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김정은 폭력배, 북핵 악화”…북·미 협상 험난할 듯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07 00:31

업데이트 2020.11.0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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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호 04면

미 바이든 시대 눈앞 - 한반도 정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표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표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백악관 입성이 유력해졌다. 그가 내놓을 새로운 한반도 정책에도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크게 두 갈래다. 북핵 문제와 한·미 관계다. 30년을 끌어온 북핵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한·미 동맹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소 소원해졌다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온다. 바이든이 제시할 새로운 한반도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고 한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게 될 것이다.

톱다운 방식 대신 보텀업 전망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 희박
입장차 커 실무 협상도 힘들어

북 무력시위, 인권 등 변수 많아
정부 ‘운전자론’ 적극 펼칠 듯

속단하긴 이르지만 북핵 협상의 전망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이런 분위기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바이든의 평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지난달 22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김 위원장을 ‘폭력배(thug)’라고 부르며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3차례의 TV용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 우리는 여전히 단 하나의 구체적인 약속도 북한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했다”며 “한 개의 미사일, 한 개의 핵무기도 파괴하지 못했다.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협상이 무용지물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런 만큼 바이든의 대북 협상이 트럼프와는 사뭇 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톱다운’ 방식이 아닌, 실무진이 협상하고 그 결과물을 올려 승인받는 ‘보텀업’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할 때 협상했던 방식이다.

트럼프식 파격이었던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도 크지 않다. 바이든은 북·미 정상회담 조건으로 “(김 위원장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핵 능력을 축소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발언에서 바이든이 방점을 둔 대목은 비핵화다. 바이든이 단순한 핵 능력의 축소를 원했다면 이는 오히려 김 위원장이 반길 일이다. 단순한 핵 능력 축소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보다는 핵보유국 간의 핵 군축 협상에서나 나올 의제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지난 5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표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지난 5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표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따라서 바이든이 구상하는 북핵 협상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김 위원장의 충실한 약속 이행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정상끼리 먼저 만나 원칙에 합의하고, 이후 세부 협상을 실무진에 맡겼던 트럼프 방식보다 더 까다로울 수 있다. 이미 비핵화 해법을 둘러싸고 북·미 간 입장차가 크다는 게 확인된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양보가 없으면 실무 협상의 진전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북한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요구가 더욱 엄격해질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요구한 것은 “영변을 포함한 핵시설 5곳의 폐쇄”였다고 한다. 이를 김 위원장은 수용하지 않았고, 협상은 결렬됐다. 바이든 정부가 향후 협상에서 최소한 트럼프의 요구 이상을 원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북한이 이를 수용해야만 대북 제재의 부분 해제를 비롯해 북·미 정상회담 등 다양한 유화책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지만 당시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고수할 것 같진 않다. 이 정책에 대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이 있는 만큼 바이든으로선 오바마 정부와의 차별화도 필요한 상황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환경도 그새 크게 바뀌었다. 북한은 “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 2017년 11월 화성-15호를 시험 발사했다.

이처럼 진보된 핵·미사일 기술을 담보로 북한의 대미 전략은 더욱 강경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자칫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처럼 북·미 간 긴장이 크게 고조될 수도 있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할 경우엔 더욱 그렇다. 북한은 내년 상반기 북·미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저강도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돌발 변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했던 과거 민주당 정부처럼 바이든 정부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압박 수단으로 꺼내들 경우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질 수 있다. 워싱턴 조야에선 “미국이 대북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하는 내년 상반기엔 북·미 협상의 진전은 어렵다. 오히려 양국 관계가 악화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바라야 할 상황”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한·미 관계 현안이었던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동맹 관계와 협력을 중시하는 바이든이 주한미군 감축을 빌미로 방위비 분담금을 무리하게 인상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런 가운데 신냉전이라고 불릴 만큼 미·중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미국의 반중 노선 참여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고민은 바이든이 당선되고 내년 1월 취임한 이후에도 수개월 동안 북·미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국의 새 정부가 국무·국방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 라인을 새로 짜고 구체적인 대북 전략을 새로 수립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재인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좁아진다. 따라서 2022년 5월 임기를 마치는 문재인 정부가 ‘운전자론’을 기반으로 더욱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대북 행보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상황은 바이든 정부가 새로운 대북 정책에 따라 북핵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지난 3년간의 성취, 북한과 우리 정부, 미국 정상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합의와 의지들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기대를 밝힌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한국 정부에겐 북·미 정상회담을 ‘TV용’이라고 폄하하는 바이든과의 대북 정책 조율이란 새로운 과제가 떨어진 셈이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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