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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라면 일단 거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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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에디터

고정애 정치에디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엔 동의할 수 없다.” “현 부동산 정책이 옳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여권에 기운 여론 운동장에선 #“현 정책 싫지만 여당에 공감” #야, 지속적 대안 외엔 길 없어

양립 불가의 입장처럼 보이나 현실에선 양립 가능하다. 중앙일보 창간기획(‘큰 물음표, 대한민국에 묻다’ ‘대한민국, 큰 물음표에 답하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집에 대한 욕망, 잘못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2인의 대립적 견해를 제시했다. 부동산 관련 발언으로 주목받은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과의 인터뷰였다. 예상대로 진 의원은 정부 옹호를, 윤 의원은 비판을 했다.

이후 온라인 뉴스 이용자들이 기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패널 조사를 했다. 패널 400명 중 현 정부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들이 180명(45%)으로, 동의한다는 이들(73명, 20.8%)을 압도했다. 20여 차례 부동산 정책의 여파로,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이와 달리 진 의원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이들이 220명(55%)으로 다수였고 윤 의원 측은 180명(45%)이었다. 기사를 읽기 전엔 각각 208명과 192명이었다. 기사를 읽으며 진 의원 쪽으로 더 이동했다는 얘기다(의사를 바꾼 56명 중 34명).

기사를 읽기 전부터 진 의원의 주장에 동조한 이들은 186명이었다. 이들에게 ‘그래도 윤 의원의 주장에 귀 기울일 부분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곤 선택지로 ‘주택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는 문재인 정부의 신념은 독선이다’ ‘집값이 오른 건 국민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든 정책의 책임이다’ ‘부동산 사다리가 끊어지면 안 되고 사다리 칸을 줄이려면 대출을 쉽게 해야 한다’ ‘집과 관련된 다층적·다면적인 희망을 인정하고 최대한 맞추는 정책 세트가 필요하다’ ‘부의 불평등 해법을 부동산에서만 찾으면 안 된다’를 줬다. 이 중 하나는 고를 법한데도 46명(28.2%)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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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아이러니는 또 있었다. 패널 400명 중 41명(10.3%)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현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한 진 의원의 주장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런 심리를 이해하는 기제 중 하나가 당파성(혹은 정치적 부족주의)이다. 자신이 속한 또는 지지하는 정당이 승인한 세계관과 일치하는 않는 사실은 걸러버리고, 일치하는 사실은 과장해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정치적으로 쟁점화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리된다. 정당과 같은 입장의 얘기를 들으면 현명하고 논리적인 주장으로 여기고 그 입장을 수용한다. 그걸 의심하게 하는 주장에 대해선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말로 치부하거나 아주 냉담하게 조목조목 따진다. 이른바 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이자 확인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이번 400명은 20~59세의 온라인 뉴스 이용자를 성별·연령별로 50명씩 패널화한 이들이다. 30·40대는 여권 지지 성향이 강하고 20·50대도 야권 성향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 보니 보수(24%)보다 진보(38.5%)·중도(34%)가 절대다수였다. 한마디로 여권 쪽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의미다. 특정 정책에 부정적이지만 민주당 의원 편에 서고, 국민의힘 의원 주장엔 귀를 막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이어서 일단 거르고 본다”는 정서다.

“사면문가(四面文歌)다”(국민의힘 당직자)라고 할 정도로 다수의 신뢰를 잃은 국민의힘이 좀처럼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설득하고 싶어도 듣질 않으려 하니 설득되지도 않는다. 독주하는 여권을 견제할 수도 없다. 국민의힘 소속이 된 지 7개월여에 불과하고, 기존 정치인과 다른 문법으로 정부를 비판한다는 윤 의원도 고전했다.

그래도 요행수는 없다. 어렵더라도 대안, 그것도 수준 있는 대안을 계속 제시하는 길 외엔 없다. 이번 조사에서 22명이 진 의원을 지지했다가 윤 의원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20대(8명)와 중도(9명)가 다수였다.

윤 의원은 이런 소감을 밝혔다. “무슨 얘기를 하든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고맙고 또 무슨 얘기를 하든 안 듣는 사람들은 안타깝다. 하지만 나의 타깃은 특별한 입장은 없지만 막연하게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생각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해 드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더 수준 높은 얘기를 해서 우리 국민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게 우리 민주주의가 살아갈 방법이 아닐까.”

옳은 생각이다. 국민의힘은 ‘믿고 거른다’와 ‘무조건 믿는다’ 사이에 새 길을 내야 한다.

고정애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