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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선이후 투표 끔찍" 불복 소송 예고…유혈사태 배제 못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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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공항에서 "펜실베이니아 주가 대선일 이후 우편투표 집계를 계속하는 건 끔찍한 일"이라며 "우리는 변호사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불복 무효소송을 예고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공항에서 "펜실베이니아 주가 대선일 이후 우편투표 집계를 계속하는 건 끔찍한 일"이라며 "우리는 변호사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불복 무효소송을 예고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 미 대선 최대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때 이른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선 불복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두고 안 본다, 변호사들과 협력" # 6일까지 우편투표 인정에 불복·무효소송 예고 #주지방→고등→대법→연방대법원 줄소송 가능 #2000년 고어 대 부시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 재현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수 주 동안 측근들에 대선 당일 밤 개표가 완료되지 않더라도 연단에 서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조기 승리선언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조기 승리선언의 전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텍사스·애리조나·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를 포함한 남부 '선벨트'와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를 제외한 오하이오·아이오와 등 나머지 중서부 '러스트벨트'에서 승리하거나 우세를 달리는 경우다.

2016년과 나머지 주의 결과는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3개 주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 내줄 경우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 260대 278(과반 270명)로 패배하는 데도 승리선언을 강행하겠다는 건 사실상 대선 결과 불복선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악시오스 보도는 "허위 보도(false report)"라고 부인했지만, 대선일 사흘 뒤인 11월 6일까지 도착하는 우편투표를 인정한 펜실베이니아를 겨냥해 "끔찍한 일"이라고 연거푸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유세를 위해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공항에 도착한 뒤 기자들에게 "대선 이후에도 투표를 계속 받을 수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라며 "주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표를 집계하도록 허용한 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대선 당일 밤에도 선거 결과를 모를 수 있다는 건 끔찍하다"며 "우리는 변호사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사실상 개표 중단이나 무효 소송에 착수할 뜻을 밝힌 셈이다.

그는 이어 "우리는 정치적이고 아주 당파적인 주지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며 "그가 매일 1만표 이상 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상황에 부닥치길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예고한 건 이곳의 결과가 자신의 재선 여부를 결정하며, 309만표에 달하는 우편투표가 모두 개표될 경우 자신이 패배할 위험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2일 오전 경합주 최종 판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0.3%포인트), 애리조나(1.2%포인트), 플로리다(1.4%포인트) 등 남부 선벨트에선 바이든 후보를 거의 따라잡았다. 또 미시간(선거인단 16명) 5.1%포인트, 위스콘신(10명) 6.6%포인트 등 나머지 러스트벨트 2개 주에선 열세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펜실베이니아 우편투표 개표로 바이든에 뒤질 경우 최종 개표를 가로막거나, 결과에 대해 무효 소송을 내는 방법밖에는 2020년 대선 결과 확정을 막을 방법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해 주요 경합주에서 대선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는 걸 "선거조작", "사기의 증거"라고 비난하고 있다.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우편투표 무효 소송을 통해 실제 대선 결과를 뒤집을 가능성이 있느냐다. 가장 최근 임명한 에이미 배럿 대법관을 포함해 트럼프 자신이 대법관의 3분의 1을 임명한 미 연방대법원은 펜실베이니아주의 11월 6일까지 우편투표 개표를 허용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펜실베이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 주가 우편투표 개표를 각각 사흘과 9일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 공화당이 막아달라고 낸 소송을 기각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는 우편투표 겉봉 소인이 대선일 3일 이전이면 유효표로 받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트럼프나 지지자들로선 당일 현장투표 개표에서 앞서다가 우편투표 개표에서 역전할 경우 우편투표 부정이 있으니 재검표를 요구하거나, 소송을 낸 뒤 주대법원에서 합법이라고 결정하면 연방대법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지방법원부터 연방대법원까지 불복해 소송을 계속하면 결과 확정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결했던 2000년 11월 7일 대선 당시 플로리다 주에서 6만여표가 개표에서 누락되고 불과 500여표 차이(0.009%)밖에 나지 않자 고어 후보가 재검표 소송을 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한 달여 뒤인 12월 12일 연방대법원이 5대 4로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 대선 결과가 확정됐다.

서 교수는 또 "개표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편투표가 사기라고 언급할 수 있다"라며 "극단적인 경우 충성파들을 동원해 바이든 후보의 표가 많이 나올 개표 자체를 막는 등 물리적 충돌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내다봤다.

대선 기간 중 텍사스에서 총기를 휴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민주당 유세 버스를 충돌하며 위협한 것처럼, 주요 경합주 개표 현장에서 민주당 지지자와 현장에 동원된 주방위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유혈 사태가 전국적으로 비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발할 경우 대선 5주 뒤로 예정된 12월 14일 선거인단 투표 때도 차기 미 대통령을 확정 못 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2021년 1월 6일 상·하원 합동회의 선거인단 투표 개표 및 확정 발표 때까지 대통령·부통령을 선출하지 못할 경우엔 현직 대통령 임기인 같은 해 1월 20일 정오 전까지 하원이 대통령, 상원이 부통령을 각각 선출하게 된다. 단, 하원은 이 경우 50개 각 주별 연방 하원의원 다수당이 한 표씩만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이 때까지 상·하원이 대통령·부통령을 선출하지 못할 경우 하원의장이 의장직을 사임하고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된다.

인위적인 대선 불복 사태가 아니라 트럼프와 바이든이 경합주를 묘하게 나눠 가져 선거인단 수가 269대 269로 동수가 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11월 3일 연방하원의원 선거 결과로 내년 1월 3일 출범하는 하원이 대통령, 상원이 부통령을 각각 선출한다.

정효식·석경민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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