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여당과 충돌···홍남기 돌발 사표 "터질게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03 19:25

업데이트 2020.11.03 20:29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사표를 냈다. 이날 오전 대통령에게 직접 타이핑한 사표를 인편을 통해 전달했다. 오후엔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사의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표를 반려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야당의 비난이 일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반려 및 재신임이 최종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공개 사표를 낸 부총리가 경제 사령탑으로서 온전한 역할을 하기는 어렵게 됐다. 관가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당의 정치 셈법에 경제 관료의 전문성이 판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홍 부총리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요건 강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홍 부총리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요건 강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뉴스1

홍 부총리의 사의는 결연했다. 그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후임자가 올 때까지, 제가 물러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공직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반려를 전제로 한 질문(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답변이다. “그냥 지나가기엔 제가 참을 수 없었다”라고도 했다.

“대주주 요건 현행대로 가는 것에 책임” 

참을 수 없었던 직접적 계기는 주식 양도소득세 관련 대주주 요건의 변경이다.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으로 하느냐, 3억원으로 낮추느냐를 놓고 2개월여간 지속된 논란은 결국 여당 주장(10억원)대로 결론이 났다. 이미 2018년 2월 시행령까지 고친 사안에 대해 '동학 개미'가 반발하자 여당이 나서서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이와 관련,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초유의 경제 부총리 해임 청원이 올라왔고, 24만여명이 동의했다. 홍 부총리는 “2개월간 갑론을박이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것에 대해서 누군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제가 현행대로 가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사사건건 여당과 부딪혀…“터질 게 터졌다”

그러나 홍 부총리의 사의를 단순히 주식 양도소득세 문제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익명을 요청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주식 양도세가 직(職)을 걸 정도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결국 터질 게 터졌다”라고 말했다.

이유가 있다. 홍 부총리는 정책 조정 과정에서 사사건건 당과 부딪혔다. 대표적인 게 1차 긴급 재난지원금이다. 홍 부총리는 재정 여력을 들어 ‘국민 70% 지급’을 주장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여당의 주장대로 100% 지급으로 결론이 났다. 당·정·청 협의(3월29일)에선 고성이 오갈 정도로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여당 의원으로부터 “답답한 소리 한다”는 핀잔도 들었다. 같은 달 11일 국회 비공개회의에서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부총리 해임까지 거론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최근 주식 대주주 관련 협의 과정에서도 “기재부가 탁상공론식 사고에 머문 채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찍어 누른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당이 더 강경하게 나갈 것”이란 원색적 비난이 불거졌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대해 여당이 어깃장을 놓은 경우도 허다하다. 홍 부총리가 주도해 지난달 발표한 재정준칙에 대해 여당은 “확장 재정 정책을 펴야 할 시기에 굳이 재정준칙을 내놓을 필요가 있냐”며 철회를 요구했다. “같이 갈 수 없다”(김두관 민주당 의원)는 얘기까지 나왔다.

거듭된 ‘패싱’ 논란도 홍 부총리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지난 7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대해 홍 부총리가 해제 검토 가능성을 언급하자, 다음날 바로 국토교통부 차관이 “검토 안 한다”고 부인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린벨트는 계속 보전하겠다”며 국토부의 손을 들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홍 부총리가 제출한 사직서를 반려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홍 부총리가 제출한 사직서를 반려했다. 연합뉴스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부총리 본인이 희화화된 상황도 사의 표명의 한 요인이라는 관측도 있다. 홍 부총리 본인이 다주택 소유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주도한 부동산 정책이 본인 발등을 찍었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개인의 주택 매매, 전셋집 구하기가 국회 질의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임대차 3법,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같은 부동산 정책은 여당 주도로 홍 부총리의 생각보다 훨씬 센 정책이 나왔다”며 “그런데도 모든 비난이 홍 부총리에게로 몰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 발목잡힌 홍남기 부총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부동산 정책 발목잡힌 홍남기 부총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당이 정책 주도권…당정 불협화음 이어질 것”

청와대는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으나 대통령은 격려하면서 신임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당장 새 부총리를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예산안을 심의하는 시기에 경제 사령탑을 교체한 사례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국회 예산 심의를 끝내고 강경식 부총리가 교체됐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 정책과 관련해 당·정 관계가 나아지긴 어렵다. 당장 여당 의원들은 이날 홍 부총리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기재위에서 “이 엄중한 시기에 사표를 낸다는 건 부적절하다. 정치적 행동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홍 부총리는 “제가 참을 수가 없었다. 정치는 전혀 접목될 수 없다”고 맞섰다.

기재부에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변인실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런 낌새도 없었다”는 반응이었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여당의 거친 요구와 부총리의 조율이 잘 먹히지 않는 정치인 출신 일부 경제 부처 장관들 사이에서 ‘무늬만 경제 수장’이라는 한계를 느껴온 점이 거취 표명으로 분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 양도세 문제뿐 아니라 정책 주도권을 당이 쥔 상황에 대한 홍 부총리의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재정준칙 등 향후에도 정부와 여당이 견해를 달리하는 상황이 많아 향후에도 불협화음이 발생할 여지가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러 경제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경제 부총리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구도를 짜놓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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