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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안인득' 막기 요원, 정신과 퇴원 후 지역센터 통보 절반도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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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가 퇴원했을 때 이 사실을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알리는 병원은 10곳 중 4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자의 경우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지역사회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심평원, '의료급여 정신과 2주기 1차 적정성 평가' 결과 #226곳 중 43%만 조현병 환자 퇴원사실 지역에 알려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의료급여 정신과 2주기 1차 적정성 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6월 조현병 환자를 입·퇴원시킨 기록이 있는 전국 226곳 병원의 지역사회서비스 연계 의뢰율은 43.3%로 나타났다. 지역사회서비스 연계 의뢰율은 병원들이 조현병 환자의 퇴원 사실을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장에게 통보한 비율이다.

지난해 진주 묻지마 살인사건을 낸 안인득. 중앙포토

지난해 진주 묻지마 살인사건을 낸 안인득. 중앙포토

현재 정신건강복지법 제52조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은 당사자나 보호자 동의를 거칠 경우 환자의 퇴원사실을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장이나 보건소장에게 통보할 수 있다. 특히 타살이나 자살 위험으로 병원에 입원한 정신질환자나, 정신과 전문의가 퇴원 후 치료가 중단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환자의 경우엔 본인 동의가 없어도 퇴원 사실을 통보할 수 있도록 지난해 법 개정이 이뤄졌다.

지난해 4월 자신이 살던 경남 진주시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에게 흉기를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의 경우 2015년 조현병 증세로 치료받았지만, 이후 치료를 중단한 뒤 사실상 방치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타인에 해를 가한 전력이 있는데도 정신질환 정보 등이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센터로 통보되지 못해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법 개정이 이뤄졌는데도,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지역사회 정신건강센터로 연계되는 곳이 절반이 안 되는 것이다.

조현병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와 행동(이상한 말과 행동), 정서적 둔마(정서적 표현·의욕 감소) 증상 등을 동반한다. 약물치료를 필수로 해야 하며 정신치료, 정신 사회적 재활치료를 포함한 정신 사회적 치료를 함께 할 때 더 나은 치료성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는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뒷받침될 경우 자·타해 위험성이 낮다고 본다. 그러나 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하면 증상이 악화해 언제든 안인득 사건처럼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지표별 평가결과. 자료 심평원

지표별 평가결과. 자료 심평원

심평원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계되면 일정 기간 집중적인 사례 관리와 재활 서비스, 가족 교육 등 사회적응을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퇴원 환자의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지역사회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평가 결과에 따르면 조현병·알코올 장애 환자의 후속 치료연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퇴원 후 30일 이내 낮 병동 또는 외래방문율’은 38.8%에 그쳤다. 조현병 환자가 조기 퇴원한 뒤 30일 이내 재입원하는 비율은 42.6%로 나타났다.

조현병과 알코올 장애로 치료받은 환자는 평균 91일, 62일씩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재원일수(조현병 49일, 알코올 장애 16일)보다 길었다.

지난해 1~6월 조현병 등으로 정신과를 찾은 환자는 남성이 5만2572명(69.5%)으로 여성(30.5%)의 약 2.3배였다. 40세 이상 70세 미만이 6만2786명으로 83.0%를 차지했다. 상병별로는 조현병(50.5%)과 알코올 및 약물 장애(26.5%)가 10명 중 8명꼴(77.0%)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평가에서 ▶(진료과정) 정신요법 및 개인 정신치료 실시횟수(주당) ▶(진료결과) 재원 및 퇴원환자의 입원일수, 퇴원 후 30일 이내 재입원율 및 낮 병동·외래방문율, 지역사회서비스 연계 의뢰율 등 총 9개 지표로 전국 의원급 이상 359곳의 점수를 따져봤더니 66.8점으로 조사됐다. 1등급은 서울대병원과 중앙보훈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전국 55곳으로 나타났다. 서울 9곳, 경기 14곳, 강원 2곳, 충청 5곳, 전라 10곳, 경상 13곳, 제주 2곳 등으로 분포돼있다. 구체적인 결과는 심평원 누리집(http://www.hira.or.kr)에 공개돼있다.

하구자 심평원 평가실장은 “적정성 평가가 의료급여 정신질환자 입원 진료의 적절한 관리 및 지역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복귀유도를 위해 지역주민의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편견 해소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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