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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법·피임법 가르쳐야"vs"몸만 초점 안돼"…K성교육 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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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청소년 콘돔 전시회에서 관계자가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청소년 콘돔 전시회에서 관계자가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의 국어ㆍ영어ㆍ수학 교육은 항상 변하는데 왜 성교육은 제자리일까요?"

지난 2일 밀실팀이 만난 민간 성교육 기관 ‘자주스쿨’ 김민영 공동대표와 이석원 공동대표의 말입니다. 자주스쿨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성(性)에 관한 지식을 대신 가르쳐주는 전문기관입니다.

[밀실]<52화> #'유교걸'·'유교보이'의 성(性)교육

김민영 대표는 "학교 성교육이 성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을 키우거나, 성에 대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교육이 아니라 성폭력 예방 교육에 그치고 있다”며 “교육 시간이나 다양성 면에서 부족함이 많다”고 주장했죠. 교과 성적만 신경 쓰고 성 문제는 챙기지 않는 교육 시스템을 꼬집은 건데요.

#국내 성교육을 둘러싼 논란, 지금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학교 내 성교육 실효성 논란, 매번 ‘도돌이표’

여성가족부가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한 성교육 서적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일부 내용. 사진 김병욱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실

여성가족부가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한 성교육 서적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일부 내용. 사진 김병욱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실

성교육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집니다. 현재 초·중·고교 학생이 1년에 이수해야 할 성교육 시간은 고작 15시간인데요. 그마저도 성교육 전문 교사가 아닌 보건 교사가 진행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도 ‘낙제점’입니다. 2018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만5657명 중 61.8%가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인용 콘텐트 피해 예방 교육이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죠. 또 초ㆍ중ㆍ고 학부모 308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안재희 홍익대학교 초빙교수)에선 응답자의 67.2%가 “학교 성교육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성교육을 받는 모습. [중앙포토]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성교육을 받는 모습. [중앙포토]

하지만 성교육 강화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전히 구체적 방법론을 두고 사회적 갈등을 빚는 중입니다. 지난 8월 여성가족부가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한 뒤 논란에 휩싸이자 전량 회수한 덴마크 작가의 성교육 교재『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가 대표적입니다. 일각에서 책을 두고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조기 성애화(성적 본능에 따른 애정의 대상이 됨)를 부추긴다"고 비판했기 때문이죠.

이를 두고 인터넷상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는데요. 일부 시민은 댓글로 “덴마크와 같은 개방적인 문화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성에 대한 지식을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반박도 나왔습니다. 7월 전남의 한 고교에서 바나나와 콘돔을 사용한 성교육이 학부모 항의로 취소된 것도 이러한 논란의 연장선에 있죠.

"정확하고 구체적인 성교육은 어른의 의무"

민간 성교육 기관 '자주스쿨'의 이석원 공동대표(왼쪽)와 김민영 공동대표가 최근 논란에 휩싸인 덴마크 성교육 서적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보고 있다. 백경민

민간 성교육 기관 '자주스쿨'의 이석원 공동대표(왼쪽)와 김민영 공동대표가 최근 논란에 휩싸인 덴마크 성교육 서적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보고 있다. 백경민

한국 정서에 맞는 'K-성교육'이 존재하는 걸까요.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은 대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밀실팀은 지난달 31일~이달 3일 다양한 민간 성교육 전문가들과 만나 학교 내 성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물어봤습니다.

김민영 자주스쿨 대표는 “해외에서 성교육 서적을 가져올 때 전문가 참여를 통해 국내 정서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했습니다. 국가마다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성교육 방식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만의 '특수성'을 강조할 순 없다고 합니다. 그는 "인터넷 발달로 청소년도 쉽게 외국의 매체와 정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정서가 세계적 흐름에 맞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그러면서 “우려하는 이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정서가 어른들의 정서인지, 아이들의 정서인지 잘 모르겠다”며 “아이들의 정서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더 빠르고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했죠.

그러면서 덴마크 등 개방적인 나라처럼 구체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위생적인 자위법이나 피임법도 가르치는 게 좋다는 겁니다. "어른이라면 청소년들이 알아야 할 기본 정보를 정확히 알려줘야 하는 것이 의무"라며 "(성 관련 지식을) 알려줄까 말까 고민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단언했죠.

"성관계 설명보다 나를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국틴스타'의 김혜정 총괄디렉터(왼쪽)와 이창영 이레네오 신부가 지난달 30일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시은 인턴

'한국틴스타'의 김혜정 총괄디렉터(왼쪽)와 이창영 이레네오 신부가 지난달 30일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시은 인턴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성교육 기관 ‘한국틴스타’의 김혜정 총괄디렉터와 이창영 이레네오 신부는 자주스쿨과 조금 다른 입장이었습니다. 특히 여가부가 배포한 뒤 전량 회수한 도서가 “우려스럽다”고 했는데요. 지나치게 '몸'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겁니다.

이창영 신부는 “(여가부가 회수한) 교재에 서로 사랑하고 교류하는 부분을 건너뛰고 신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부분 위주로 묘사되고 있었다”며 “아이들이 성적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른 채 ‘사랑한다는 것은 성관계하는 것’이라고 왜곡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혜정 총괄디렉터는 “미디어를 통해 너무 많은 성 관련 지식을 접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왜곡된 지식과 시선으로 성(性)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좋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회복하는 게 시급하고 절실한 성교육”이라고 말했습니다.

연령에 따른 맞춤형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냈는데요. 이 신부는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인격적 관계를 잘 맺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걸 배우는 게 먼저”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생식능력에 대한 자각과 성적인 욕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할 것인지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획일적 성교육 적용 안 돼…스스로 택할 수 있어야"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가 지난 3일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시은 인턴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가 지난 3일 밀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시은 인턴

청소년 성교육을 올바로 보려면 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과 성 평등을 연구해온 변신원 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가 그 중 한명이죠.

변 교수는 "국내 학자 얘기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나라의 사례를 편견 없이 보는 게 중요하다"며 "다양한 자료를 보며 어떤 방향으로 성교육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깊이 있는 연구 없이 정확한 해답이 나올지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람과 연령마다 필요한 성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해결책만 있을 수 없다"면서 "다양한 담론 안에서 스스로 가장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전인적(全人的)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이처럼 청소년 성교육을 둘러싼 의견은 다양했는데요. 그래도 지금의 성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데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어떤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윤상언ㆍ박건ㆍ최연수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영상=이시은 인턴, 백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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