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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왕, 반정부 시위대에 "똑같이 사랑해"…이례적인 답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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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과 수티다 왕비가 1일(현지시간) 태국 수도 방콕의 왕궁에서 왕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과 수티다 왕비가 1일(현지시간) 태국 수도 방콕의 왕궁에서 왕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국에서 총리 퇴진과 군주제 개혁을 외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태국 국왕이 “그들(시위대)도 사랑한다”고 밝혔다. 시위가 벌어진 지 3개월 만에 나온 첫 공개 발언이다. 시위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왕실이 타협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의 채널4·미국의 CNN 방송에 따르면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라마 10세)은 1일(현지시간) 왕궁 내에서 불교 행사를 마친 뒤 수티다 왕비와 함께 밖으로 나와 왕궁 지지자들을 만났다.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은 수천 명의 지지자를 만난 국왕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격려했다.

이 과정에서 왕은 거리로 나와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채널4 기자 질문에 “노 코멘트”라고 답했다가, 곧바로 “우리는 그들을 똑같이 사랑한다(We love them all the same)”고 세 차례 반복했다. 또 “타협의 여지가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태국은 타협의 땅”이라고 대답했다.

태국 국왕의 이날 인터뷰는 이례적이다. 68세인 와치랄롱꼰 국왕이 외국 언론과 이야기한 건 왕세자 시절인 1979년 이후 처음이라고 CNN은 전했다. 통상적으로 왕실 전담 언론에만 왕실 행사 취재가 허용됐지만, 이번에는 외신 기자단이 군중 사이에 앉아있도록 초대됐다고 한다.

채널4와 CNN은 국왕의 ‘타협’ 발언이 장기간의 교착 상태를 풀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태국에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야당 퓨처포워드당(FFP)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강제해산 된 직후인 2월 중순 반정부 집회가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3월에 중단됐던 시위는 학생 주도로 7월 중순 재개됐다.

태국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 10월 26일 밤 방콕 시내에 있는 독일 대사관 앞에서 '군주제 개혁'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이날 시위대는 독일 대사관에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의 독일 체류와 관련한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독일은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일년 중 상당 기간을 체류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태국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 10월 26일 밤 방콕 시내에 있는 독일 대사관 앞에서 '군주제 개혁'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이날 시위대는 독일 대사관에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의 독일 체류와 관련한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독일은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일년 중 상당 기간을 체류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이들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출신 쁘라윳 짠오차 총리 사임과 왕실을 개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최장 15년형에 처할 수 있는 왕실 모독죄가 존재하는 태국에서 공개적인 군주제 개혁 요구가 터져 나오며 파장이 더 커졌다. 시위대는 와치랄롱꼰 국왕이 코로나19와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국민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독일 등 외국에서 머물며 막대한 부를 쌓아왔다고 비난하고 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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