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경복궁 안 어정, 과연 임금의 식용수로 썼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0.11.07 13:00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9)

용마루가 없는 왕과 왕후의 침전이었던 창경궁 통명전. [중앙포토]

용마루가 없는 왕과 왕후의 침전이었던 창경궁 통명전. [중앙포토]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까닭

왕과 왕비의 침전 건물인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대부분의 조선 건축물은 지붕 기와를 얹고 제일 윗부분의 지붕마루에는 방수를 위해 암키와를 엎어 여러 겹으로 쌓아 용마루를 올린다. 그리고 격이 높은 건물의 용마루는 양성 회 바름으로 감싸고 내림마루 끝 부분에 잡상을 설치하기 때문에 적새(쌓아 올린) 기와가 보이지 않는 용마루도 있다.

아무튼 적새기와가 보이든 회 바름이든 용마루의 구실은 지붕의 방수를 위한 것이다. 대개의 기와지붕 용마루는 약간 욱은(안으로 조금 우묵하게 우그러져 굽은) 수평마루에 적새를 쌓고 맨 위에 숫마룻장을 올린다. 이 수평 마루 욱은 부분의 느린 곡선으로 현수곡선(懸垂曲線)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무량각은 지붕마루에 두터운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내부에는 종도리를 두개 나란히 거는 수법으로 지붕 선을 구성한다. 그러니 지붕 꼭대기가 밋밋하게 되고 이를 둥글게 구부러진 곡와(曲瓦)로 마감하는 것이다. 곡와는 무량각 지붕에 쓰이는 등이 굽은 기와로 말의 안장을 닮아서 안장기와라고도 부른다. 멀리서 보면 전체적으로 지붕의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이는 경복궁의 침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궁궐의 침전 건물도 지붕에 용마루를 얹지 않는다.

덕수궁의 대한문 용마루

덕수궁의 대한문 용마루

창덕궁의 왕후 침전인 대조전, 현재 우리가 보는 대조전은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지은 것이니 똑같이 생긴 게 아니냐고 한다면, 불타기 이전의 대조전이 그려진 '동궐도(東闕圖)' 그림을 통해 대조전의 무량각 지붕을 확인 할 수 있다. 역시 불타기 전의 원래 희정당 건물, 그리고 창경궁의 왕후 침전 통명전에도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았다. 침전 건물에 이와 같이 용마루를 두지 않는 것에 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선 위급한 상황일 때 다른 건물과 멀리서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적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 침전은 용으로 비유되는 무소불위의 왕이 머무는 공간인데 왕이 강녕전에 머무를 때 지붕 위의 용이 용을 누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용이 어쩌고 …’ 하는 말은 속설이요, 우스개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전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조를 하는 것은 중국에 가면 용마루 없는 일반 집이 많다. 그리고, 그나마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지붕은 두 개의 종도리가 평행하게 짜여 지붕마루 선이 만들어진다. 구조적으로 나란한 두 개의 보와 보의 사이에 지붕의 수평마루 선을 따라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 틈새로 하늘의 기운을 집 주인이 받을 수 있도록 건축했다는 설이다.

즉, 음양오행의 상징적 개념으로 볼 때 왕과 왕후의 침전에 자연의 기를 차단하는 용마루라는 무거운 인공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고 곡와를 써서 무량각(無樑閣-무량갓) 지붕으로 처리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는다. 제발 이제 다시는 무량각 지붕을 보고, 용이 용을 어쩌고 하는 소리를 다시 안 들었으면 좋겠다.

경복궁 내 우물 24곳

기록을 보면 경복궁에는 모두 스물네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음식 짓는 수라간 우물, 빨래하는 세답방 우물이 있었으나 대부분 매몰되었다. 사진은 경복궁 복원공사중 발견한 우물. [중앙포토]

기록을 보면 경복궁에는 모두 스물네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음식 짓는 수라간 우물, 빨래하는 세답방 우물이 있었으나 대부분 매몰되었다. 사진은 경복궁 복원공사중 발견한 우물. [중앙포토]

어정에 대한 기록은 태종 때에 처음 등장한다. 왕과 관련 된 우물의 관리가 엄격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궁궐의 우물은 위치한 전각의 격에 따라 그 명칭도 달랐다. 왕과 왕비의 침전에 있는 우물을 어정(御井)이라 불렀다. 기록을 보면 경복궁에는 모두 스물네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음식 짓는 수라간 우물, 빨래하는 세답방 우물이 있었으나 대부분 매몰되었다. 임금에게 올릴 물 어수는 반드시 어정에서 길어야 했으며 수부는 궁중에서 어정의 물을 길어 어수를 바치던 주방(酒房)의 종이다. 태종 때에는 어수 바치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내시를 벌주었다.

태종 15년(1415년) 1월 25일 2번째기사

임금의 전용우물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은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환자 이촌을 의금부에 가두다

환자(宦者: 내시) 이촌(李村)을 의금부에 내렸다. 주방(酒房)의 수부(水夫)가 어수(御水)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어정의 물을 길어야 하는데, 이제 다른 물을 드리었으나 이촌이 알면서도 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하교하였다.

"이름은 어정이라 하지만, 마을 거리 가운데 있어서 실로 깨끗하지 못하다. 또 어째서 반드시 물을 가려야 하겠는가? 마땅히 한 개의 우물을 대궐 안에다 파서 쓰면 각전의 수부가 모두 없어질 것이다."

어정, 용으로 형상화한 우물 

경복궁 강녕전 권역 우물. [사진 문화재청]

경복궁 강녕전 권역 우물. [사진 문화재청]

강녕전 서쪽 영역에는 꽤 반듯한 우물이 하나 있다. 왕의 어정으로 부른다. 두터운 삿갓 돌 뚜껑을 씌운 것으로 보아 평소에 식용수로 쓰였을 지는 의문이다. 특별한 행사 때에 만 쓰지 않았을까 짐작되지만 이도 역시 확실 치 않다.

이 어정은 화강암 판석을 퍼즐 맞추듯 깔아 팔각형 기단을 만들고 바깥쪽에 테두리를 두르고 물이 흘러나가는 배수로를 냈다. 우물 돌은 맨 아래에는 손잡이 같이 생긴 귀가 넷 달린 돌을 놓고 그 위에 몸체 돌을 얹은 뒤 두꺼운 반원형 뚜껑돌 둘을 덮어 아무나 함부로 우물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팔각 기단의 여덟 꼭짓점마다 구멍 뚫린 육각형 돌을 꿰맞춰놓았는데 그 구멍에 기둥을 세워 비를 가리는 정각을 지었던 흔적이다. 우물의 기단 면은 서쪽이 낮게 구배를 주어 물이 흘러 나가는 배수로를 내고 경복궁의 서편 집수정과 연결했다. 우물 뚜껑을 나중에 씌웠다는 말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강녕전 영역의 어정은 실제 어수로 사용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 치장이 왕의 권위에 모자람은 없으나 지나치게 봉인된 금기의 우물로 설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이 어정을 어수로 사용하기 위한 개념보다는 오히려 절에 있는 우물이나 연못이 용이 사는 용궁의 개념으로 해석되듯이, 왕을 상징하는 용의 존재를 강녕전의 어정에 두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왕과 용의 일체사상을 우물의 형태로 시현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정의 원형으로 된 몸통은 태극을 의미하며 우물 가장자리의 팔각 테두리는 우주의 팔괘를 형상화하였다. 이는 왕이 우주만물을 관장하는 최고권자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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