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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주자들 죄다 난쟁이 만들면 당이 무슨 수로 성장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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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야권 대선 주자 ‘5인 원탁회의’ 제안한 오세훈

얼마 전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데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같은 대열에 뛰어들었다. 유승민 전 의원과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재도전 의사를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현재까지는 ‘내년 선거에 관심 없다’며 대선을 말한다. 서울시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야권 주자들이 일제히 ‘대선 직행’을 외치고 나선 셈이다.

“서울시장 필승카드 안 보이고 #출마 제안도 많이 받고 있지만 #중도 기반으로 대선 집중할 것 #5인회의체, 연말쯤엔 구성된다”

대부분 원외 인사인 데다 지지율이 월등하지 않아 아직은 국민적 주목을 받지 못한다. 언제 유력 주자가 등장할지는 알 수 없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급부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의 키를 쥔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이미 평가가 끝난 분”이라는 식으로 이들 후보군을 몇 차례 깎아내렸다. 당내에선 ‘김종인 대망론 탓’이란 해석이 나오는가 하면 그가 주도하는 중도 행보에 대한 찬반 논란도 여전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당의 좋은 후보를 깎아내리는 건 해당 행위이자 자해 행위’라고 말했더니 김 위원장이 ‘당에 후보가 없다고 말한 적 없다.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나서란 뜻이었다’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당의 좋은 후보를 깎아내리는 건 해당 행위이자 자해 행위’라고 말했더니 김 위원장이 ‘당에 후보가 없다고 말한 적 없다.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나서란 뜻이었다’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불만이 큰 주자들의 포화는 조금씩 김 위원장을 향하고 있다. 복당의 길이 막힌 홍준표 의원은 “새로운 길이란 게 민주당 2중대냐”고 김 위원장을 겨냥했다. 의총에선 내년 1월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당 대표를 뽑자는 ‘비대위 해체, 조기 전당대회론’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 오세훈 전 시장은 ‘김종인의 나홀로 리더십이 문제’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대안으로 자신을 비롯해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지사와 함께 안철수 대표, 홍준표 의원이 참여하는 5인 원탁회의체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다섯 명의 대선 주자가 모여 ‘국가정상화 비상연대’를 만들고 국가 현안에 일치된 목소리를 내면 김종인 독주의 부작용이 해소될 거란 주장이다. 의문 부호가 많다. 비대위를 대체하자는 건지, 다섯 사람이 모인다고 당이 과연 안정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직후 김 위원장이 오 전 시장 등 서울 지역 전·현직 중진 의원들과 만났다. 대부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지만 그에게서 ‘당내엔 인물 없다’고 낮은 평가를 받은 인사들이다. 어떤 말들이 오갔을까. 또 생각과 입장이 다른 다섯 사람의 원탁회의는 정말로 만들어질까. 오 전 시장에게 물었다.

김종인 위원장과 무슨 말을 나눴나.
“서울시장 얘기가 많았다. 나는 두 가지 건의를 했다. 당내 좋은 후보를 깎아내리는 것, 또 중요 결정 때 지금의 톱다운 방식이 계속되는 건 당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재보선에 관심이 있나.
“물론 있다. 이겨야만 하는 선거다.”
출마에 관심이 있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왜 출마에 관심이 없나.
“농부가 내년 봄에 파종을 해서 1년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겨울에 배고프다고 종자씨를 다 까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파종은 무슨 씨로 하나.”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조경태 의원은 ’비대위 지도력이 한계“라며 ’새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조경태 의원은 ’비대위 지도력이 한계“라며 ’새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무슨 뜻인가.
“서울시장 필승 카드가 눈에 띄지 않아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에 대한 출마 여론이 있다는 것도 안다.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시장 선거가 대선보다야 중요하겠나. 내후년 대선은 중도 확장성 없인 이길 수 없다. 그걸 기준 삼으면 나도 분명히 그 안에 있다. 내겐 서울시를 운영하며 냈던 확실한 성과도 있다. 도시경쟁력 순위를 27등에서 9위로 끌어올렸다. 내년 시장 선거가 급하다고 지금 당의 후보감을 막 끌어다 쓰면 막상 대선 때 정말 막막하게 된다.”
당의 중요 자산이고 대선 후보감이어서 이번엔 나설 수 없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그럼 어떤 후보를 내야 할까.
“이기는 후보를 내야 한다.”
안철수 대표를 꼽는 사람이 많던데.
“나는 그렇게 말 못한다. 앞으로 대선 과정에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5자 회의까지 제안한 상황인데 이제 그분 모셔다가 서울시장 후보로 쓰자고 말하는 건 큰 결례다. 당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데 역효과만 큰 정치다. 정식 제안도 아닌 말이 들쭉날쭉 나오고, 한 분은 ‘절대로 그 사람 안된다’는데 당사자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나.”
서울 민심을 어떻다고 보나.
“지금은 상대적으로 야권에 좀 유리한 지형이다. 정권이 부동산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 이사는 해야 하는데 도대체 집을 살 수 없고 전세로 갈 수도 없고 이렇게 저렇게 다 막혀 난감해진 시민들이 앞으로 일 년간 계속 늘어날 거다. 지난 총선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지만 그게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어 낙관만 하는 건 어렵다.”
이 정부가 가장 잘못하는 건 부동산 정책인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다. 민주당은 약자를 위한 정치를 말하지만 사실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부자를 위한 정치를 한 적이 없다. 기업 활성화 정치를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야당을 ‘부자 정치’로 몰아세우더니 자기들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자산 격차를 벌려 놓았다. 소득 격차도 마찬가지다. 재앙적 정권 맞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뜨지 않는 까닭은 뭔가.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유권자가 많아서다. 비대위 노선과 노력엔 동의한다.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당이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비대위원장이 폄하하는 상황이 반 년간 지속되다 보니 당에 사람이 안 보인다. 우리 당은 암흑기다. 당 얼굴 세우는 걸 스스로 포기했다. 노선이 정해지는 방식도 당내 비중 있는 인사들의 치열한 토론을 거치는 게 아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개인기처럼 비친다. 예컨대 호남에 가서 혼자 무릎을 꿇었는데 왜 그랬나. 호남 민심을 얻자면 과반 이상의 당내 의원들이 함께 꿇어야 감동이 커질 것 아닌가.”
야권 대선주자 5인의 원탁회를 제안했다. 비대위를 대체하자는 건가.
“아니다. 비대위 체제가 흔들리면 안 된다. 다만 비대위와 별도로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거다. 우리 당 지지율이 정체에 빠진 건 사람이 없다고들 느껴서다. 그렇다고 주자들이 당장 경선에 뛰어들 수도 없다. 5인회의로 당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안철수 대표는 왜 포함되나.
“문재인 정부의 정권 재창출을 끝장내자는 데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는 분이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김태호 의원을 포함하는 7인 연대회의로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연내엔 가동될 거다.”
김종인 위원장의 독주가 본인의 대선 도전과 연결돼 있다고 보나.
“그렇게 보진 않는다. 사심 없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초기에 당을 장악하기 위해 주자들을 난쟁이로 만든 모양인데 이젠 당 장악 끝났으니 더 이상 그럴 필요 없다고 본다.”

최대 주주, 의원 공천권 없는 비대위 … 당 내분만 키우고 문 닫은 경우 많아

정치권의 원탁회의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가 구성된 게 계기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등 민주화 원로·시민사회 세력이 모여 진보 진영의 내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조정자 역할을 했다. 회의에 참여했던 문재인·이해찬 등 당시 민주당 고문은 ‘혁신과 통합’을 만들어 정치권으로 돌아갔고, 백 교수 등 남은 사람들은 위기 때마다 진보세력 분열을 막는 훈수를 뒀다. 총선 연대를 압박하고, 경선 후보도 조정했다.

보수당은 정치권 밖의 그런 배후 세력을 찾기 어렵다. 선거 참패로 당이 위기에 처하면 공식처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돌파구를 찾았다. 지난 10년만 놓고 보면 2010년 김무성 비대위 이후 김종인 비대위가 여덟 번째 비대위다. 거의 매년 출범시켰지만 당 내분만 증폭시키고 성과 없이 문을 닫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1년 박근혜 비대위는 성공 모델이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과감한 인적 교체를 더해 이듬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넘겼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당내 유력 대권 주자였던 탓에 당 장악력과 재정비에 도움이 됐다. 2016년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 역시 이해찬·정청래 등 친노 핵심 인사를 정리하며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문재인 당 대표의 강력한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지금 국민의힘은 박근혜·문재인과 같은 최대 주주가 없다. 총선을 앞둔 게 아니어서 비대위원장에게 공천권도 없다. 과감한 드라이브엔 한계가 있다. 야당의 무기력과 혼선, 투쟁력 부족은 간판 부재 탓이란 진단이 당내엔 많다.

최상연 논설위원

※김소영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