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백만 송이 장미를 아내에게 바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0.11.04 09:00

업데이트 2020.11.04 10:11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1)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붉은 장미를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고 있는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그대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꽃과 바꾸어 버렸다네.”

러시아 노래 ‘백만 송이 장미’가 흐른다. 이 노래는 제정 러시아시절 실존했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에 얽힌 사연을 담고 있다. 가난한 화가였던 피로스마니의 마을에 어느 날 유명한 여배우 마르가리타가 방문하게 됐다. 첫눈에 반한 피로스마니는 여러 방법으로 프러포즈했고, 여의치 않자 급기야는 변변치 않은 집과 그림, 심지어 자신의 피까지 팔아 엄청난 양의 꽃(대부분은 붉은 장미)을 사 그녀가 묶고 있는 집 앞을 가득 메웠다. 그 꽃길을 배경으로 프러포즈하게 되고 결국은 결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얼마 지속되지 않았고, 헤어진 후 피로스마니는 삶의 의욕을 잃은 채 극도의 빈곤과 결핍에 시달리다 1918년 56세의 나이로 눈을 감게 된다. 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노래가 러시아의 프리마돈나 알라푸카쵸바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다.

“선배님 실속 있게 사세요.” 오랜만에 통화한 후배가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내 사업의 부진을 걱정하며 제주에 내려와 봉사하면서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나를 보고 걱정스럽게 말을 건넨다. “이 사람아 내가 인생 후반부를 실속 있게(돈 버는 것에 연연하는) 살려고 한다면 남는 것은 마음의 가난뿐일세. 그건 인생 후반부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지.” 내 대답이었다.

일반적으로 인생 후반부 과거의 기준으로 실속 있게 살려면 돈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런데 인생 후반부는 돈만으로 다 안되는 삶이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며 필연적으로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몇 해 전 아내의 60세 환갑선물이 생각난다. 돈으로 무엇을 사서 선물할 여력이 안 됐다. 과거 인생 2막, 그래도 비교적 여유로웠던 직장생활 시 아내의 생일선물 수준을 생각하면 턱도 없는 현실이었다. 장미꽃 백만 송이는커녕 몇 송이의 장미꽃도 신경이 쓰였다. 백만 송이 장미꽃의 주인공이 화가였으니 그에 착안해 초라한 실력이지만 아내의 초상화를 파스텔로 그려 선물한 적이 있었다. 올해는 버려진 유리조각과 철사를 이용해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했다. 단연코 얘기하건대 결혼 후 이제껏 내가 선물했던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 더 기뻐하더라. 마음을 담은 배려와 선물, 봉사, 기여는 그 어떤 황금보다 무게가 더 하다. 실속 있는 삶은 부유한 삶이 아니다. 마음이 풍요로운 삶이다.

아내의 환갑선물로 그린 초상화와 61세 생일기념으로 만든 목걸이 선물. 마음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지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사진 한익종]

아내의 환갑선물로 그린 초상화와 61세 생일기념으로 만든 목걸이 선물. 마음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지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사진 한익종]

올해는 버려진 유리조각과 철사를 이용해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했다. 단연코 얘기하건대 결혼 후 이제껏 내가 선물했던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 더 기뻐하더라. [사진 한익종]

올해는 버려진 유리조각과 철사를 이용해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했다. 단연코 얘기하건대 결혼 후 이제껏 내가 선물했던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 더 기뻐하더라. [사진 한익종]

은퇴를 훨씬 넘긴 해녀분이 갓 잡은 소라 몇 개를 전한다. 눈물이 왈칵 난다. 여든을 훨씬 넘긴 아픈 몸을 이끌고 바다에 들어 겨우 잡은 소라 몇 개를 조금 줘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건넨다. 이 세상 어느 선물이 이보다 값질까? 어느 선물이 나를 이렇게 감동하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이제껏 제주 마을에 와서 한 봉사라고는 밝은 웃음으로 건네는 인사뿐이었는데 돌아오는 보답이 너무 크다. 내 작은 몸짓이 이런 엄청난(?) 선물로 돌아오다니.

흔히 우리는 상대를 평하면서 마음이 닫혔다느니, 보수적이라느니, 타산적이라느니 하며 비난을 한다. 자신을 먼저 돌이켜 보고 난 후 그런 비난이 어떤가?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데 거절할 사람은 없다. 내가 먼저 베푸는데 미워하고 마음을 닫을 사람은 없다. 진실을 담은 봉사는 고래도 춤추게 할 뿐만 아니라 수백만개의 자물쇠로 닫혔던 마음도 풀 수 있는 열쇠이다. 수백만 송이의 장미꽃도 피운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중략)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가수 심수봉이 번안해 부른 백만 송이 장미의 가사이다. ‘인간은 지구별에 소풍 온 소풍객이다’라고 어느 시인이 읊었다. 지구별에 소풍 왔다 가는 소풍객이 자신만 살겠다고 아웅다웅하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양 돈 버는 것에 급급하다 떠난다면 그게 과연 실속 있는 삶일까?

고 이병철 회장께서 쓰고, 얼마 전 타계한 이건희 회장이 마음속에 걸었던 ‘공수래공수거’란 휘호가 떠오른다. 공수래공수거를 깨달으면 욕심부릴 일도 없고 삶의 가치를 부의 창출에만 두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그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생각으로 봉사하는 일이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면서 깨달아 가는 진리. ‘나누면 더 커진다. 봉사는 이타를 통한 이기의 실현이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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