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오디세이

축구 명문 신정초 선수들, 골대 없는 공원서 훈련 왜?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07 00:02

업데이트 2020.11.0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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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학교 운동부, 클럽화 대세

신정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신정 FC로 소속이 바뀐 지도자와 선수들이 서울 용왕산공원에서 훈련을 마친 뒤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신정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신정 FC로 소속이 바뀐 지도자와 선수들이 서울 용왕산공원에서 훈련을 마친 뒤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신정초등학교는 1933년에 설립돼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공립학교다. 이 학교에 큰 자랑거리가 있었으니 전국·서울 대회를 합쳐 114회 우승을 차지한 축구부다. 프로 선수 출신 함상헌(49) 감독이 20년간 팀을 이끌면서 전국 권역별 최강팀만 출전하는 왕중왕 대회에 아홉 차례 진출해 네 번 우승했다.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울산 현대), ‘관제탑 세리머니’로 유명한 공격수 문선민(상무) 등 스타도 많이 배출했다. 올해도 왼쪽 공격수 주지훈이 성남 FC에, 가수 김정민의 아들 김도윤이 FC 서울에 입단하는 등 졸업생 3명이 K리그 1부 팀에 안착했다.

구타·혹사 등 운동부 문제점 노출
축구협 ‘공부하는 선수’ 클럽화 유도
신정초 축구부 ‘신정 FC’로 바뀌어

간섭·통제 벗어나 오히려 홀가분
안정적 운동장 확보 어려워 문제
야구, 중1까지 리틀야구 클럽 운영

그런 신정초 축구부가 올해 7월 해체됐다. 팀이 없어진 게 아니라 ‘신정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신정 FC’로 바뀌었다. 학교 운동부가 아니라 클럽이 됐다는 뜻이다. 신정초 축구부가 없어진 것은 대한축구협회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공부하는 학생 선수 만들기’ 일환으로 학교 축구부의 클럽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2011년 교육부·문체부와 손 잡고 당시로는 획기적인 주말리그를 도입했다. 학생 선수들의 수업 결손을 막기 위해 학기 중에는 권역별로 묶어 주말에만 리그를 치르게 했다. 토너먼트 대회는 방학 중으로 몰았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 시스템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축구협회는 한발 더 나서 아예 학교 축구부를 클럽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학교 축구부가 좋은 점도 있지만 지도자의 성적 부담과 과도한 훈련, 기숙사 운영으로 인한 폭력·성폭력 가능성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초중고 리그에 초등부는 366개팀 중 234개가 클럽이다. 중학교는 학교 116-클럽 123개, 고교는 학교 110-클럽 81개다. 클럽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학 안 가도 돼 클럽 선수 더 늘어

20년 동안 신정초를 맡아 114회 우승을 이끈 함상헌 감독. 신인섭 기자

20년 동안 신정초를 맡아 114회 우승을 이끈 함상헌 감독. 신인섭 기자

축구협회는 초등부의 경우 기존 축구장의 절반 정도 크기에 8대8 경기를 의무화했다. 선수들의 볼 터치가 많아지고, 아기자기한 기술 축구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치에서 지도자가 욕설을 하면 퇴장당한다. 지나친 지시도 못 하게 했다.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게 하려는 의도다.

신정초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선수들이 공부와 휴식을 하던 생활관도 폐쇄됐다. 클럽으로 바뀌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운동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정 FC 선수들은 신정초 인근인 용왕산공원 등에서 운동을 한다. 공원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지만 축구 골대는 없다. 함 감독은 “아이들에게 가상의 골대를 만들어서 슈팅 연습을 하게 하는데 아무래도 정확도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운동장 확보 문제만 빼면 좋아진 게 더 많다고 한다. 주지훈 선수의 어머니 이서현 씨는 “전에는 학교에서 지원은 제대로 안 해주면서 이것저것 간섭과 통제가 많았는데 그런 게 없어지니까 더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신정 FC에는 함 감독 외에 학년별 코치와 골키퍼 코치를 포함해 6명의 코칭 스태프가 있다. 프로 구단 못지않게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전에는 축구부에 가입하려면 신정초로 전학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7월 해체 당시 60명이던 선수가 70명으로 늘어났다.

함 감독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트렌드가 학교에서 클럽으로 바뀌는 흐름에 빨리 적응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황량한 벌판에서 외롭고 힘든 점도 많지만 소신껏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점에서 홀가분하다. 클럽이 자생력을 갖도록 축구협회와 교육부, 문체부에서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태의 ‘밀양 클럽형 야구부’ 주목

2011년부터 주말리그와 클럽화를 뚝심 있게 추진해 온 이가 김종윤 축구협회 대회운영실장이다. 그는 “클럽이든 학교 운동부든 아이들이 성적 부담을 벗어나 즐겁고 창의적인 축구를 할 수 있다면 좋은 거다. 문제는 많은 학교 교장들이 ‘축구부에 혹시 무슨 사고가 생기면 큰일 난다’는 생각으로 축구부를 내치려고 하는 점이다. 내보내더라도 운동장을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운동부의 클럽화는 축구가 선도하고 있다. 야구는 어떨까. 현재는 초등학교와 중1까지는 리틀야구 클럽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중2부터는 기존의 학교 야구부가 대회에 출전한다. 야구도 주말리그를 하지만 과도한 연습과 성적에 집착하는 관행은 쉽사리 깨지지 않고 있다. 주말에만 경기를 하다 보니 에이스 투수가 혹사당하는 경우도 많다.

야구에서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롯데 악바리’ 박정태가 경남 밀양에서 시도하고 있는 ‘클럽형 야구부’다. 박정태는 밀양 소재 초-중-고에 야구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대표로 있는 야구 회사(아이엠제이티)에서 지도자를 각 학교에 파견한다. 선수들은 학교 수업을 마친 뒤 밀양스포츠센터에 모여 훈련을 한다. 선수 스카우트와 진로 및 생활 지도는 회사 프런트가 맡는다. 감독은 학부모와 접촉하지 않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다.

프로야구를 총괄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류대환 사무총장은 “고교야구 팀이 81개로 늘었다. 합숙이나 구타 같은 구습은 점점 사라지고 클럽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학교 야구부를 아웃소싱 개념으로 운영한다면 훈련의 질도 높이고 학교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00m 10초58 질주, 신정 FC 안병선은 ‘총알탄 코치’
육상 대표 출신 안병선 코치. 신인섭 기자

육상 대표 출신 안병선 코치. 신인섭 기자

신정 FC에서 1∼2학년을 맡고 있는 안병선(31) 코치는 국가대표 육상선수 출신이다. 그는 한국체대 1학년 때 100m를 10초58에 주파했다. 뒷바람이 초속 2.3m로 불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육상은 뒷바람이 2m 미만이어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한다.) 그의 100m 공식 최고 기록은 10초62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서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던 그가 ‘축구 겸업’을 하게 된 건 한국체대 사회체육대학원에서 함상헌 감독을 만난 덕분이었다. 주경야독으로 스포츠교육학을 함께 공부하던 둘은 의기투합했다. 대한축구협회 D급 지도자과정을 이수한 안 코치는 지난해 7월부터 월∼금요일 신정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말에는 골프·아이스하키 등 다른 종목 선수들의 체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야구 롯데는 1984년부터 2년간 당시 100m 한국기록(10초34) 보유자였던 서말구를 선수 겸 주루코치로 등록했다. 그러나 서말구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안 코치는 “제가 국가대표팀에 있을 때 서 코치님과 그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각 종목별 특성에 맞는 주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죠”라고 말했다.

안 코치는 아이들에게 상-하체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과 뛸 때의 스텝을 강조한다. 그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기본을 잘 가르쳐 놓으면 몸과 체력이 커지면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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