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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어린애 낙서 같은 작품 속에 빛나는 꿈과 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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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원(왼쪽) 학생기자‧김윤아 학생모델이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김나원(왼쪽) 학생기자‧김윤아 학생모델이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20세기 시각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장 미쉘 바스키아. Photo ⓒ Dmitri Kasterine. All Rights Reserved. Artwork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20세기 시각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장 미쉘 바스키아. Photo ⓒ Dmitri Kasterine. All Rights Reserved. Artwork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낙서 미술의 대가, 반항기 가득한 천재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 그의 이름은 몰라도 무심하게 그린 듯한 왕관과 공룡 이미지는 한번쯤 봤을 거예요. 어린아이가 낙서한 듯 자유분방한 붓질, 자유와 사회에 대한 저항 이미지, 여러 의미가 담긴 문구 등 그의 선구적인 작업은 20세기 시각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죠.

1980년대 초, 작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인기 작가가 된 바스키아는 2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8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나는 한낱 인간이 아니다. 나는 전설이다.” 그의 말이 예언이라도 된 것처럼 살아서도 화려한 스타였고,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며 그야말로 전설이 된 인물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시회가 열리는 롯데뮤지엄을 찾았습니다.

전시장에 있는 호보 사인

전시장에 있는 호보 사인

전시장을 들어오자마자 귀여운 마크들이 보였죠. 뒤편에는 왕관 모양도 있었어요. 채보미 에듀케이터가 “호보 사인이라고 옛날 미국에는 노숙자들이 굉장히 많이 살았는데요. 노숙자들끼리 서로만 알아볼 수 있는 사인들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해요. 재미로 알아두면 좋을 거 같아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스키아에 대해 들어봤어요?” 김나원 학생기자와 김윤아 학생모델이 검색해서 알아봤다고 얘기했죠.

바스키아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공화국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어가 모국어였던 아버지와 스페인어를 쓰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어요. 그런 덕분에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언어를 만나볼 수 있답니다. “어머니는 어린 바스키아를 데리고 뉴욕의 주요 미술관을 함께 다녔다고 해요. 수많은 명화를 감상하며 미술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겠죠.”

채보미(가운데) 에듀케이터에게 작품의 의미를 듣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채보미(가운데) 에듀케이터에게 작품의 의미를 듣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소중 학생기자단이 채보미(가운데) 에듀케이터와 함께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살펴봤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채보미(가운데) 에듀케이터와 함께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살펴봤다.

전시는 초기 작품을 기록한 사진을 선보이며 시작됩니다. “바스키아가 스프레이로 물감을 뿌리고 있는 게 보이죠.” 1978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하던 바스키아는 친구인 알 디아즈와 함께 SAMOⓒ를 결성, 뉴욕 거리 곳곳에 낙서를 남겼는데요. 세이모(SAMO)는 ‘흔해 빠진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뜻으로 저작권 기호 ⓒ를 붙여 하나의 로고처럼 사용했습니다. 주류 미술계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남겨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죠. 김윤아 학생모델이 이 벽화들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궁금해했죠. “바스키아가 유명해지자마자 사람들이 다 뜯어갔대요. 보존된 게 없어 전시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뉴욕의 번잡한 거리를 묘사한 이 작품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거칠게 표현된 건물들 사이로 왕관 형태와 얼굴, 암호 같은 글자들이 캔버스를 가득 메웠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뉴욕의 번잡한 거리를 묘사한 이 작품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거칠게 표현된 건물들 사이로 왕관 형태와 얼굴, 암호 같은 글자들이 캔버스를 가득 메웠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초기 작품을 지나면 흡사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이미지, 반복적으로 적힌 텍스트, 그림을 지우고 덮은 흔적 등 그의 특징이 담긴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화면에 텍스트를 쓴 후 선을 긋거나 덧칠하고, 그림을 지우고 그 위에 덧그리는 방식은 가려진 문구와 그림을 더욱 집중해서 보게 하기 위해 의도한 표현입니다. “이 그림 어떤 것 같아요?” 김윤아 학생모델이 “독특해요, 도로 같아요”라고 말했죠. “맞아요. 뉴욕이라는 도시를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위에 보면 왕관도 보이고, 유색인종인 바스키아가 자기를 닮은 사람을 표현한 걸 볼 수 있어요.” 어릴 때 자동차 사고를 당한 기억을 담은 그림도 인상적이었죠. A라는 글자도 연달아 쓰여 있었는데요. “A를 소리 내면 아아아아~ 이렇게 연상할 수 있죠,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소리 지르는 장면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아니면 자동차로 인한 도시 소음으로 생각해도 괜찮아요.”

자동차 역시 바스키아가 즐겨 그린 소재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바스키아는 비명을 연상시키는 알파벳 A를 반복해 쓰고 화면 상단에 두 대의 차 그리고 화난 얼굴을 배치했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자동차 역시 바스키아가 즐겨 그린 소재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바스키아는 비명을 연상시키는 알파벳 A를 반복해 쓰고 화면 상단에 두 대의 차 그리고 화난 얼굴을 배치했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바스키아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해부학적 형상에 관심을 가졌다. 신체와 내장 기관들을 표현한 것이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바스키아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해부학적 형상에 관심을 가졌다. 신체와 내장 기관들을 표현한 것이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이번 전시에서 가장 비싼 작품. 동물의 죽음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비판해온 바스키아는 거대한 화면에 인간과 동물을 극적으로 배치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이번 전시에서 가장 비싼 작품. 동물의 죽음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비판해온 바스키아는 거대한 화면에 인간과 동물을 극적으로 배치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인체의 뼈 구조와 팔이랑 목이 잘린 비너스를 그린 그림도 있었죠.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해부학적인 인체 모습과 내장 기관들은 8세 때 당했던 사고와 연관이 있습니다. 팔이 부러지고 내장을 심하게 다쳐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지겨웠을 그를 위해 어머니는 해부학 입문서 『그레이의 해부학』을 선물했고, 이걸 계기로 해부학적 형상에 관심을 두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소가 그려진 큰 작품 앞에 섰습니다. “그림을 딱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어요?” “이것도 해부학과 관련된 것 같아요.” 바스키아는 주로 조각낸 해부학 그림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전체 몸의 형태를 다 드러낸 유일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형상의 인간이 소를 끌고 가고 있는데요. 거대한 화면에 인간과 동물을 극적으로 배치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해요. “현재 전시된 그림 중 가장 비싼 작품으로 2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함성을 질렀죠.

바스키아는 미술관을 갈 때마다 많은 작품 중 흑인을 모델로 내세운 작품은 왜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흑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바로 인상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였죠. 흑인 여성이 하인으로 나온 것을 보고 왜 금발의 미녀만 누드모델이고, 흑인은 하층민일까 생각한 그는 마네의 올랭피아 하녀 패러디 작품을 통해 미적 가치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끊임없이 인권과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담아냈고, 동시에 유색인종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작품들도 다수 제작합니다.” 바스키아는 영웅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어린 시절의 꿈은 만화가로, 만화에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에선 배트맨·슈퍼맨 같은 만화 속 영웅의 이미지도 볼 수 있어요. 채 에듀케이터가 태블릿 PC로 공룡 그림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대표적 이미지로 꼽히는 공룡과 왕관도 영웅을 나타낸 것이에요. 유명한 공룡 그림은 이번 전시에는 오지 못했는데 공룡 옆에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고 적혀 있죠. 보통 티라노사우루스라고 하는데 바스키아는 항상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고 전체 이름을 다 썼다고 해요. 렉스는 왕이라는 뜻이에요. 강력한 존재인 영웅을 그림에 표현한 걸 많이 볼 수 있어요.”

김나원(왼쪽) 학생기자‧김윤아 학생모델이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김나원(왼쪽) 학생기자‧김윤아 학생모델이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협업 작품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협업 작품

이번 전시에선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협업 작품 5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본 워홀은 그와 함께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2년간 15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바스키아가 어느 부분을 그렸고 앤디 워홀이 어디를 그렸는지 상상해 보면 재밌겠죠.” 워홀이 먼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면 바스키아가 붓질로 글씨를 쓰고 지워 작품을 완성했다고 해요. 각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예술가와 교류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온 워홀은 젊은 바스키아를 통해서 회화의 힘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바스키아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워홀의 인정을 받으면서 드로잉과 콜라주, 실크스크린 프린트 등 다양한 실험을 지속할 수 있었어요. 협업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지만 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막을 내렸죠. 1987년 워홀은 수술 합병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죽음은 바스키아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줬고, 은둔 생활을 하던 중 1988년 약물 과다로 죽게 됩니다.

이번 전시는 거리‧영웅‧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바스키아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조각‧드로잉‧세라믹‧사진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거리‧영웅‧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바스키아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조각‧드로잉‧세라믹‧사진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곳곳에는 바스키아의 패셔너블한 사진들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바스키아의 패셔너블한 사진들도 만나볼 수 있다.

김나원 학생기자가 전시를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죠. 채 에듀케이터는 “여러분처럼 미리 바스키아에 대해 알아보고 오면 더 좋아요. 전시를 관람한 후에는 롯데뮤지엄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있는 집에서 즐기는 컬러링북을 다운로드 해 멋진 작품도 만들어 보세요”라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스키아의 업적을 꼽아달라고 질문했어요. “소중 친구들에게 자기가 꿈을 꾸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바스키아는 어렸을 때부터 유명해지며 스타가 되고 싶은 열망이 컸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이뤄졌잖아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유색인종이 예술가가 된 거의 유일한 사례였죠.”

비운의 슈퍼스타, 제2의 피카소, 흑인 피카소 등 바스키아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게 흑인 피카소일 텐데요. 바스키아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단지 아티스트일뿐이다.” 소중 친구들도 그를 흑인 피카소, 제2의 피카소가 아닌 그냥 장 미쉘 바스키아로 기억해 주세요.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박종범(오픈스튜디오)·롯데뮤지엄, 동행취재=김나원(서울 봉현초 4) 학생기자·김윤아(경기도 한마음초 5) 학생모델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바스키아는 왜 아무 데나 그림을 그렸을까? 어쩌다가 이렇게 독특한 그림이 완성됐을까?” 처음에는 그의 그림이 이상했어요. 하지만 전시회를 둘러보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바스키아의 삶과 그림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었죠. 그는 너무 뻔한 것을 싫어했는데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었어요. 그림마다 자신이 개성과 독특함이 있었죠. 그의 열정과 노력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김나(서울 봉현초 4) 학생기자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은 어린이가 그린 것 같았어요. 그런데 사회를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서 매우 신기했죠.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인상 깊게 말씀해주셔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답니다. 또 취재하며 촬영을 같이했던 친구를 사귀게 되어서 매우 좋았죠. 여러분도 꼭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셨으면 좋겠네요.   김윤아(경기도 한마음초 5) 학생모델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장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 타워 7층 롯데뮤지엄
전시 기간 2021년 2월 7일까지
관람 시간 매일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입장료 어린이 1만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른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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