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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베씨 ‘머릿속 장벽’ 사라져…‘역사의 종말’은 없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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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호 26면

독일 통일 그 후 30년 〈1〉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식 경기에서 관중들이 흑적황 3색 독일국기를 흔들고 있다. 월드컵 때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독일에선 극우 나치의 민족주의 영향 때문에 국기를 흔드는 행위는 예외적으로 여겨진다. [사진 레네 슈타르크]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식 경기에서 관중들이 흑적황 3색 독일국기를 흔들고 있다. 월드컵 때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독일에선 극우 나치의 민족주의 영향 때문에 국기를 흔드는 행위는 예외적으로 여겨진다. [사진 레네 슈타르크]

30년 전에 이루어졌던 독일 통일은 그 직전에 있었던 평화혁명과 전환 과정을 극적으로 마무리하는 결과물이었다. 독일 통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그 영향은 한 세대 이상에 걸쳐 매우 오래 지속하였으며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동·서독인끼리 서로 비하 #2000년 이후 세대들에겐 무의미 #바이에른·작센 등 출신지 더 따져 #동독 출신 메르켈 총리 나왔지만 #아직도 평범한 애국심 표현 금기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40년 동안 고착화된 듯이 보였던 분단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극복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1968년 학생운동 세대가 냉전시대의 격렬한 이념 전쟁을 거치면서 성취한 듯 보이는 공산주의의 승리를 하루아침에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가 유일한 최종 승자로서 대체하는 모양이 됐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상황이 더 어려웠다. 통일 초반에 사람들이 가졌던 들뜬 기대가 사라진 이후 특히 구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은 약 10년간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대량 실업과 산업 기반의 붕괴는 감내하기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구동독 지역의 생활 수준이 지속적으로 향상됐다. 기대 수명이나 주거, 교육, 의료 서비스와 같은 사회 지표와 임금, 소비재 보유 현황 등과 같은 경제 지표 등을 포함하여 삶의 질을 나타내는 모든 수치가 명확하게 개선됐다.

무지하고 굼뜬 오씨, 오만·천박한 베씨  

독일 통일 직전 시민들이 베를린장벽 위에 올라가서 ‘독일-통일 조국’이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 크리에이티브 카먼스]

독일 통일 직전 시민들이 베를린장벽 위에 올라가서 ‘독일-통일 조국’이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 크리에이티브 카먼스]

실질적으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분단돼 있던 독일 사회가 다시 하나가 되는 사회 통합이었다. 이는 예상을 전혀 벗어난 일이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모든 사람이 흥분 상태에 있을 때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뿌리가 같은 것은 함께 자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진 사실은 함께 자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장벽은 없어졌지만 ‘머릿속의 장벽’은 남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오씨(Ossi·동독 놈)’ 그리고 ‘베씨(Wessi·서독 놈)’와 같은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는 단지 출신 지역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그 단어를 통한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베씨들은 오씨라는 단어를 쓸 때 무지하거나 행동이 굼뜨며 항상 불평만 하고 게으름이 일상화되어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진다는 특성을 연관시켰다. 반대로 오씨들은 베씨를 오만하고 잘난 척하며 깊은 생각 없이 천박하고 동독 시절에 존재했던 모든 장점을 애써 부정하는 사람들로 여겼다. 평화혁명 당시에 동독 사람들은 빠른 통일을 바라는 염원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는데 통일이 되고 난 이후에 다음과 같은 씁쓸한 농담이 유행했다. “오씨들이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고 하니까 베씨들이 ‘우리도 (우리끼리) 한 민족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의 장벽’은 점점 더 의미를 잃어 갔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오씨나 베씨라는 개념을 더는 머릿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보다는 바이에른이나 작센, 혹은 브란덴부르크나 함부르크 같은 출신 지역 정체성이 더 의미를 가진다. 그들에게는 사라진 동독이나 서독 출신이라는 개념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 세대가 지난 지금 통일은 마침내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독일의 정체성은 어떠한 모습일까? 올해 통일 30주년을 맞아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행한 연설은 언론으로부터 무미건조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일 과정 당시에 통일에 대해 극도로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전혀 다른 통일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을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독일 통일의 총 지휘자였던 헬무트 콜 전 총리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2012~2017년 재임). [사진 레네 슈타르크, 크리에이티브 카먼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2012~2017년 재임). [사진 레네 슈타르크, 크리에이티브 카먼스]

또한 이번 통일 행사의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은 편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배경에는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5년 전인 25주년 기념행사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 독일은 통일 난제들을 매우 잘 해결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의심의 여지 없이 정치 및 경제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서 다른 국가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난민 유입으로 인한 혼란과 포퓰리즘의 득세 그리고 다자 관계의 후퇴로 인해 그동안 커다란 어려움이 생겨났다.

독일 통일 25주년 당시 독일을 대표하는 정·관계의 두 수장인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모두 옛 동독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가우크 대통령은 1940년에 당시 동독의 로슈토크시에서 태어났으며 개신교 목사였다. 목사로서 동독 교회의 날 행사를 두 차례 주관했으며 교회를 중심으로 한 저항 세력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동독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메르켈 총리는 1954년에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는데 동독 재건에 일조하겠다는 이상을 품고 메르켈 총리가 태어난 직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동독으로 이주했다.

‘심리사회’ 1995년호. 오씨와 베씨의 사회통합 현상 연구를 담았다. [사진 CC BY-SA 3.0]

‘심리사회’ 1995년호. 오씨와 베씨의 사회통합 현상 연구를 담았다. [사진 CC BY-SA 3.0]

한반도가 통일되고 나서 15년 후에 북한 출신 인사가 통일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에 독일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즉, 독일의 역사는 통일이 된 지 25년이 지나고 난 시점에서 해피엔드로 끝날 수도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냉전 종식 이후 현실에서는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예언한 바와 같은 ‘역사의 종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2000년 이후 독일이 유럽에서 벌어진 다양한 위기상황을 매우 잘 극복한 동시에 유로화 및 재정 위기 이후에 더욱 안정성을 확보했던 것과 달리 현재 독일 국민은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어쩌면 더 큰 불안감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독일의 영화배우이며 감독인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는 최근 “독일 영화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독일인 자부심 느끼면 극우주의 의심

통일 이후 독일도 민족 감정이란 점에서 정상화될 것을 기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 독일 국기를 흔들며 응원했지만 아직도 독일에서는 평범한 애국심의 표현이 오해를 받는 경우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독일인인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하면,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행동이지만 독일에서는 그 사람이 혹시 극우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많은 사람이 정치적인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새로운 독일 사회의 일부이며 더는 통일의 시각에 투영시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통일로 인해 ‘역사의 종말’이 도래하지 않았다. 물론 평화혁명을 통해 독재가 종식되고 독일 전역에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세대가 끌어안고 해결해야만 할 문제들이다. ※번역: 김영수 한스 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
독일 킬대학 경제학 석·박사, 파리1대학 경제학 석사, 1998~2002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학대학원 전임강사, 2004~200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2007년부터 독일 비텐-헤르데케대학 객원교수. 2002년부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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