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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민의 시선

민주화 세력의 도박에 저당잡힌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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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의 속성을 강준만 교수가 잘 정리했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뒀다.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

‘독재에 맞서 싸운 세력’ 우상화 #사라진 독재·친일 망령 소환 #과거에 발묶인 정치는 희망 못줘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 얼굴에서 티끌을 찾고, 남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고 자신에겐 봄바람같이 부드러운 게 이 정권 사람들의 특징이다. 맥락 없는 사과와 감성을 자극하는 ‘악어의 눈물’을 보일 때도 있지만 끝끝내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행태가 되풀이된다.

최근 벌어진 민주당의 ‘무공천’ 번복 사건을 보자.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의 성범죄로 인해 다시 치르게 된 보궐선거에 대해 이낙연 대표는 “피해여성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입으로는 사과한다면서 행동은 정반대다. 무공천 하도록 돼 있는 당헌까지 고쳐가며 후보 출마의 길을 터놨다. 모두가 ‘위선’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책임정치’라고 우긴다.

지난해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 표창장 위조 의혹 등이 불거졌을 때 조국 전 장관은 “주변에 엄격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나 “권력기관 개혁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며 기어코 법무장관 자리를 꿰차는 ‘실력’을 보여줬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의혹투성이인 아들의 군 휴가 특혜 논란이 일자 오히려 야당과 언론을 공격하며 사과하라고 윽박질렀다. 자신은 무결점·무오류하다는 착각에 빠진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교만한 행동이다.

차가운 바다에서 북한의 총격에 의해 우리 국민이 피살됐을 때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민에 송구한 마음”이란 발언이 나오기까지 6일이 걸리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 사과마저도 같은 날 북한에 화해의 손짓도 함께 보냈기 때문에 빛이 바랬지만 말이다. 툭하면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사죄하라”며 야당에 날을 세우면서 자신들의 잘못엔 관대하고 비리에 눈감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보다 못한 운동권 선배인 정치 원로가 “왜 이리 명분보다 탐욕뿐인가”라고 개탄했을 정도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민주화 세력’의 위선과 타락을 몇 년째 지켜봐야 하는 건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잉태된 도덕적 우월감과 선민의식이 자신들을 시공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로 절대화시키는 독선과 오만을 낳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우상화한다. 지금도 거대한 폭력과 독재에 맞서 싸우는 탄압받는 순결한 세력이라는 신화 속에 자신과 국민을 가두려 한다.

세상을 민주-반민주 세력의 대결 구도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군사독재 정권이나 산업화 세력·친일파의 부재는 인정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걸핏하면 있지도 않은 독재·친일의 망령을 소환해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려 한다. 독재 정권과의 ‘적대적 공생’이야말로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연장해주는 든든한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꾸 시계바늘을 과거로 되돌려놓으며 뒷걸음질 치려 하는 것이다.

진시황이 총애했던 환관 조고가 있었다. 시황제가 지방 순행 중 온량거에서 운명하자 그는 죽음을 숨기고 조칙을 날조해 막내아들 호해에게 왕권을 넘기는 흉계를 꾸민다. 진시황 없는 세상에서 장자 부소가 권력을 승계하면 자신의 운명도 끝장날 것이기 때문이다. 악취가 새나가 황제의 죽음이 들통날까 두려워한 나머지 “폐하의 명”이라며 거짓 명령을 내려 마차에 마른 생선더미를 싣고, 황제의 식사를 대신 챙겨 먹으며 시황제의 죽음을 숨기려 전전긍긍하는 ‘마차 속 조고’의 모습이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집권 3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은 검찰개혁·재벌개혁·친일청산·적폐청산 타령에 국민들은 질식할 지경이다. 편가르기 정치가 낳은 극심한 분열과 반목이 개인의 삶까지 파고들어 정치와는 무관했던 일상의 관계마저 망가뜨리고 있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로 “생각이 너무 달라 말을 섞지 않는 서먹한 사이가 돼버렸다”는 주변의 경험담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꿈을 파는 직업’이라던 정치가 거꾸로 국민들에게 실망과 두려움만 안겨주고 있다. 그러니 “가수는 꿈을 파는 직업”이라는 나훈아에 열광하는 것이다.

뭐든지 야당 탓, 적폐 탓, 기득권 탓으로 돌리는 건 집권세력의 기저질환이 됐다. 문제는 기저질환이 심해지면 미래마저 암울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과거에 발 묶인 정치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 그런 나라에서 과연 희망에 찬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정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