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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돼지·화식우…명품 식재료 모아 만든 안주 ‘군침 자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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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기자 출신 셰프의 ‘기획특집’

햇빛보다 솜씨 좋은 농부 없고, 식재료를 능가하는 요리사 없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고 끼니를 절반쯤 스스로 해결하는 생활을 3년 가깝게 하면서 든 생각이다.

홍은동 골목 와인 주막 ‘어라우즈’ #전국 스타 농·어업인들이 재료 대 #“메뉴 주역은 요리법 아닌 식재료” #판체타·뼈등심 스테이크 등 유혹 #와인 리스트도 수시로 교체 계획

전국에서 손꼽히는 귀한 식재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요리하는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막강한 재료에서 힘을 얻고 출범한 이곳은 식사보다 안주에 특화된 ‘와인 주막’을 지향한다. 10월 15일 ‘가오픈’이라면서 문을 열었는데 며칠 새 11월 중순까지 예약이 끝났다. 그래서 정식 오픈은 따로 할 일이 없게 됐다.

작은 골목 안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안주가 좋은 동네 와인 주막(Neighborhood Bistro & wine bar)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 집의 이름은 ‘어라우즈’(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증가로6길 34-27)다. ‘자아내다’ ‘자극하다’라는 뜻의 영어 arouse 발음을 적은 것이다. 미로 같은 골목 안, 차 한 대 댈 곳 없는 주택가에 외딴 섬처럼 숨어 있는 이곳의 오너셰프 장준우(35)씨는 음식점 경영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문 열자 마자 예약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화식우 우둔살 카르파초 등 입맛 당겨

돼지고기 ‘뼈등심 스테이크’는 송학 농장에서 일주일에 8개만 공급받는다. 신인섭 기자

돼지고기 ‘뼈등심 스테이크’는 송학 농장에서 일주일에 8개만 공급받는다. 신인섭 기자

쓰는 식재료와 생산자들이 뒷배를 봐주기 때문이다. ▶공인 1호 한국 재래돼지를 키워 고기를 6~7주 건식 숙성(Dry Aging)해 판매하는 포항 송학농장&에이징랩 이한보름 대표 ▶한국 토종닭을 특수 발효사료 먹이면서 풀어 키우는 안성 조아라한방닭 농장 조성현 대표  ▶매일 쇠죽을 끓여 먹인 화식(火食) 한우 전문 아산 아침목장 김성기 대표 ▶직접 잡은 멸치를 배에서 삶아 급속 냉동한 자숙 세멸치(잔지리멸)로 신선 멸치 시장을 새로 일군 보령 다정수산(‘바다담아’) 홍명완 선장 ▶1983년부터 유기농 대추방울토마토와 비트를 키우는 영월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 등이다.

이들은 부모가 하던 수십 년 가업을 이어받아 한 우물을 파는 농축수산업의 장인(匠人)들이다. 각 브랜드와 생산품은 소비자들에게 품질로 이미 인정받았고, 개인적으로는 구하기 쉽지 않은 희귀품들이다. 이런 재료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만으로도 잘 짜여진 ‘기획특집’이고, 음식점으로서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소금기를 뺀 자숙 세멸치를 올린 ‘바다담아 자숙멸치 타르타르’. 신인섭 기자

소금기를 뺀 자숙 세멸치를 올린 ‘바다담아 자숙멸치 타르타르’. 신인섭 기자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셰프이자 음식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장씨는 “이곳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식재료와 그에 어울리는 멋진 와인들”이고 “메뉴의 주역은 요리법이나 국적·스타일이 아니라 식재료”라고 말한다. 특이한 식재료로 만든 색다른 요리를 다양한 와인과 함께 즐기는 새로운 스타일의 미식 공간으로 가꿔 멀어도 손님이 찾아오는 집이 되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추구하는 최우선 가치는 편안과 재미.

스타 생산자들이 공급하는 식재료에 장 셰프 솜씨를 입힌 메뉴는 ▶송학농장 재래돼지 삼겹살 판체타(&무화과) ▶송학농장 재래돼지 뼈등심 스테이크 ▶바다담아(홍 선장) 자숙멸치 타르타르 ▶그래도팜 토마토&레몬 리코타(샐러드) ▶아침목장 화식우 우둔살 카르파초 ▶조아라 토종닭 테바사키 ▶조아라 토종닭 보콘치니 마르살라 소스&버섯 등이다.

개업 준비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던 터라 지난달 15일과 26일 두 차례 찾아가 7가지 음식을 맛보고 얘기도 들었다.

‘어라우즈’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707 생산자 모임’ 회원들. (왼쪽부터) 홍명완 다정수산 대표, 조성현 조아라한방닭 대표, 원승현 그래도팜 대표, 김보라 한국경제 기자,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김성기 아침목장 대표, 권민수 록야 대표, 이한보름 송학농장&에이징랩 대표, 장준우 셰프. [사진 장준우]

‘어라우즈’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707 생산자 모임’ 회원들. (왼쪽부터) 홍명완 다정수산 대표, 조성현 조아라한방닭 대표, 원승현 그래도팜 대표, 김보라 한국경제 기자,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김성기 아침목장 대표, 권민수 록야 대표, 이한보름 송학농장&에이징랩 대표, 장준우 셰프. [사진 장준우]

재래돼지 판체타는 얇게 저며 잘 익은 무화과에 얹어서 내왔다. 삼겹살을 소금에 절이고 향신료를 첨가해 바람에 말리면서 숙성한 이탈리아 방식 베이컨이 판체타다. 장 셰프는 “송학농장 재래돼지고기는 육향이 깊고 진해서 샤퀴트리에 적합하다”고 했다.

멸치 타르타르는 로메스코 소스를 접시에 깐 다음 올리브·샬롯·케이퍼를 잘게 썰어 머스터드와 엔초비로 버무려 얹고, 해동해 우려서 소금기를 뺀 자숙 세멸(잔지리멸)을 마요네즈로 버무려 올렸다. 그 위에 감태 가루를 뿌리고 식용 한련화 잎을 앉혀 마무리했다.

마르살라 크림 소스를 뿌린 조아라 토종닭 구이. 신인섭 기자

마르살라 크림 소스를 뿌린 조아라 토종닭 구이. 신인섭 기자

조아라 토종닭은 뼈를 바른 어깨살(닭봉)과 가슴살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1차로 굽는다. 조아라 닭뼈 육수, 말린 송화버섯 우린 물, 다진 미니 양파(샬롯), 생크림, 프랑스 지롤버섯, 마르살라(당도 높은 이탈리아 강화 와인), 다진 이탈리아 파슬리 등으로 마르살라 크림 소스를 만든 다음 구워 둔 닭고기를 넣고 버무려 맛을 입히면서 한번 더 익힌다. 볶아서 잘게 부순 캐슈너트를 곁들여 접시에 담고 검은 소금과 파슬리 가루를 뿌리면 완성이다.

장 셰프는 “흔히 토종닭이 질기다고 하는데 부위별 특성을 알고 잘 맞춰 조리하면 그렇지 않다”면서 “닭을 구운 팬에 눌어붙은 육즙을 닦지 말고 마르살라 와인으로 녹여서 소스 조미료로 활용해 감칠맛을 살리는 게 이 요리의 핵심”이라고 귀띔했다.

“같은 와인 두 번 마시기엔 인생 짧아”

메뉴 가운데 송학농장 재래돼지 판체타와 뼈등심 스테이크, 조아라 토종닭 테바사키(날개구이)는 ‘어라우즈’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특히 건조 숙성한 2~2.5㎝ 두께의 뼈등심 스테이크는 송학농장에서 공급하는 물량이 일주일에 8개뿐이다.

철 따라 바뀔 메뉴 가운데 식사용 음식은 ‘어라우즈 파스타’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와인에 맞춘 안주들이다. 장 셰프가 와인에 집중하는 이유는 ‘같은 와인을 두 번 마시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을 잘 걸러 짠 리스트도 수시로 교체할 계획이다.

그는 2013년 3월 일간 경제신문에 기자로 입사해 3년 일하다가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3년을 넘기면서 지낸 세월이 아까워서 신문사를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아 인생의 대전환을 결행했다. 2016년 1년 동안 요리학교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에서 푸드·와인 과정과 실습을 마치고 유럽 10개국 60여 개 도시를 돌며 음식기행을 한 다음 2017년 1월 귀국했다. 여행기를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라는 책으로 묶었다.

귀국 후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는 한편, 서울 성북동(동소문로13가길 70-7)에 연구용 주방을 마련해 동호인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면서 세상과 교류했다. 거기서 2018년 11월 11일(농업인의 날) ‘서울고메 2018’에 초대된 스타 농축수산인들 뒤풀이가 열렸고, 그들과 ‘707 생산자 모임’을 결성했다. 그때부터 태기가 있어 ‘어라우즈’가 탄생하게 됐다. 배후에는 문정훈 교수(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가 있다.

46.3㎡(14평) 작은 음식점엔 이리저리 조합할 수 있는 2인 탁자 4조와 바 좌석 4석이 있다. 예약제로 운영하며, 화~금요일엔 저녁(오후 5~11시)만, 토~일요일엔 점심(낮 12시부터)도 한다. 월요일은 쉬며, 4인 이상 팀 예약이 있으면 평일 점심에도 연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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