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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미·중 충돌 대비해 북극항로 개척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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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동해시와 1함대를 북방 전진 기지로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7487t)가 지난 1일 알래스카 놈을 출발하고 있다. 아라온호는 40일 일정으로 북극해 지역연구를 진행한 뒤 다음 달 10일쯤 다시 놈으로 돌아간다. 아라온호는 해빙과 해양생물 연구를 성공리에 수행 중이다. [뉴시스]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7487t)가 지난 1일 알래스카 놈을 출발하고 있다. 아라온호는 40일 일정으로 북극해 지역연구를 진행한 뒤 다음 달 10일쯤 다시 놈으로 돌아간다. 아라온호는 해빙과 해양생물 연구를 성공리에 수행 중이다. [뉴시스]

남방 해상수송로가 차단되면 어떡할 건가. 남방 해상수송로는 제주도 남단에서 대만과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믈라카해협에 이르는 바닷길이다. 우리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오가는 대부분 수출입 물동량이 지나간다. 중동에서 오는 석유도 이 바닷길을 통한다. 이처럼 중요한 해상수송로가 막힌다는 게 기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2025년 전후부터는 사정이 급변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패권경쟁이 물리적 충돌로 변질하는 시기여서다. 중국의 강압적 팽창전략에 미국은 다국적체제로 맞서고 있다.

2025년 전후 남쪽 바닷길 위험해 #남쪽 항로 막히면 북극항로 대체 #중국이 우리 남쪽 항로 위협하면 #한국은 중국 북극항로 차단 카드

미국·인도·일본·호주가 3일부터 인도양 뱅골만에서 다국적 해상훈련 중이다. 중국에 대응한 4개국(QUAD)의 해상훈련이다. 지난 8월 25∼27일 사이엔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무력시위가 오갔다. 미국이 25일 고고도 정찰기 U-2S를 띄워 중국군의 남중국해 실탄 사격훈련을 정찰하자, 다음날 중국은 ‘항모킬러’ 둥펑-26과 둥펑-21D 등을 남중국해로 발사했다. 중국이 미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격침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그런데도 미국은 27일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 인근 해역에 이지스 구축함인 머스틴함을 통과시켰다. 쏠 테면 쏴보라는 미국의 배짱이다.

중국, 공해를 영해에 강제 편입해 불씨

사정은 이렇다. 중국이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군도)와 난사군도의 무인도에 활주로 등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그런 뒤 중국은 영유권을 주장하며 인근 해역을 영해라고 우기고 있다. 이에 미국은 중국이 공해를 자국 영해에 강제 편입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남중국해가 공해인 만큼 누구든 자유통항 권리가 있다며 미 해군 군함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른바 ‘자유항행작전’이다. 중국에 바다를 사실상 뺏긴 베트남과 필리핀은 울분을 참고 있다. 미·중 대치는 장군 멍군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양국의 기 싸움은 머지않은 시기에 실제 충돌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 중국이 이 해역을 통제한다는 시기인 2025년 전후다. 중국은 스스로 영해라고 주장하는 공해에 미군 함정이 들어오면 격파한단다. 중국 내륙의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로 미 항모와 구축함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겁이 나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은 스텔스 구축함과 로봇함정으로 구성된 유령함대(Ghost Fleet)를 투입할 계획이다. 그런 과정에서 미·중 함정끼리 작은 해상 충돌은 순식간에 전투로 번질 수도 있다.

그 불똥은 우리에게 튄다. 미·중의 해상충돌이 벌어질 남중국해는 우리 선박이 지나가는 뱃길이다. 남방 해상수송로가 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압적 팽창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양국의 갈등이 해소되진 않을 것 같다. 이런 중국에 대한 미 공화당과 민주당 입장은 비슷하다. 둘 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에 반감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아예 ‘적’으로 규정해 무역제재와 군사적 대응을 병행하고 있다. 중국의 강압적 행태에 대처하는 하기 위한 미국의 한국 동참 요구가 커질 전망이다. 한국이 마냥 거절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의 대열에 참여하면 중국은 우리의 남방 해상수송로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

북극항로, 안보적 대체항로에 경제 효과 커

북극항로 화물량 전망

북극항로 화물량 전망

따라서 남쪽 바닷길이 차단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북극항로가 그 대안이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해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로다. 한국의 위치에선 아시아-유럽을 잇는 러시아 해역의 ‘북동항로’다. 이 항로를 통해 북극해와 유럽을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갈 수 있다. 이 항로는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한국에서 북극항로로 유럽을 가면 거리가 1만5000㎞다. 남방 해상수송로를 통해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기존 루트는 2만2000㎞다. 북극항로가 7000㎞(32%)나 짧다. 항해시간도 북극항로(30일)가 기존 항로(40일)보다 열흘이나 단축된다.

북극항로의 화물량은 증가 추세다. 2018년 2000만t이 2025년엔 8000만t, 2030년엔 1억t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아직은 겨울엔 얼음이 많아 쇄빙선이 필수다. 7∼10월 초에만 항로에 얼음이 없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2030년에는 북극항로가 완전히 녹는다고 한다. 북극항로에는 러시아가 영향력이 가장 큰데 쟁탈전이 가열되고 있다. 중국은 기존의 일대일로(육상 비단길+바닷길) 전략에 ‘북극 실크로드’를 일도(一道)로 추가했다(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김정기 박사). 러시아산 천연액화가스(LNG) 수송을 위해 북극 실크로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섬에 북극연구소를 설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는 북극항로와 연결되는 북극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기후변화에 맞춰 지속 가능하게 개발하자는 입장이다(안티 린네 핀란드 총리).

쇄빙선 경쟁도 치열하다. 북극항로는 얼음이 녹아도 여전히 유빙이 많아 쇄빙선을 대동해야 한다. 러시아는 쇄빙선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원자력 추진 쇄빙선을 가진 유일한 나라다. 현재 4척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2035년까지 원자력 추진 쇄빙선 9척을 포함해 총 13척 이상을 확보할 전망이다. 중국은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구입한 쇄빙선 쉐룽1호뿐이었지만, 지난해 중국이 자체 건조한 쉐룽2호가 취역했다. 미국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현재 쇄빙선이 2척뿐인데 20년 만에 쇄빙선 건조를 주문했다. 2029년까지 대형 쇄빙선 3척을 건조할 계획이다.

한국은 2009년 진수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7487t)뿐이다. 지난 9월 11번째 북극 항해를 마쳤지만, 대부분 남극에서 활동한다. 해양수산부가 올해 건조할 목표로 추진한 제2 아라온호는 지연되고 있다. 1만2000t급 제2 아라온호는 1번호보다 쇄빙 능력이 2배다. 북극항로를 본격적으로 개척하려면 대형 쇄빙선이 필수다. 한국의 북극항로 개척은 문재인 정부 신북방경제의 구체적인 방안인 ‘9-브릿지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북극항로 활용 계획, 이를 위한 전초기지와 허브기지 확충, 물류대책, 안전보호 전략 등을 세워야 한다.

북방물류 전진기지 동해시엔 국제항 2개

북극항로의 허브기지는 부산이다. 부산엔 국내 최대 항만과 해군 작전사령부가 있다. 전진기지는 동해시다. 동해시엔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동해항(북평항)과 묵호항 등 국제항이 2개나 있고, 해로를 보호할 해군 1함대사령부도 있다. 심규언 동해시장은 “동해가 북방물류의 전진기지로 최적”이라고 말했다. 포항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남쪽에 치우쳐 있다. 2000만명의 수도권 물류와는 거리가 멀다. 동해항은 과거 금강산 관광 크루즈선이 출항했던 곳이다. 동해 신항 3단계 확충시설도 건설 중이다. 그러나 북방물류 전진기지로선 배후시설이 부족하다. 동해시 인근 삼척시와 제천을 잇는 고속도로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고속도로는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물류기반의 핵심이다. 북한 도발에 대비한 1함대는 더 키워야 한다. 1함대사 관계자는 “장교들이 북극항로를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극항로의 경제적 효과는 기본이다. 안보적 차원은 더 중요하다. 유사시 남쪽 바닷길의 대체항로다. 미·중 전략경쟁 격화로 중국이 우리의 남쪽 해상수송로를 막으면 한국은 중국의 북극항로 차단을 카드로 쓸 수 있다. 중국도 남쪽 해상수송로가 미국 등에 의해 차단될 수 있다. 그럴 땐 중국이 제3의 비단길인 북극항로를 활용하려 하겠지만, 그 관문을 한국이 지키고 있다. 중국의 북극항로는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를 지나간다. 중국은 남쪽 항로는 미국에, 북극항로는 한국에 의해 차단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전략적 여건으로 중국이 과도한 행위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3월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북극항로를 개척해 남쪽 바다를 지켜낼 것”이란 말이 뒷받침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언급한 북극항로를 위한 준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할 2025년, 북극항로의 얼음이 녹는 2030년은 멀지 않다.

9-브릿지(Bridge) 전략

문재인 정부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연계한 신북방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9가지 분야의 전략. 농업, 수산, 철도, 전력, 가스, 항만, 조선, 북극항로, 산업단지 등이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