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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당선 가능성 커진 바이든…문 대통령, 외교 리셋 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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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제 치러진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이 재검표 요구와 개표 중단 소송 등 불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개표가 미국 전역에서 완료되면 일단 불확실성은 상당 부문 해소될 것이다.

미, 정통 노선 회귀할 듯…‘깜짝쇼’ 외교 종언 #현실 직시하며 동맹 강화, 북핵 폐기 집중할 때

만일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다면 미국의 대외 정책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트럼프의 일방·고립주의에서 동맹과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국제주의로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이 실무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톱다운’ 외교 대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보텀업’ 외교가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가 되면서 트럼프의 돌발 행동으로 널뛰었던 국제 정세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36년간 연방 상원의원(6선)을 역임한 바이든은 12년 동안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약하며 위원장까지 지낸 외교통 정치인이다. 동맹 체제와 다자 조약 질서를 강력히 지지해 왔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수호 의지도 굳건하다. 북핵에 대해선 한·미의 탄탄한 공조 아래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전통적인 접근법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든은 지난달 22일 마지막 대선 TV토론에서 김정은을 ‘불량배(thug)’라고 부르며 그런 김정은과 섣불리 정상회담을 한 트럼프를 맹공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핵 능력을 축소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식 북·미 정상회담의 ‘깜짝쇼’는 재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이든은 중국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이다. 지식재산권부터 남중국해·인권 문제까지 전방위로 각을 세우며 충돌을 불사할 공산이 크다. 바이든은 기고문이나 연설에서 중국을 거론할 때 빠짐없이 “동맹국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부통령 시절인 2013년 서울을 찾았을 때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건 좋은 베팅이 아니다”며 대놓고 한국이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냉철한 판단이 절실하다. ‘대북 저자세’와 ‘친중’을 고수해 온 외교 노선 전반을 재점검해 과감히 리셋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난 3년 반 동안 연합 군사훈련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한·미 동맹을 복원하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원칙에 기반한 북핵 폐기에 힘을 합쳐야 한다. 극도로 악화한 한·일 갈등에 화해의 돌파구를 여는 한편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곡예식 외교에서 탈피해 원칙과 가치의 기반 위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외교를 구사할 시점이다.

이런 과제를 외면하면서 북한을 감싸고, 중국 눈치를 보며, 일본을 때려 온 기존 행태를 지속한다면 바이든은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대상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반 남짓 남았을 뿐이다. 시간은 문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