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피해액 3800억원...금융당국 '역외지주사' 투자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2020.11.04 14:18

중국에서 신발과 의류를 생산하는 차이나그레이트는 지난 2009년 중국이 아닌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사업은 중국에서 하고, 자본은 한국에서 조달하는 역외지주회사 형태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지난 5월 상장폐지됐다. 연결재무제표상 1년 내 현금화가 가능한 당좌자산만 5000억원 넘게 있었는데, 250억원의 사채원금을 갚지 못해서다. 상장폐지로 국내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액만 최소 418억원으로 추산됐다.

금융당국이 역외지주사에 대한 투자시 개별 재무현황에 대한 공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투자를 하라는 입장을 냈다. 셔터스톡

금융당국이 역외지주사에 대한 투자시 개별 재무현황에 대한 공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투자를 하라는 입장을 냈다. 셔터스톡

금융당국이 역외지주사에 대한 투자 주의보를 내렸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4일 “국내 상장 역외지주사의 개별 재무현황에 대한 공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역외지주사 25곳 중 12곳 상장폐지…모두 중국기업

지난 2007년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외국기업은 36곳이다. 이중 25곳이 역외지주자다. 역외지주사는 본국에 상장하기 어려운 중·소규모 기업들이 제3국에 지주사를 만들어 해당 국가에 상장하는 회사들이다. 한국에 상장된 역외지주사 대부분은 중국기업이다. 역외지주사 25곳 중 24곳이 중국기업이다.

2007년부터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해외기업 현황. 역외지주사 25곳 중 12곳이 상장폐지됐다. 금융위원회

2007년부터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해외기업 현황. 역외지주사 25곳 중 12곳이 상장폐지됐다. 금융위원회

한국 증권시장의 국제화 등을 위해 외국기업 상장을 시작했지만, 현재까지는 상처가 더 많다. 상장 외국기업, 특히 역외지주사의 경우 상장폐지가 빈번했다. 상장 외국기업 중 상장폐지된 곳은 14곳인데, 이중 역외지주사가 12개를 차지한다. 상장폐지된 역외지주사는 모두 중국 기업이다.

중국 섬유업체인 중국고섬은 2011년 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으나 2개월 만에 1000억원대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2013년 상장폐지됐다. 원양어업 전문 업체 중국원양자원은 허위 공시와 회계문제 등으로 2017년 상장폐지됐다. 해당 회사는 홈페이지에 자사 보유 선박 1척을 여러 대로 보이게끔 사진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실제 상장폐지된 중국기업 12곳 중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된 기업만 5곳이고 2곳은 정기보고서 등을 제출하지 못해 상장폐지됐다.

연결재무제표 ‘착시효과’로 우량 기업으로 탈바꿈

역외지주사는 재무제표 상으로는 우량 기업들이 많다. 자본시장법령에 따라 본국 사업자회사를 포함한 연결재무제표만 공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결재무제표는 지배기업과 종속기업의 자산과 부채, 손익 등을 합쳐 만든다. 중국 등 본국에서의 사업이 잘 되면 역외지주사의 재무제표도 우량하다.

하지만 역외지주사의 별도 재무제표만 보면 상황이 다른 경우가 많다. 차이나그레이트처럼 연결제무재표 상으로는 현금이 넘치지만, 지주사만 보면 자체 수익구조와 유동자산 부족 등으로 자체적으로는 빚을 갚을 능력이 전무한 경우도 있다. 금융당국은 “연결재무제표 착시로 인해 역외지주사의 재무 상황을 잘못 판단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지주사의 경영이 어렵다면, 본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업 자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다. 사업자회사로부터 배당을 받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본국의 외환거래 규제로 인해 이같은 방법이 쉽지 않을 때도 많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자회사가 해외에 있는 지주사에 배당금을 주려면 외환 관리 당국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역외지주사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대금 상당액을 본국에 송금하고 있지만, 해당 국가의 외환거래 규제 등으로 인한 자금 미회수 위험 등의 공지는 미흡한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장폐지된 해외기업으로 인해 국내 투자자가 입은 피해 규모.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상장폐지된 해외기업으로 인해 국내 투자자가 입은 피해 규모.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국내 투자자 피해만 3843억원…금융당국 "투자자 보호 강화 방안 강구"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며 국내 투자자들의 피해도 누적되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기업 14곳의 상장폐지로 국내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은 3843억원으로 추산됐다. 중국원양자원의 피해액이 789억원이었고, 성융광전투자(774억), 중국고섬(782억원) 등이다.

금융당국도 뒤늦게라도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우선 연결재무제표만 공시하면 되는 현재 규정을 별도재무제표도 함께 공시하도록 바꾸는 방안이 유력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외국기업 현황을 파악하고 현 제도상 문제점과 개선사항에 대해 검토하여,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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