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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있으나 마나 기재부 위상 드러낸 홍남기 사표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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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그제 대주주 양도세 확대 방안을 둘러싼 지난 두 달여의 혼란에 책임을 지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냈으나 청와대가 반려했다고 한다. ‘사표 소동’(여당)이든, ‘사표 쇼’(야당)든 뭐로 규정짓든 간에 이번 소란은 ‘무늬만 경제 수장’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경제부총리의 초라한 위상, 그리고 오직 정치적 셈법만 고려해 경제 관료의 전문적인 정책 판단을 찍어누르는 당·청의 포퓰리즘적 접근이 빚어낸 국정 난맥상을 다시 한번 여과 없이 보여줬다.

당·청 독주·오만으로 정책 만신창이 #무너진 경제 리더십 폐해는 국민 몫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표면적 이유는 기재부가 추진했던 과세기준 3억원 확대 방안 대신 여당 주장대로 현행 10억원 유지로 결정된 데 따른 책임 차원이다. 하지만 관가에선 ‘7전7패 관료 패싱’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당·청에 끌려다니느라 쌓인 홍 부총리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대주주 과세 기준 논란뿐 아니라 추경과 재난지원금 등 취임 이후 굵직한 경제 현안마다 국가 정책을 당리당략적 차원으로만 접근하는 여당의 목소리에 눌려 무기력하게 입장을 번복해 왔다. 재정 우려에 선별 지급하겠다던 재난지원금은 총선을 앞둔 여당 뜻대로 전 국민 지급으로 바뀌었고, 재정 건전성을 위한 재정준칙 제정은 돈 풀기에 방해된다는 여당의 반대에 부닥쳐 표류 중이다. 해임 운운(추경 관련 이해찬 민주당 대표 시절)하거나 찍어눌러서라도 뜻을 관철하겠다는 오만한 여당의 막무가내식 포퓰리즘 행보도 문제지만, 처음엔 반대하는 척하다 어느 순간 꼬리를 내리는 홍 부총리의 우유부단함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란 측면도 없지 않다. 이번 사표 소동이 우리 경제를 지키겠다는 결기가 아닌 자리에 걸맞지 않은 경박한 응석으로 비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론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당·청의 포퓰리즘 정책을 앞장서 집행해 온 부총리가 공개 사표라는 반기를 들 정도라면 지금 이 나라의 경제 정책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일단 재신임 입장을 표명했으나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번번이 패싱당하고 국민들 사이에선 실패한 부동산 정책의 표본으로 조롱받는 무너진 리더십으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걱정은 부총리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경제부총리 패싱 논란은 전임 김동연 부총리 시절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단골 소재였다. 문재인 정부 특유의 청와대 독주에다 지금은 총선 압승으로 기고만장한 여당까지 가세해 상황은 심각하다. 표 계산만 하는 당·청, 제 역할을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정부를 지켜보는 것도 괴롭지만 포퓰리즘 정책이 두고두고 불러 올 장기적 폐해가 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