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반토막' 때도 대책 딱 7줄···1조 쓴 연명치료 기약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03 05:00

업데이트 2020.11.03 05:03

1월 20일 최초의 한국인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로부터 열 달째, 세상은 너무나 변했습니다. 사회 모든 부문이 위기라지만, 여행업이 입은 피해는 그 중에서도 심각합니다. 중앙일보는 3회에 걸쳐 사경을 헤매는 여행업을 진단하고 코로나 시대 여행법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알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행도 달라져야 합니다.
특집기획 1회 : 최악의 위기, 초토화된 여행업

특집기획 2회 : 오락가락 관광 정책
특집기획 3회 :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특집기획-코로나 시대의 여행②]

“여행업계는 세계적 감염병 사태에 대비가 됐다고 믿고 있었다.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몇 달만 버티면 여행시장이 정상화했다. 코로나 사태는 아니다. 이미 장기화했고, 피해도 전방위적이다. 여행업계의 대응이 늦었던 것은 업계가 지난 경험을 너무 믿었던 탓이 크다. 정부 대처도 여행업계의 방심을 부추겼다. ‘조금만 더 버티자’는 정부 메시지만 믿다 1년이 가 버렸다.”

한 대형 여행사 임원의 고백이다. 그의 말마따나 코로나 사태는 여행업계에 전례가 없는 위기다. 전례가 없어 대책도 마땅치 않았다. 마비 상태의 여행업계에 내린 정부의 지침은 하나로 귀결된다. ‘참고 버텨라.’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아니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가 발발한 지 10개월째. 정부의 관광정책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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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관광 정책 

3월 5일 문체부 2020년 업무계획 기자 간담회 현장. 20쪽에 달하는 보고서에서 코로나 사태 관련 내용은 일곱 줄이 전부였다. ‘방한 관광시장’ 부문에서만 언급됐다. 코로나 사태 대응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당시 최병구 관광정책국장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일단 연초 목표를 갖고 가기로 했다”고 답했다.

3월이면 이미 관광시장이 휘청거릴 때다. 2월 한 달 만에 방한 외국인 시장과 해외여행 시장이 반 토막 났다. 2월 방한 외국인(68만5212명)은 작년 같은 달(120만1802명)의 57%에 그쳤고, 2월 출국 한국인(104만6779명)은 작년 같은 달(261만7946명)보다 60% 감소했다. 국내여행 시장도 얼어붙었다. 대구에서 슈퍼 전파자로 불렸던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 2월 18일이었다. 경고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월 ‘사스는 2003년 해외여행 시장에, 메르스는 2015년 국내여행 시장에 집중적인 피해를 줬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합친 피해가 예상된다(‘투어고 인사이트’ 제22호)’고 경고했었다.

관광 당국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월 17일 긴급 금융지원방안을 발표했고, 4월 13일에도 금융지원 확대 방안을 또 내놨다. 그러나 관광 대책은 여행업계 지원에 한정됐다. 꽃 피는 봄, 꽃놀이 인파를 위한 안전여행 지침 같은 건 없었다. 관광 당국이 잠자코 있는 동안 방역 당국은 연일 “여행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고, 겁에 질린 농부가 꽃밭을 갈아엎었다. 4월 8일 예산 44억원으로 조성한 제주도 가시리 유채꽃밭이 반나절 만에 없어졌는데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4월 8일 제주도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밭이 갈아엎어지는 장면. 훗날 코로나 사태를 기억할 때 두고두고 인용될 장면이다. 연합뉴스

4월 8일 제주도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밭이 갈아엎어지는 장면. 훗날 코로나 사태를 기억할 때 두고두고 인용될 장면이다. 연합뉴스

바이러스 확산세가 잦아들자 정부는 내수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앞장섰다. 2주일간 진행했던 기존의 여행주간을 한 달로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계획은 이내 미뤄졌고 끝내 축소됐다. 이후에도 관광정책은 여러 번 흔들렸다. 7월 29일 여행·숙박 할인권 사업을 발표했다가 8월 10일 사업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10월 21일 문체부는 가을 여행주간을 취소한다고 발표했고, 30일부터 여행·숙박 할인권 사업을 재개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광학과 교수의 지적을 인용한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바이러스와의 숨바꼭질은 계속될 것이다. 애초부터 정부는 소규모·개별 여행과 비대면·자연친화적 여행 활성화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코로나 일상에 지친 국민이 알아서 그쪽으로 움직였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장기화를 대비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코로나 시대 관광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

금융지원에 할인 혜택까지 

정부의 관광업계 금융지원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부의 관광업계 금융지원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관광 당국의 코로나 대책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관광업계 금융지원. 문체부가 마련한 금융지원 규모는 8400억원에 이른다. 문체부는 모두 세 차례 금융지원 방안을 내놨고, 그때마다 액수가 늘어났다. 특히 무담보 특별융자 1100억원은 코로나 사태 이후 긴급하게 편성한 예산이다. 10월 30일 현재 집행된 금융지원 총액은 7652억원(3411건)이다. 예산의 91%가 집행됐다.

문체부 금융지원과 별도로 관광업계가 받아 쓴 고용유지지원금은 1337억원에 이른다(9월 30일 현재 약 3600개 사업장 2만9000명). 지난 10개월 여행업계 연명 치료에 1조원 가까이 들어갔다는 얘기다.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할까.

문체부의 국내여행 할인지원사업 사이트. 이 사이트에서 여행상품을 예약하면 최대 6만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 캡처]

문체부의 국내여행 할인지원사업 사이트. 이 사이트에서 여행상품을 예약하면 최대 6만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 캡처]

정부의 또 다른 관광정책은 할인 혜택이다. 할인 정책은 정부가 내수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국민은 값싼 여행을 할 수 있어 좋고, 업계는 부족한 매출을 보전받을 수 있어 좋다는 게 단골 출연의 근거다. 대체로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여행사 패키지상품이 코로나 시대에 맞는지는 다른 문제다.

A여행사의 1박2일 여수 상품을 보자. 출발 조건이 ‘44인승 버스 탑승. 최소 인원 20인 미달시 취소 가능’이다. 코로나 시대 20명이 넘어야 출발한다는 조건이라니. 홈페이지에서 버스 방역과 발열 체크 말고 방역 관련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품이 정부가 최대 6만원 할인해준다는 여행상품 1000여 개 중에 수두룩하다. 문체부는 가을 여행주간을 취소하면서 안전여행 캠페인을 하겠다고 발표했었다.

2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피해 관광업계 대상 특별자금 지원 현장설명회' 현장. 관광업계 관계자들이 긴 줄을 섰다. 연합뉴스

2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피해 관광업계 대상 특별자금 지원 현장설명회' 현장. 관광업계 관계자들이 긴 줄을 섰다. 연합뉴스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2일 ‘코로나19 위기 대응 관광업계 건의문’을 국회에 제출했다. 협회는 건의문에서 관광기금 대출 확대와 조건 완화 등을 요구하며 코로나19 종식까지 지원을 멈추지 말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종식이라. 그게 언제일까. 종식은 될까.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진단을 옮긴다.

“주요 국가 사례를 봐도 대규모 재정지원은 비슷하다. 코로나 상황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재정 지원만 할 것이냐 하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현재로썬 재정지원밖에 답이 없는 것 같지만, 재원에 대한 한계도 고민해야 한다. 여행 환경이 바뀐 만큼 여행업계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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