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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홍남기 사표 진실게임···"文대통령이 체면 살려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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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21년도 예산안 제안 설명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21년도 예산안 제안 설명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대통령 참모가 아니라 정치인의 행동으로 보인다. 형식 자체도 대단히 부적절하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3일 오후 국회에서 돌발적으로 사의 표명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 여당 의원들이 홍 부총리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 직후 여권에서는 “장관이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두는 자리냐”(중진의원)는 지적도 나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반려한 뒤 재신임했다”고 밝힌 이후, 홍 부총리가 “(반려 소식을) 국회 오느라고 못 들었다”고 답하면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이날 정치권에서는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반려 과정을 놓고 일종의 ‘진실 게임’ 양상마저 벌어졌다.

與 “대통령이 묵인…체면 살려준 것”

여권에서 유력하게 나온 해석은 “문 대통령의 묵인 아래 홍 부총리가 본인의 사의 표명 사실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하면서 ‘이런 사실을 공개해도 좋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면서 “홍 부총리 체면을 살려준 것이다.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를 신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핵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려운 국면에서 홍 부총리가 경제 지표 반등을 이끌었는데, 그러면 이걸 계속 이어나가야 되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앞으로의 역할을 종합한 재신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전세 난민’으로 비판받고 대주주 요건 완화로 탄핵 국민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등 수모를 겪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일종의 배려를 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여권 인사는 “홍 부총리가 정책 혼선 상황에 대해 경제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표했고, 문 대통령이 사표를 즉각 반려하면서 오히려 홍 부총리에게 더욱 힘을 실어준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 역시 이번 사건을 홍 부총리에 대한 재신임으로 보는 해석이다. 기획재정부가 고수하려 했던 ‘대주주 요건 강화(10억원→3억원 보유 기준)’ 정책을 백지화하더라도, 홍 부총리의 입지에 변함이 없다는 걸 알리려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사표 반려에 대해 “OECD 국가 중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위를 기록한 상황을 이끌어온 경제수장을 현시점에서 교체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냐”고 말했다.

“고위 당정 회의에서 고성”

하지만 여권 일각에선 “홍 부총리가 사표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해석론도 나온다. 근거는 지난 1일 저녁에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 분위기다.

당초 당·정·청은 이날 원활한 협의를 위해 인원을 줄여 소규모 당·정·청 회의를 열려고 했다. 하지만 사전 정책 회의에서 ‘3억원 대주주 요건’ 유예 여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급기야 규모를 줄이지 못한 채 격론이 벌어졌다. 이 자리에 있던 여권 고위관계자는 “회의 중 고성이 오가는 정도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당은 ‘3억원 대주주 요건’의 시행 유예를 재차 요구했고, 홍 부총리는 우려되는 지점을 제시하며 조목조목 반대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의 의견은 당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당·정·청은 이후 재협의를 거쳐 사실상 당의 입장을 최종안으로 확정했다. 홍 부총리가 배수진을 치고 정책 일관성을 주장했으나, 당·청의 요구 앞에 꺾인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주장이 기각된 것보다 최종 결정 전 조율 과정에서 이견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된 게 문제였다”며 “홍 부총리 입장에선 사의를 표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심새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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