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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할건가요? 방 개수는요?" 왠지 찜찜한 인구주택총조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신욱 통계청장(왼쪽)이 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가구 인구주택총조사 방문조사 현장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 1일부터 인구주택총조사 방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 통계청

강신욱 통계청장(왼쪽)이 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가구 인구주택총조사 방문조사 현장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 1일부터 인구주택총조사 방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 통계청

“세상을 떠나보낸 자녀가 있는지, 사별했는지 등 사생활까지 너무 상세히 물어봤어요. 조금 꺼림칙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답했어요.”

3일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주부 이 모(34) 씨의 말이다. 최근 이 씨의 집에는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이 방문했다. 통계청이 지난 1일부터 ‘인구주택총조사’ 방문조사를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인구주택총조사는 5년마다 전 국민 20% 표본으로 실시한다. 조사 결과는 복지·경제·교통 등 정책수립의 주요 자료로 활용된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해당 조사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어 질문의 적절성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자가 여부, 방 개수까지 물어봐”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포함된 조사항목. 사진 인구주택총조사 홈페이지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포함된 조사항목. 사진 인구주택총조사 홈페이지

직장인 김 모(29) 씨 역시 인구주택총조사에 참여하면서 불쾌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임신계획 여부, 자가 여부, 직장 이름부터 집에 방이 몇 개인지까지도 캐물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며 “일부 정보는 주민등록상 입력이 돼 있을 텐데 왜 굳이 다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에는 출산계획, 주거형태, 가족구성 등의 질문 항목이 포함돼 있다.

맘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인구주택총조사에 불만을 표시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거주하는 집이 월세인지 전세인지,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는지도 물어봐 기분이 나빴다” “심문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등이다. 일부는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라고도 했다.

5년 전 ‘기본권 침해’ 헌법소원 청구도 

서울 종로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없음. 뉴스1

서울 종로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없음. 뉴스1

이 같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구주택총조사가 실시되는 5년마다 반복된다. 지난 2015년 11월엔 한 시민이 통계청을 상대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해당 조사가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청구인은 “조사원이 야간 시간에도 집에 방문했고, 개인정보 제공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해 사실상 개인정보 제출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7년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구주택총조사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인구주택총조사로 달성하려는 공익은 조사결과를 정부정책의 수립·평가 또는 경제·사회현상의 연구·분석 등에 활용해 사회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청구인의 사익 제한보다 훨씬 크고 중요하다. 조사 행위가 청구인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어 “2015 인구주택총조사 조사표의 조사항목들은 당시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로 구성돼 있다”며 “조사항목 52개 가운데 38개는 유엔 통계처의 조사 권고 항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범세계적 조사항목에 속한다”라고도 설명했다.

“통계 목적으로만 사용”

통게청은 국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통계청은 “‘통계법 제33조’에 따라 조사에서 답변한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보장되고, 조사 결과는 통계 목적 외엔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조사 결과는 암호화해 관리하는 만큼 안심해도 된다”며 “대면 조사가 꺼려지실 경우, PC나 모바일, 전화로도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조사연구학회 부회장)는 “예전보다 개인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인구주택총조사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도 “주거형태 등 개인적인 정보를 묻는 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대부분 나라에서 공통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 교수는 “인구조사는 1인 가구 정책을 늘릴지 등 정책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는 주요지표이기 때문에 조금은 불쾌하더라도 적극적인 시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아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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