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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못 볼 ‘2013년 윤석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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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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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무엇인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가 핵심인 줄 알았는데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민주적 통제’를 앞세운 윤석열 쫓아내기다.

잦은 지휘권, 검찰개혁에 역행 #소신검사 내쫓고 정치검사 양산 #산 권력 수사로 적절한 견제해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년도 안 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연거푸 발동했다.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다는 검찰청법 조항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칼집에 넣은 칼에 그쳐야 한다. 상징적 징표를 진짜 칼로 삼았다. 그것도 여러 차례 휘둘렀다. 검찰총장을 각종 수사 라인에서 배제하고 고소·고발된 윤 총장 가족 의혹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휘했다. 가족 의혹 은 2019년 7월 윤 총장의 인사청문회 때부터 불거진 것인데 그런데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젠 검사 인사권을 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무력화하고 직접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검찰도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엔 공감하지만 적절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법무부는 검찰에 수사 자율성을 주고 인사와 예산으로 통제하는 게 정석이다.

상부와 다른 의견을 낸 검사를 한직으로 보내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자주 발동한다면 검찰 조직은 정치권력에 예속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검찰의 중립성은 무너진다.

추 장관은 지난 3일 ‘커밍아웃 검사 사표 받으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어느 기관보다 엄중하게 요구된다”며 “정점에 있는 검찰총장의 언행과 행보가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국민적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윤 총장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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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2013년 10월 21일로 돌려보자.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지검 국정감사의 주연은 현 검찰총장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이었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TF팀장이던 윤 지청장은 국감 직전 상부 승인을 받지 않고 국가정보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압수수색을 해 항명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수사팀에서 배제됐고 이듬해 인사에서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윤 지청장은 당시 국감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검사장께 말씀드렸더니) 격노를 하셨다.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 야당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하려 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시 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이다.

법무부에서 압박을 받았다고도 했다.

“수사는 검찰이 하는 것이고 법무부는 정책 부처인데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까지 법무부에서 이렇게까지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하는 사람들은 외압이라고 느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감에서 “상부의 지휘 감독을 따르지 않았다”며 윤 지청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윤 지청장은 “상급자와 제가 생각이 다를 때는 그럴 수 있는데 (지휘 감독을 따르는 데) 지시가 위법하거나 부당한 경우는 좀 다른 거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중대 범죄는 즉시 수사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말썽이 났다”고 덧붙였다.

당시 야권은 윤 지청장을 진정한 검사의 표상인 것처럼 찬양했다. “더럽고 치사해도 버텨 주세요”라는 말까지 나왔다.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는 말을 들었던 윤 지청장은 그때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일까.

윤 총장은 이제 과거의 야당인 현 집권세력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고 있다. 윤 총장이 바뀐 것인가 정치권이 바뀐 것인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남용을 비판한 검사들의 사표를 받으라는 국민 청원이 40만 명을 넘었다. 동조 댓글을 단 검사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 내부의 다른 목소리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여권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완성되면 아마 ‘2013년 윤석열’과 같은 검사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정권이 원하는 수사에선 완력을 써서라도 피의자를 제압하려 할 검사가 나올 것이다. 가장 공정한 정권이니 이제 윤석열 같은 검사는 필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력은 타락하는 속성이 있다. 적절한 견제가 필수다.

현 정부의 검찰개혁은 역설적으로 검찰의 정치 예속을 촉진하며 그토록 비난했던 선택적 수사의 가능성을 높일 우려가 있다. 윤 총장은 3일 법무연수원 강연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눈치 안 보고 수사할 수 있는 것이 진짜 검찰개혁”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의 과거 수사 방식이 모두 적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울림이 있다. 집권 여당은 2013년 윤석열 지청장을 응원했던 그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