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태국 민둥산 속 화전민 부락에서 만난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2020.11.02 08:00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26)

2006년, 태국 치앙마이 북쪽에 위치한 밀림 속 컴패션 어린이센터. 밀림에 흩어져 있던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화전민들이었다. 이들을 몇 군데 공동체로 묶어 정착시키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했고 이들의 어려운 생활 형편으로 컴패션이 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밀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진 허호]

2006년, 태국 치앙마이 북쪽에 위치한 밀림 속 컴패션 어린이센터. 밀림에 흩어져 있던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화전민들이었다. 이들을 몇 군데 공동체로 묶어 정착시키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했고 이들의 어려운 생활 형편으로 컴패션이 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밀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진 허호]

2006년 태국 북부 주요 도시인 치앙마이에서 네다섯 시간 정도를 국경과 인접한 산간지대로 달려갔습니다. 사전에 듣기로 저희가 가는 곳은 아시아의 허파라고 할 정도로 나무가 우거진 밀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불구불 난 산길을 한없이 올라가도 기대했던 울창한 밀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를 타고 들어갈수록 나무 수가 줄더니 급기야 민둥산이 떡하니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컴패션 어린이들을 방문하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화전 밭. 불에 타 재가 된 나무는 땅에 떨어져 비료가 된다고 한다.

컴패션 어린이들을 방문하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화전 밭. 불에 타 재가 된 나무는 땅에 떨어져 비료가 된다고 한다.

화전이었습니다. 어릴 적 배웠던 사회 교과서에서나 보던 광경을 실제로 보게 되니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본 화전은 매우 생경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어본 화전을 한다는 의미는, 이들이 식량을 얻고 경제활동을 할 수단이 나무를 태워 경작지를 확보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산림은 그만큼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결국 황폐해진 숲을 떠나야 합니다. 이들이 계속해서 떠돌아다니는 동안 숲은 더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인지한 태국 정부는 대안으로 화전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화전민을 몇 곳에 모아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를 위한 교육 문제가 생겨났고 이를 위해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아직 정착하기 어렵고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려운 이 가정의 어린아이를 위해 컴패션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화전민이 맨발로 선 채 땅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보는 우리마저 땅이 토해내는 뜨거운 열기에 그을릴 것 같았다.

화전민이 맨발로 선 채 땅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보는 우리마저 땅이 토해내는 뜨거운 열기에 그을릴 것 같았다.

우리나라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어릴 때인 6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시 민둥산이 많았습니다. 전쟁으로 거의 사막화를 염려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당시 난방과 취사를 나무, 즉 화석연료로 사용하였습니다. 마을 인근의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습니다. 전국이 거의 그런 상태였다고 들었습니다. 1961년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부가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산림녹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식목일이면 나무를 심으러 전교생이 선생님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최근 새롭게 조명되는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산림녹화사업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그 현장에 나이 어렸던 저도 참여하고 있던 셈이었죠. 당시 인력과 땅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나라는 다자개발은행인 월드뱅크 같은 곳에서 개발도상국을 위해 지원해준 나무를 열심히 심었고 활착률이 거의 100%에 이르는 엄청난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월드뱅크가 이를 믿지 못해 따로 조사관을 보냈을 정도라고 하였죠. 이러한 어마어마한 기록은 지금도 깨어지지 않고 있고,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4대 산림강국 중 한 곳이라고 하지요.

당시 우리나라에도 화전민이 있었다고 합니다. 민속자료에서나 볼 수 있는 너와집 같은 곳에서 살던 이들이었죠. 우리도 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산에서 화전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고 하는데, 연립주택과 직업을 마련해 주고 학교를 세워줬다고 들었습니다.

밀림 속 소수민족들의 공동체는 마을과 마을이 거리가 멀어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컴패션은 밀림 속에 어린이센터와 학교 인근에 기숙사를 세워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와 센터를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정말 반가워했다. 사진 속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침대마다 각자의 침구를 정리하고 쉬고 있다.

밀림 속 소수민족들의 공동체는 마을과 마을이 거리가 멀어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컴패션은 밀림 속에 어린이센터와 학교 인근에 기숙사를 세워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와 센터를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정말 반가워했다. 사진 속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침대마다 각자의 침구를 정리하고 쉬고 있다.

화전민들을 지나쳐 소수 민족이 사는 정착촌의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해 보니 아이를 위한 기숙사가 있었습니다. 밀림 속을 오가며 학교에 다니기 힘들었던 아이들은 기숙사 덕분에 안전하게 학교와 어린이센터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소수 민족은 정부가 마련한 정착촌에 자리를 잡기 어렵다고 했는데, 컴패션은 어린이를 도울 뿐 아니라 이들의 안전한 양육을 도우며 정착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컴패션에서 돕고 있는 개발도상국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건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매캐한 매연과 황폐한 산야입니다. 이들 산이 황폐한 것은 돈 안 들이고 난방과 취사를 할 수단이 벌목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이 많은 도시 인근은 안타까울 정도로 버석버석하게 마른 황토가 다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면 따라오는 게 있습니다. 나무가 없는 나라는 흙과 물을 땅에 잡아 둘 수 없어 어김없이 태풍, 홍수, 가뭄 등 재난재해에 시달려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산이 황폐해졌을 때 겪었던 일들이지요. 태국 정착촌에서 소수 민족이 삶의 방식을 바꾸느라 너무 힘들어 정착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죽음에까지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을 희망 삼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