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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코로나 시대의 여행③] 산린이, 차박, 1주일 살기, 따로함께… 코로나가 바꾼 여행 풍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월 20일 최초의 한국인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로부터 열 달째, 세상은 너무나 변했습니다. 사회 모든 부문이 위기라지만, 여행업이 입은 피해는 그 중에서도 심각합니다. 중앙일보는 3회에 걸쳐 사경을 헤매는 여행업을 진단하고 코로나 시대 여행법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알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행도 달라져야 합니다.

특집기획 1회 : 최악의 위기, 초토화된 여행업
특집기획 2회 : 오락가락 관광 정책
특집기획 3회 :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자 한국 대표 명소 제주도도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방한 외국인 시장은 여전히 어둡지만, 내수시장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3월 내국인 방문자 수가 지난해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가 10월 현재 85% 이상까지 올라왔다. 국내 최고의 자연친화적 관광지로서 해외여행 수요를 흡수한 덕분이다. 흥미로운 건, 특히 고급 콘텐트가 호황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제주신라호텔의 허니문 패키지는 코로나 사태가 낳은 히트 상품이다. 1박 100만원이지만, 해외여행이 막힌 요즘 대체 상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제주도 신혼여행은 1980년대 트렌드였다.

제주도 내국인 입도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제주도 내국인 입도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코로나 시대에도 여행은 계속된다. 다만 여행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대규모·단체·싸구려 여행은 타격을 입은 대신, 비대면·체류형·자연친화적·럭셔리 국내여행이 선전하고 있다.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변했으니 여행도 변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 주목해야 할 여행레저 풍경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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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으로

‘사람을 피해 자연으로 갔다.’ 코로나 시대 여행법은 이 한 줄로 요약된다. 통계로도 검증된다. 2~6월 ‘카카오내비’ 이동 데이터에 따르면 동물원(-43%)·테마파크(-38%) 같은 전통의 관광지 방문율이 급감했다. 대신 산(22%), 계곡(43%), 야영장·캠핑장(77%) 방문이 폭증했다.

코로나는 레저문화를 바꾸었다. 20~30대도 사람이 덜 몰리고 탁 트인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산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성세대처럼 등산복을 빼입지 않고 간편한 복장으로 산을 오른다. [사진 블랙야크]

코로나는 레저문화를 바꾸었다. 20~30대도 사람이 덜 몰리고 탁 트인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산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성세대처럼 등산복을 빼입지 않고 간편한 복장으로 산을 오른다. [사진 블랙야크]

신인류 ‘산린이’의 출현도 코로나 시대의 산물이다. 레깅스·운동화 같은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올라 SNS에 부지런히 인증사진을 올리는 ‘산린이(등산 초보)’의 등장은 등산복 차림의 중·장년 세상이었던 산행 풍경을 바꿨다. 산린이는 굳이 높은 산, 먼 산을 찾지 않는다. 국립공원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올 1~9월 22개 국립공원 탐방객은 평균 18.5% 줄었으나, 북한산(+19.3%) 치악산(+23.9%) 계룡산(+16.8%)은 도리어 탐방객이 늘었다. 대도시에 있거나 접근성이 좋은 국립공원이다.

차에서 잠을 자며 캠핑을 즐기는 ‘차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민규 기자

차에서 잠을 자며 캠핑을 즐기는 ‘차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민규 기자

캠핑도 호황을 맞았다. 가족끼리 자연을 즐기는 캠핑이야말로 최고의 ‘비대면 여행’으로 각광받았다. 캠핑장 예약 사이트 ‘땡큐캠핑’에 따르면, 지난달 5~25일 예약률이 지난해보다 무려 92% 증가했다. 자연 속에 차를 세워두고 캠핑을 즐기는 ‘차박’ 열풍도 지속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차박캠핑클럽’ 회원 수가 지난 3월 9만 명에서 10월 19만 명으로 폭증했다.

국립공원 탐방객 수(1~9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립공원 탐방객 수(1~9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코로나 시대 국립공원의 대처는 평가할 만하다. 전국 국립공원은 문을 닫은 적이 없다. 바이러스가 무섭게 퍼져나갔던 봄에도 문은 열어둔 채 시설만 폐쇄했다. 이후에는 야영장 50% 이상 운영 방침을 유지했다. 단풍 시즌에도 문을 열었다. 대신 대형 버스의 주차장 출입을 막았고 케이블카 탑승 인원을 절반으로 줄였다. 대규모·단체 중심이었던 산행 문화를 소규모·개별 위주로 이끈 것이다. 국립공원공단 김상기 탐방관리이사는 “국민의 불안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국립공원만 한 곳이 없다고 판단해 적극적인 운영 방침을 세웠다”고 말했다.

생활이 관광이 되다 

7월 말 강진에서 1주일 살기를 체험한 이청희ㆍ허달막씨. 강진만 생태공원을 산책하고 있다.[사진 채지형]

7월 말 강진에서 1주일 살기를 체험한 이청희ㆍ허달막씨. 강진만 생태공원을 산책하고 있다.[사진 채지형]

인구 3만5000명이 채 안 되는 남도의 마을 전남 강진. 이 외진 갯마을이 올해 뜨거운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이 5월 시작한 생활관광 프로젝트 ‘강진에서 1주일 살기’에 쏠린 관심 덕분이다. 목표 인원의 두 배가 넘었는데도 신청이 쇄도해 급하게 예산을 마련 중이라는 소식을 중앙일보가 보도한 10월 15일. 강진군청 홈페이지는 다운됐고, 강진군청과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은 온종일 울리는 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이튿날 문체부 국정감사에서도 ‘강진에서 1주일 살기’는 코로나 시대 유력한 여행 콘텐트로 거듭 인용됐다.

강진에서 1주일 살기는 강진의 농박(농촌민박) 브랜드 ‘푸소(FUSO)’를 문체부 생활관광 공모사업에 적용한 사례다. 참가자가 푸소 농가에 머무는 6박7일간 모두 12끼가 제공된다. 참가비는 1인 15만원이고, 농가엔 같은 액수의 지원금을 더해 1인 30만원씩 수익이 돌아간다. 숙박업은 원래 아침 식사만 제공할 수 있는데, 저녁 식사가 농촌 체험 활동의 하나로 포함됐다.

강진 농박 브랜드 푸소 농가 표식. 손민호 기자

강진 농박 브랜드 푸소 농가 표식. 손민호 기자

강진에서 1주일 살기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시골 인심이다. 밭에서 갓 딴 채소로 차려준 시골 밥상에서 참가자들은 위안을 받았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골 생활은 도시 생활에 찌든 현대인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 콘텐트였다. 독립 농가에서 가족 단위 참가자만 생활한다는 점도 비대면 여행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11월 3일 현재 강진에서 1주일 살기에 참여한 농가는 29곳이고, 참가자는 1007명이다. 농가를 더 구하지 못해 밀려드는 참가 신청을 뿌리치고 애초 목표의 세 배 가까운 참가자만 수용했다.

하루 500만원 방이 팔린다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불황에 시달린 도심 일반 호텔과 달리 올해 객실 부문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다. 수영장·테니스장 따위의 부대시설을 회원제로 운영한다. [사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불황에 시달린 도심 일반 호텔과 달리 올해 객실 부문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다. 수영장·테니스장 따위의 부대시설을 회원제로 운영한다. [사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코로나 시대는 뜻밖의 여행 트렌드를 생산했다. 여행 목적지로 이름난 관광지보다 고급 숙박시설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회원제 리조트나 소규모 럭셔리 호텔·리조트가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이를테면 서울 남산의 호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는 2010년 개관 이래 객실 부문 최대 매출을 올렸다. 코로나 사태 이후 투숙률 80~90%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총 50개 객실 규모로 주말 기준 1박 70만원이 넘는다. 모든 부대시설(수영장·피트니스센터·테니스장 등)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경남 남해 사우스케이프. 남해 절경을 마주보는 절벽 위에 리조트가 들어앉아 있다. [중앙포토]

경남 남해 사우스케이프. 남해 절경을 마주보는 절벽 위에 리조트가 들어앉아 있다. [중앙포토]

사우스케이프(남해), 세이지우드(홍천), 포도호텔(제주도),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가평) 등 이른바 럭셔리 골프 리조트도 호황을 누렸다. 이들 리조트는 모두 객실이 50개가 안 된다. 해외로 분산됐던 골프 여행객이 몰리기도 했지만,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시설과 서비스가 통했다. 세이지우드의 최상위 객실 펜트하우스 사례가 있다. 하룻밤에 500만원이 넘는 객실의 지난해 투숙률은 ‘0’이었다. 올해는 8월에만 17일이나 손님을 치렀다.

여행업계 대부분이 힘들다는데, 고급 시설이 왜 인기일까. 방역 지침에 의외로 답이 있다. 고급 시설은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 안전과 방역도 여느 대중시설보다 믿을 만하다. 고가 회원제 시설일수록 비대면이 이뤄진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니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쉬는 게 낫다. 국내여행이라고 싸구려만 팔리는 게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르쳐준 이치다.

따로 그리고 함께

2020 제주올레 걷기축제 현장. 모두 26개 코스에서 동시에 최대 15명이 한 코스씩 걷는다. 그렇게 26일간 축제가 진행된다. 제주올레가 찾아낸 코로나 시대 걷기축제의 모습이다. [사진 제주올레]

2020 제주올레 걷기축제 현장. 모두 26개 코스에서 동시에 최대 15명이 한 코스씩 걷는다. 그렇게 26일간 축제가 진행된다. 제주올레가 찾아낸 코로나 시대 걷기축제의 모습이다. [사진 제주올레]

시방 제주도에서는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전국의 거의 모든 문화관광 축제가 취소됐지만, 제주올레 걷기축제하고는 상관이 없다. 올해도 신나게 길을 걷는다. 규모도 크게 줄지 않았다. 11월 3일 현재 축제 참가자는 5400명이다.

대규모 행사가 불가능한 시대, 제주올레는 어떻게 축제를 열 수 있을까. 5400명이 모인다면 위험한 것 아닐까.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묘수가 등장한다. 이른바 ‘따로 함께’ 전법이다.

축제 참가자는 코스마다 최대 15명으로 제한된다. 이 15명이 팀을 이뤄 하루에 한 코스씩 걷는다. 오늘 1코스를 걸으면 내일 2코스를 걷는 식이다. 이렇게 23일을 걸으면 제주도 본섬 23개 코스를 완주하게 된다. 이와 같은 팀이 모두 23개 꾸려진다. 23개 팀이 23개 코스에 흩어져 각자 출발한다. 23개 팀이 하루에 한 코스씩 23일간 23개 코스를 이어달리기하듯이 걷는다. 23일간 23개 팀은 같은 올레길을 걷는다. 그러나 길에서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2020 제주올레 걷기축제 포스터

2020 제주올레 걷기축제 포스터

따로함께. 2020 제주올레 걷기축제의 슬로건이다. 코로나 시대 방역 지침과 딱 맞아 떨어진다. 축제 전체 참가자는 850명이지만, 그들이 여러 날 여러 코스를 걸어 누적 참가자는 5400명이 된다. 제주올레 걷기축제의 개최가 중요한 이유는, 코로나 시대에도 어떻게든 축제를 열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예산을 허투루 날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축제는 11월 14일 끝난다.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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