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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는 남이 잘되길 바라며 축원하는 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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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가 7일 전북대박물관에서 서예전을 연다. [사진 김병기]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가 7일 전북대박물관에서 서예전을 연다. [사진 김병기]

서예가 심석(心石)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의 서예전이 7일 전북 전주 전북대박물관에서 개막한다. 2004년 백악미술관 전시 이후 16년 만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김 교수는 서예와 삶에 대한 생각을 담아 작품집 『축원·평화·오유: 김병기의 수필이 있는 서예』(어문학사)도 출간했다. ‘축원·평화·오유’는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서예의 의미, 서예와 함께한 그의 삶을 대변하는 키워드이다.

전북대 교수 퇴임 앞두고 서예전 #‘축원·평화·오유’ 주제 100여점 전시 #“동서고금 명문 쓰며 자연스레 힐링 #서예로 분노·원망 해소, 평화 얻어”

우선 김 교수에 따르면 “서예는 곡진한 뜻을 담아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예술”이다. 문장을 통해 구체적인 뜻을 담아 전할 수 있어서다.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름을 지어 써주고, 뜻한 길로 정진하길 바라며 호를 지어주고, 새집 이사를 축하하며 현판을 써준 일 등이 모두 축원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무량수(無量壽)’는 한량없이 장수한다는 뜻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의 장수를 비는 마음을 표현한다. 나이를 쌓는다는 의미로 가로획을 겹쳐 쌓으며 튼실한 예서체로 쓴 글씨가 단연 압권이다. 이번 전시에선 축원을 표현한 김 교수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불변응만변’, 175x95㎝, 한지에 먹, 2019.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번 변하는 것에 대응하자’는 뜻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저녁 중국 상하이에서 쓴 구절이다. [사진 김병기]

‘불변응만변’, 175x95㎝, 한지에 먹, 2019.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번 변하는 것에 대응하자’는 뜻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저녁 중국 상하이에서 쓴 구절이다. [사진 김병기]

김 교수는 또 서예는 그 행위 자체가 ‘힐링’이 되는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서예는 부드러운 붓에 먹물을 묻혀 쓰는 예술이라 붓끝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동서고금의 명언과 명문을 골라 쓰며 자연스럽게 명상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서예로 분노와 원망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그에게 힘이 되어준 글자 중엔 ‘탄설(吞雪·눈을 삼키다)’도 있다. 처음 붓을 시험하면서, 또 끝에 남은 먹물을 정리할 때 으레 쓰곤 했다. “가슴 답답한 일이 있으면 ‘타는 가슴을 눈을 삼켜서라도 식히자’고 다짐했다”는 그는 “휘호 하는 사이에 정말 가슴이 시원해지며 어려운 순간을 평화롭게 넘기도록 해줬다. 이게 바로 서예의 감동과 효과”라고 했다.

전시작 중 송나라 승려 야부 도천선사의 시구도 눈에 띈다. ‘수한야냉어난멱(水寒夜冷魚難覓) 유득공선대월귀(留得空船帶月歸)’. ‘물은 차고 밤공기도 싸늘한데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 때면/빈 배인 채로 달빛만 싣고서 돌아오면 되지’란 뜻이다. 지난해 여름 전북대 한옥 정문에 걸 현판 글씨를 쓴 다음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욕심 없이 붓을 휘두르며 맘껏 즐긴 ‘오유(傲遊)’의 순간이 활달하고 웅장한 필치의 이 초서 작품에 담겼다.

그는 서예를 “필가묵무(筆歌墨舞), 즉 붓의 노래 먹의 춤”이라고 했다. “한순간 몰입해 누구도 출 수 없는 나만의 붓 춤을 춘 흔적이 바로 서예”라면서다. 그게 바로 오유(傲遊)의 경지다. 그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뼈대 있게 노는 것이며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경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유년 시절부터 부친 김형운 선생으로부터 한문과 서예를 배웠고, 강암 송성용 선생 문하에서 서예가로 컸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냈고, 제1회 원곡서예학술상을 받았다. 또 최근 5년간 루마니아, 헝가리,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 서예전을 열며 해외에 한국 서예를 알렸다.

전시에선 광개토대왕비와 한글 훈민정음 판본체를 융합해 만든 그만의 한글체 작품도 다수 선보인다. 원목 통나무의 질박함과 한산 세모시의 청량하고 아삭아삭한 멋이 돋보인다. 김 교수는 “인품이란 특별한 게 아니다. 평소의 생활 모습”이라며 “서예를 통해 내 삶을 성찰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진심으로 남이 잘되기를 바라며 축원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했다. 전시는 25일까지(일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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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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