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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등 전방위 압수수색…월성1호기 수사강도 높인 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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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대전지방검찰청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조작 혐의와 관련해 5일 산업통상자원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가스공사 사장실도 함께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당시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었다.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압수수색에 나선 가운데 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은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에 연루된 대상자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20일 감사원은 이들 가운데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한 담당 국장과 실제 자료를 없앤 실무자 2명에게만 경징계 이상의 징계를 내리라는 처분을 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겐 주의 처분만 내렸다. 감사원의 검찰 고발은 없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전면적인 압수수색을 결정했다. 지난달 22일 국민의힘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관여한 12명을 형사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고발에 앞서 지난달 21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월성1호기) 부당 폐쇄 과정에서 감사를 방해하고 직권남용하고 공용 서류를 손상한 책임자들을 모두 형사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연루된 공직자에 대해선 “수사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것이 있으면 누가 몸통이고, 어떻게 해서 피할 수 없이 위법한 과정으로 월성 원전 1호기를 폐쇄하게 됐는지 밝히면 될 것”이라고 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검찰이 공공기관은 물론 관할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선 건 유례가 드물다. 지난 4월 세월호 조사 방해 의혹(기획재정부ㆍ행정안전부), 2019년 울산 선거 개입 의혹(기재부), 2018년 강원랜드 채용 비리(산업부) 등 정도다.

혐의점이 뚜렷하거나 사안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일 때만 검찰은 중앙부처를 겨냥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2015년 이명박 정부 해외 자원개발 비리, 2013년 한수원 원전 납품 비리 조사 때도 검찰은 관련 공공기관을 압수수색했지만 산업부는 대상이 아니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월성 원전 1호기 운행 및 감사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월성 원전 1호기 운행 및 감사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검찰 수사의 쟁점은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와 관련해 ▶경제성 평가에 부당한 압력이나 조작이 있었는지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었는지 ▶감사원을 대상으로 한 감사 방해 행위가 있었는지 등이다.

관련 자료 삭제와 감사 방해 여부는 이미 감사원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달 20일 감사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2019년 11월 (당시)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부하 직원에게 감사원 감사에 대비해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이에 부하 직원은 2019년 12월 1일 자료를 삭제하는 등 감사원 감사를 방해했다”고 명시했다.

결국 이번 검찰 수사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남은 부분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과정에서 조작과 부당한 압력이 있었는지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둬 추진해온 탈원전 정책과도 직접 맞물려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관련자 처벌과 탈원전 정책 타격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혐의가 될 수 있는 부분은 감사원 조사를 통해 이미 윤곽이 드러난 상태다. 해당 내용과 직접 관련해 고발이나 징계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감사원은 감사 결과 보고서 내용의 대부분을 경제성 평가 조작 여부를 추적하는 부분에 할애했다.

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수원은 회계법인과 함께 세 차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진행했다. 2018년 7월 1일 원전 가동을 당장 멈추는 것과 설계 수명이 끝나는 2022년 11월 20일까지 계속 가동하는 것을 비교했다. 경제성 평가를 거치며 조기 폐쇄로 인한 손실액은 3472억원→1704억원→244억원으로 급격히 줄었다. 이 과정에서 회계법인과 산업부 측 면담도 있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액이 낮아지는 과정에 있어 감사원이 집중적으로 의문점을 제기한 부분은 전력판매단가와 원전 이용률이다.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력은 한수원을 거쳐 한국전력공사에 판매된다. 이때 전력판매단가가 매겨지는데, 단가가 높으면 그만큼 원전 가동에 따른 수익이 높아진다. 원전 이용률도 마찬가지다. 이용률이 높아지면 같은 원전이라도 그만큼 생산되는 전력량도 늘고 수익도 따라 증가한다.

그런데 세 차례 경제성 평가 과정에서 원전 이용률은 85%→70%→60%로, 전력판매단가는 kWh당 63.11원→60.76원→ 51.52원으로 급격히 하향 조정됐다.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로 인한 손실 금액이 그만큼 따라 줄 수밖에 없는 구도다.

문제는 이 전제에 심각한 맹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경제성 평가에서 전력판매단가는 kWh당 51.52원으로 제시됐다. 이는 한수원이 자체 경영자료를 토대로 만든 5년 치 전망 단가를 근거로 했다. 하지만 한수원이 만든 이 5년 치 전망 단가는 원전 이용률 84%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원전 이용률이 꾸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감사원도 분명히 지적한 사실이다. 감사원은 보고서에 “원전 전체에 대한 규제 강화 등 이용률 저하 요인을 전체 이용률에 반영하지 않은 채 전체 원전의 높은 이용률(84%)을 그대로 한수원 전망 단가 추정에 사용할 경우 실제 판매 단가보다 낮게 추정된다”며 “한수원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회계법인에 이를 보정하지 않고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월성 1호기) 계속 가동 시의 전기 판매 수익이 낮게 추정됐다”고 적시했다. 경제성을 낮추기 위해 지표 사용에 이중 잣대를 썼다는 얘기다.

감사원 처분은 감사위원 합의를 통해 결정된다. 검찰은 다르다. 위법성만을 따지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번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혐의와 관련해 강도 높은 처벌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성 평가가 적정했는지가 관련자의 위법 행위 여부를 가리고, 현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 추진이 있었는지를 가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경제성을 의도적으로 낮춰 월성 1호기를 조기폐쇄했다면 그것으로 인한 비용은 국민이 부담한 것”이라며 “전력판매단가를 바꿔서 경제성을 낮춘 꼼수를 청와대와 산업부, 한수원의 누가 지시하고 시행했는지 이번 수사를 통해서 밝혀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세종=김남준ㆍ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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