다.뉴스1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이 재석 인원 258명 가운데 252명의 찬성(기권 6명)으로 통과되는 모습. 당시 결의안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의당 의원들이 낸 4개의 결의안을 병합해 마련됐다.뉴스1

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선 우 의원을 비롯한 김성환·민형배·이소영 의원 등 ‘친환경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들은 지난 9월 여야 합의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기후위기 대응 비상 결의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주도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며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들 의원이 기존에 제출한 법안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자율적인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이 법안은 전력산업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법안으로 꼽힌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 “구글·애플·BMW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100%로 생산하자는 국제협약 ‘RE100’에 가입하면서, 국내 납품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고 있다”며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최근 ‘탄소 중립’ 선언에 줄줄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에겐 호재다. SK그룹은 지난 2일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관계사 8곳이 ‘2050년 친환경 재생에너지 전력 100% 조달’을 골자로 하는 RE100 협약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삼성물산도 지난달 업계 최초로 ‘탈석탄’을 선언했다. 홍종호 대한상의 자문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외국 기업들의 ‘탈탄소 요구’가 거세지면서 기업들 발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됐다”며 “국회도 여야를 떠나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관련 법안과 이슈 선택을 적절해 잘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환경 단체에선 기존에 추진되고 있는 석탄발전소를 막아달라는 식의 요구도 일부 의원에게 제기하고 있다”며 “그런 지엽적인 갈등 이슈보다는 바이든 시대에 우리 기업의 미래 활로를 열어주는 쪽으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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