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정부 행사에 '여성 연사 0명'…'정부만' 모르는 女전문가

중앙일보

입력 2020.11.03 17:35

오는 6~7일 열리는 2020년 과학기술 미래인재 토크 콘서트에는 남성 전문가 8명이 연사로 참석한다. 여성 연사는 없다. 토크 콘서트보다 하루 앞서 5일 열리는 과학기술 미래인재 포럼은 연사 13명 중 여성은 토론에 패널로 참석하는 2명에 불과하다.

과기부가 주최하는 '미래인재 컨퍼런스 2020' 홍보물. 사흘간 열리는 행사의 주요 연사들은 모두 남성이다. 전체 연사들 21명 중 여성 전문가는 2명에 불과하다. [미래인재 컨퍼런스 홈페이지]

과기부가 주최하는 '미래인재 컨퍼런스 2020' 홍보물. 사흘간 열리는 행사의 주요 연사들은 모두 남성이다. 전체 연사들 21명 중 여성 전문가는 2명에 불과하다. [미래인재 컨퍼런스 홈페이지]

이 두 행사를 포함해 총 사흘간 열리는 미래인재 컨퍼런스 2020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이 공동 개최하는 온라인 행사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란 변화 속에서 미래 인재와 정책을 논의한다는데, 여기서 여성 목소리의 비중은 10%에 그친다.

정부가 정보통신·과학기술 분야 행사를 남성 연사들로 채우는 관행은 꾸준히 도마에 올랐다. '젠더(Gender·사회문화적 성별)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 변화를 정부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행사 주최 측에 이유를 물었다. 담당자는 "해당 분야에서 저명하신 분들을 모신 결과일 뿐"이라며 "남녀 균형 문제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또 "(행사에 참석하는) 패널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보통신·과학기술 분야에 대체로 남성 전문가가 많은 건 사실이다. 공대에 여학생이 한둘 뿐이던 시절의 산물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 과학기술 인재들이 급증하고 있다. 여성 전문가 단체도 있다. 여성 전문가 수가 아직 충분치 않을지언정 이 행사를 관심있게 들을 청중 가운데 여성 비율은 과거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성인취업 대비 코딩을 가르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부트캠프'의 경우, 참가자 중 여성 비율이 2017년 9%에서 올해 36%로 크게 늘었다.

실제로 기자가 문의한 이후인 3일 오후 연사 명단에 여성 2명이 추가됐다. 이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연사를 업데이트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여성 전문가를 배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KIRD는 지난달 7일 개최한 '과학자-국민 소통 온라인 포럼'에도 남성 패널 5명만 초빙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로보틱스·AI·통계학 등 미래 기술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인데, 이 분야에 여성 전문가는 정말 단 한명도 없는지 의문이다.

부산시가 지난달 개최한 최대 스타트업 행사 '부산 스타트업 위크 바운스 2000' 행사. 모든 연사가 남성으로 채워졌다. [BSW BOUNCE 홈페이지]

부산시가 지난달 개최한 최대 스타트업 행사 '부산 스타트업 위크 바운스 2000' 행사. 모든 연사가 남성으로 채워졌다. [BSW BOUNCE 홈페이지]

같은달 27일 부산시가 개최한 '부산 스타트업 위크(BSW) 바운스 2000'에도 14명 연사가 모두 남성이었다. 그 많은 여성 창업자들은 왜 이 무대에 초청받지 못했을까. 스타트업얼라이언스(스얼)가 지난 6월 '10억원 이상 벤처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을 조사한 결과 총 736곳 중 여성이 대표인 곳은 57곳이었다. 이기대 스얼 이사는 "여성 창업가가 크게 늘어난 현실을 제대로 반영 못하는 것은 젠더 감수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라며 "여성 연사를 의도적으로라도 넣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간 기업의 IT 행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삼성전자가 2~3일 개최한 '삼성 AI 포럼'은 첫날 연사 6명 중 3명이 여성이었다. 4회째인 이 포럼은 전세계 인공지능(AI) 석학들이 주목하는 행사다. 스타트업들이 주최하는 행사도 여성 연사의 비율은 행사 주최측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는 지난해 6월 컨퍼런스 연사 9명을 모두 남성으로 채워 비판받은 이후부턴 거의 모든 행사에 여성 전문가를 절반 가까이 초청한다.

그런데 정부만 여전히 과거에 있다. 게다가 국민 혈세로 여는 행사 아닌가. 유리천장이 다른 곳보다 더 높고 단단한 과학·정보통신 분야에선 이런 고려와 계산이 더욱 필요하다. 이 분야에서 여성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하선영 산업기획팀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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