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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몸 상태 설명이 진단 좌우…말 잘해야 빨리 낫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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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호 28면

헬스PICK

‘나는 괜찮은 환자일까’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군가에게 어떤 환자로 비치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나는 정확한 진단과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가’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른다. ‘진단은 의사가 하는 것 아닌가?’ ‘제때 검진받고 병원에 잘 가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든다. 맞는 말이다. 근데 간과한 것이 있다. 의사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검사 필요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단서는 모두 환자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그 단서의 대부분은 환자의 말을 통해 의사에게 전달된다. 환자의 말은 부족하거나 너무 많아도 문제다. 의사의 판단을 흐린다.

정확한 의사 상담 가이드 #병의 판단은 환자의 말에서 나와 #지레짐작이나 확신은 진단 방해 #처방 오류나 오진의 원인 될수도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복용약 등 정보 정확히 전달해야

진료 시 대화, 내 몸 통역하는 과정과 같아

환자가 진료 시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과정은 ‘통역’과 비슷하다. 어떤 단어나 문장이 통역에서 제외되거나 문장이 길어지고 표현하는 단어가 너무 많아지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단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설명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추론하는 과정이다. 즉 모든 사람은 아플 때 환자인 동시에 진료 시엔 ‘내 몸 통역자’인 셈이다. 환자에게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고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박경화 교수는 “환자는 자신이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의사가 다 알아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환자가 말하지 않는 이상 의사가 모든 걸 알 순 없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말 잘하는 환자가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우선 충분히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사례는 다양하다. 고혈압약을 먹고 있는 한 노인 환자가 부종 때문에 찾은 다른 병원에서 이뇨제 처방을 받았다고 하자. 두 가지 약은 상호 작용으로 기립성 저혈압을 초래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이 환자가 기존에 먹던 약을 얘기하지 않으면 기립성 저혈압으로 낙상에 이은 골절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노인의 경우 낙상은 사고로 인한 사망 원인 2위이고, 낙상으로 고관절이 골절되면 3명 중 1명은 1년 이내에 사망할 정도로 심각하다. 심부전 환자가 당뇨약 ‘액토스’ 복용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경우도 비슷하다. 이 약은 심부전을 악화시킨다. 부정맥으로 와파린을 복용하는 환자가 이를 알리지 않고 임플란트 등 수술을 받으면 출혈이 멎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의약품 처방 조제 시스템(DUR)이 도입되긴 했다. 동시 혹은 연령에 따라 처방이 금지되는 약 처방 시 전산상 알람이 뜨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고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김선미 교수는 “DUR이 완벽하게 처방 금기 의약품을 걸러내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떤 질환을 앓고 있고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진료 시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진료 시 내뱉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전북대학교 연구팀은 29쌍의 건강상담 사례를 모아 의대 본과 3학년생 76명에게 들려주고 진단명을 설문지에 기록하도록 했다. 그중 한 쌍의 사례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유사한 사례였다. 이중 A 사례에 ‘기립성 저혈압’이라는 진단을 내린 응답자는 14.5%였지만 B 사례에 같은 진단을 내린 응답자는 2.6%에 그쳤다. 연구팀은 “A 사례에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B 사례에는 이 문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연구팀은 의사가 아닌 의대 고학년생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방법론상 문제로 인정하면서도 “환자의 언어가 진단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하게 나타났다”며 “이 연구 결과는 언어 행위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한다”고 분석했다. 환자의 말 한마디가 진단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환자가 얼마만큼 정보를 주느냐에 따라 쓸데없는 검사를 해야 할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며 “실질적으로 검사가 여의치 않은 의원 규모의 일차 의료기관이라면 진단에서 환자의 말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환자의 말이 진단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60대 이모 씨는 복부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밤새 구토와 통증으로 잠을 설쳤다. 그는 전날 간 손자 돌잔치가 마음에 걸렸다. 의사에게 “돌잔치에서 많이 먹은 음식이 얹힌 것 같다. 그것 말고는 평소와 다른 게 없다. 아무래도 체한 것 같다”고 했다. 의사도 소화불량으로 결론 내리려 할 때 보호자가 한마디 했다. “근데 이번엔 통증이 좀 다른 것 같다. 검사를 해볼 수 없겠느냐”고 제안했다. 검사 결과 이씨는 췌장염이었다.

간혹 자신의 병명을 지레짐작하거나 확신하는 환자가 있다. 인터넷 정보를 맹신하는 환자도 마찬가지다. 고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이영미 교수는 “환자가 자기 병에 대해 알아보고 오는 건 나쁘지 않지만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혹은 ‘옆집 누구는’ 하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한 페이지씩 증상을 써 오면 의사가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고 의사의 처방을 제대로 따르지 않게 돼 환자에게 도움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모두 ‘3분 진료’로 대변되는, 사실상 제한된 진료 시간 때문이다. 대학병원의 심층 진료도 보장된 시간은 15분에 그친다. 환자는 설명에 소극적이거나 의욕을 앞세우다 그르친다. 그러면 환자는 진료 시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을 정보 전달에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정보 제공해야

우선 병원을 찾게 된 이유(증상)를 말한다. 증상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언제부터 있었고 언제 어떻게 변화하는지 양상을 설명한다. 복용하는 약이나 약 교체 여부를 모두 말하는 건 기본이다. 약뿐만이 아니다. 최근의 건기식 섭취나 민간요법 경험도 필요하다. 병력, 수술력, 가족력은 진단·치료법 결정과 부작용을 줄이는 데 필요한 요소다. 요즘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나 휴가철에는 여행력도 포함된다. 과거 알레르기 반응 및 합병증·부작용 경험도 전한다. 켈로이드 피부 여부는 절개가 필요한 수술 시 수술결과를 좌우한다. 수면 패턴, 스트레스 정도, 직업, 업무 환경도 진단에 도움된다. 노인이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는 가족 혹은 환자 상태를 잘 아는 보호자를 대동하는 것이 좋다. 환자의 말은 진단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도 환자 몫 중 하나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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