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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트럼프라는 이름의 매혹적 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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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투표가 종료된지 며칠이 지나서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글이 작성된 시점에서는 바이든의 아슬아슬한 승리가 유력하지만 속절없이 느린 개표과정과 불가피한 몇 개 주에서의 재검표,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측이 주장하는 선거부정과 이어질 사법부 소송 과정을 생각하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확정되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미국인 매혹시킨 트럼프 정치 #본질은 욕망·파격·배제의 솔직함 #공동체 위한 정치적 노력보다 #게으른 포퓰리즘으로 임무 방기

이번 선거가 우리 정치와 삶의 구체적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건 북한과의 어려운 줄다리기가 기다리고 있으며, 미·중 간의 정치·경제적 마찰 또한 예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태평양 건너 머나먼 외국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선거 결과와는 관계없이 트럼프가 세계 정치와 우리 삶에 남긴 족적은 오히려 정치문화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국내외 정책 변화가 미국인들, 나아가 지구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심원한 것은 트럼프라는 얼굴을 한 어떤 정치적 경향이 우리의 마음에 남겨놓은 비가역적인 파동일 수밖에 없다.

미국 선거 결과를 보면 수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에 매혹되어 있다는 명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통령 본인조차 감염되었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무모한 대처와 여러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과반에 이르는 유권자들의 강고한 지지가 재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미 성급하게 트럼프의 4년 후 출마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어떤 경우이건 제2, 제3의 트럼프의 출현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참고로, 한국인들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필리핀과 함께 상당히 높은 편이다.

트럼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매혹의 정체를 스티븐 킹은 어느 주유소에서 일하는 백인 여성의 피곤에 절은 담배연기와 함께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는 솔직하게 말해요(He speaks his mind).”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는 뜻일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는 정치인은 나와 같은 이들의 욕망을 이해해 주고, 이 피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의 근원을 밝혀줄 사람이 아닌가. 마침,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익과 이익이, 욕망과 욕망이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해결점이 찾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 위에 서 있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트럼프라는 솔직함의 결정적 위선은 정치가 문제 제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모두가 지닌 상충된 욕망들을 발견하고 대립시키고 폭발시키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라면, 그 마무리는 그 욕망들이 만나는 균형점을 발견하고 누군가에게 희생과 양보를 납득시키며 같이 살아갈 공생의 터를 닦는 것, 서로 마스크를 쓰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트럼프의 리더십은 정치의 실행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강변한데 있었다.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또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생활의 언어로, 저 멀리 있는 잘나신 엘리트 전문가들이 내뱉는 방언의 장막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통쾌함이기도 하다. 더 이상 정치는 알 수 없는 정책적 용어와 숫자놀음이 아니며, 수백년 켜켜이 묵은 제도와 관행을 휴지조각처럼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내세운 파격의 진부함은 수백년을 이어온 관료제적 부정부패의 소문을 재생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절차와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한 관료들을 일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전문성을 유능하게 활용하는 것 또한 정치가 아니었던가. 과거의 역사와 디테일과 외교적 절차를 무시한 채, 트럼프 개인의 판단인 “톱다운”으로 밀어부쳤던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안하느니만 못한 파국으로 치달았던 댓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전염성이 높다는 문제 또한 있다. 누구나 키우고 있을 마음속에 깃든 악마가 내는 혐오와 조롱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밖으로 내뱉는 순간, 똑같은 마음의 악마를 키우는 동지들이 규합되고, 증폭된 혐오의 목소리와 폭력이 고스란히 교환되는 장면들을 우리는 목격하였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존중과 인격을 떠받치던 실낱이 완전히 끊어지고 그것이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것은 9000만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대통령의 무수한 단문이었다.

트럼프 정치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공식, 욕망과 파격과 배제의 솔직함은 너무나 손쉬운 게으름이었다.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정치적 리더십은 선동보다 모범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길은 그 노정에서 구성원들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책무를 그는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나아가, 그 게으른 매혹의 역설적 저주는 어쩌면 이제 우리는 트럼프 정치의 끝이 아닌 입구에 들어서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를 우리는 포퓰리즘이라 부른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