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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추천서”…국가공무원도 이젠 ‘자천’ 시대

중앙일보

입력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게 되셨죠?”
한 기업 연구소에 근무하던 A씨는 지난해 전화 한통을 받고 깜짝 놀랐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 채용 시험위원으로 참석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자초지종을 듣던 A씨는 자신이 호기심에 지난해 인터넷 검색 중 찾아낸 한 사이트에 등록한 것을 떠올렸다. 해당 사이트는 '국가인재DB(데이터베이스)'. 스스로 국가인재로 추천하면 공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설명에 자천(自薦)했다. 안전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그의 이력서를 눈여겨 본 한 지자체가 A씨를 공무원 채용에서 면접위원으로 쓰겠다고 나서면서 그는 '공무원 면접위원'이 됐다.

세종시에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모습. 연합뉴스

세종시에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모습. 연합뉴스

국가공무원도 자천시대가 됐다. 공무원 시험을 통하지 않고서도 '국가인재 DB'에 자신을 추천하는 것으로도 공공기관에 근무하거나 공직에 오를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국가인재DB는 정부 내 우수 인재 임용을 위해 공직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1999년에 구축됐다. 학계와 재계, 법조계, 비정부기구(NGO)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약 30만명의 인물 정보가 수록돼 있다.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정무직이나 개방형 공모직, 공공기관장과 임원 등을 필요로 할 때 이 DB가 쓰인다. 각 기관의 시험위원이나 각종 선발심시사위원회,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인물을 뽑을 때도 활용된다. 국가인재DB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는 2015년부터 '국민추천제'를 통해 국민 누구라도 참신한 국가인재를 추천하거나 본인을 국가인재로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천인재 올리면 소중한 기회”

인사처에 따르면 국가인재DB에 등록할 수 있는 자천인재엔 조건이 있다. 대학의 조교수 이상이거나 연구기관의 연구원, 박사학위 소지자나 중견기업 이상의 임원이 가능하다.

또 벤처기업 경영인, 주요 협회·단체 등의 임원급과 변호사·의사·건축사·공인회계사·공인노무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는 자천할 수 있다.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기술사와 긴급구조요원, 시민단체 활동가와 국제기구 종사자 등 해당 분야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경우도 가능하다.

인사혁신처가 운영 중인 국가인재DB 홈페이지 갈무리. [국가인재DB 홈페이지 캡처]

인사혁신처가 운영 중인 국가인재DB 홈페이지 갈무리. [국가인재DB 홈페이지 캡처]

실제로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 속기과 시간강사 B씨는 국가인재DB에 자천을 한 뒤 정부기관 속기사 채용 시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이 사이트에 동료들과 함께 등록을 한 B씨는 실제로 속기사 채용 시험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 세미나 홍보자료를 통해 우연히 국가인재DB를 알게 된 C변호사도 마찬가지. C변호사는 중소기업 자문업무와 같은 구체적인 경력과 앞으로 국가기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 그리고 자신의 강점을 꼼꼼히 기록해 올렸다. C변호사는 얼마 뒤 한 공공기관으로부터 “비상임감사로 지원하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C변호사는 “거창한 배경이나 인맥은 없지만 자기 인생이 추천서인 인재들이 국가인재DB에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어필하면 소중한 기회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부산광역시 인재개발원장에 임용된 유선희 전 포스코 인재창조원 글로벌리더십센터 전무 역시 자천인재다. 인사처는 “정부가 헤드헌팅을 통해 국가인재DB를 검색해 지방공무원에 임용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인사혁신처에 대한 국정감사에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이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인사혁신처에 대한 국정감사에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이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가인재DB 공직 선임률 지난해 49.3%

자천을 하게 되면 적합성 검토를 거친 뒤 국가인재DB에 오르게 된다. 정부기관이나 지자체는 실제로 인력수요가 발생할 때 이 국가인재DB를 검색해 적합한 인물을 찾고 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남 천안을)에 따르면 국가인재DB에 등재된 인력이 각 부처별로 필요 직위에 추천돼 선임되는 비율은 지난해 기준 49.3%에 이른다. 2015년에는 4234개 직위에 국가인재DB에 있는 1만5535명이 추천됐다. 실제 선임된 사람은 2625명으로 선임률은 62%에 달했다. 지난해 7918개의 직위에 맞는 사람을 뽑는 데 국가인재DB를 통해 추천된 사람은 2만8652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실제로 3902명이 선임돼 선임률은 49.3%를 기록했다.

박 의원은 “인사혁신처가 내실 있는 인력풀 확보는 물론 적재적소의 인사 추천을 통한 선임률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국가인재DB 국민추천제 활용을 공직 외에도 시험위원, 정부위원회 위원 등 다방면에서 폭넓게 인재활용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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