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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검사도 적폐 낙인 못참아"…분노의 '디지털 연판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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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위원 위촉식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위원 위촉식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일선 검사의 문제 제기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커밍아웃"이라며 불이익을 암시한 입장을 내놓자 평검사들이 동요하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추 장관이 취임한 이후 윤석열 검찰총장과 측근 인사들을 연이어 압박할 때도 집단으로 나서지 않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평범한 검사들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마저 묵살하자 검찰개혁에 동의하는 검사들까지 반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개혁', '커밍아웃' 비판 글에 지지 댓글 300개 넘어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 장관의 '커밍아웃' 발언을 비판하는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의 검찰 내부망 글에는 240여건의 실명 지지 댓글이 달렸다. 최 검사에 앞서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의 검찰 내부망 글에도 70건이 넘는 실명 댓글이 올라왔다.

추 장관은 지난달 2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검사를 겨냥해 "좋다. 이렇게 커밍아웃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이라는 글을 올렸다. 추 장관은 전날에도 이 검사를 비판한 글을 공유하며 "불편한 진실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라며 압박을 이어갔다. 상당수 검사는 댓글에서 추 장관이 사용한 '커밍아웃'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최 검사와 이 검사를 지지했다.

전체 검사 수가 2000여명이라 점을 감안하면 10% 이상이 댓글을 달았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평검사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본다"며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기 위해 제 의견을 잘 내지 않는 조직의 특성을 감안하면 10%의 커밍아웃은 일선 검사 대부분이 반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형사·공판부의 평검사들조차 현 법무부의 각종 조치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면 장관 스스로가 역할에 충실한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검사들의 집단 행동에 대해 '디지털 연판장'을 통한 의사 표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명 댓글을 단 한 검사는 "지난 추 장관의 인사에서 검찰 내부망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검사는 모조리 좌천됐다"며 "과거 검사들의 서명을 담은 연판장이 디지털 형태로 바뀐 것일 뿐 검사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겠다는 의지는 과거와 같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최근 잇따라 내놓은 감찰 지시에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식 결과가 나오면 검사들의 반발이 더 적극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검찰 간부는 "억지춘향식 감찰 결과가 나오면 검사들의 반발이 지금보다 더 거세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 전 장관, 추 장관 페이스북 캡처]

[조 전 장관, 추 장관 페이스북 캡처]

"주말까지 사건과 씨름하는 검사들에도 적폐 낙인" 

평검사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커밍아웃'에 동참하는 배경으로 추 장관의 공격 대상이 윤 총장과 검찰 조직을 넘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평범한 검사들로 확대됐다는 점이 거론된다.

한 평검사는 "주말까지 사건과 씨름하는 검사들을 어떤 이유로 적폐로 낙인찍고, 개혁 대상이라고 구분 짓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현직 부장검사는 "장관의 보복이 실제 이뤄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며 "선배 검사들은 평검사에 대한 보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처절한 마음으로 '커밍아웃'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8개월 만에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8개월 만에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내 편 아니면 개혁 대상' 메시지에 반발"  

'검란'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당시와 현재 검찰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는 게 검찰 내부의 시각이다. 한 지방의 간부급 검사는 "과거 검찰은 조직을 강조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면 최근 검사들은 검찰개혁에도 상당히 공감하고 있고, 본인의 사건 처리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이런 검사들에게 '내 편이 아니면 개혁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줘 묵묵히 일하던 검사들까지 움직이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검찰 내부망에 "검찰도 자성이 필요하다"며 올린 글에 달린 댓글에서 일선 검사들의 평소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한 검사는 "지속적인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적극 동감한다"면서 "다만 혼자만 자성하고 나머지 검찰 구성원들은 자성하지 않는다는 듯한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댓글을 달았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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