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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선 바라는 김정은, 예전엔 티냈지만 지금은 '조용'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뉴시스]

북한이 미국 대선(11월 3일)을 앞두고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희망하는듯한 메시지를 내놓던 북한은 최근 들어 미국 대선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며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대비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당선 시 북한의 대미 협상 공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만큼 트럼프의 재선을 바라는 북한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란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할 일은 다 한 北, 위로 친서에 도발도 자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열린 당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열병식이 진행 중인 광장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경례하듯 들어 보이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열린 당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열병식이 진행 중인 광장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경례하듯 들어 보이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 대선 레이스에서 열세에 몰리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그의 재선을 위해 은근히 힘을 실어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일(현지시간) 새벽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자, 하루도 안 돼 위로 친서를 보내고 이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200자 원고지 한장 분량의 위로 전문에서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두 정상간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좋은 일(2020년 8월 7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기자회견)”이라며 자신의 대북 협상력을 과시해 온 것에 힘을 실어준 친서였다.

특히 김 위원장이 코로나19에 감염된 해외 정상에 친서를 보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도 위로 전문 공개 닷새 뒤 이 친서를 언급하며 “북한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향해 위로의 뜻을 표현한 것은 (2001년) 9ㆍ11 당시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또 과거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강행해왔던 군사적 도발도 이번 대선에서는 자제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에 대한 협상 레버리지를 확보하기 위해 11월 3일 대선 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의 군사적 도발을 우려했지만, 북한은 지난달 10일 열병식에서 해당 무기를 공개하기만 했다.

◇노골적 “좋은 성과 있길”→신중·자제 모드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 속내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는데 최근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지난 7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대미 담화에서 “(김정은) 위원장 동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대선)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자신의 인사를 전하라고 하셨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기원하는 말을 곁들였다. 미국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선을 그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미국 대선에 대한 언급을 일절 삼가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에서도 김 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사랑하는 남녘 동포와 굳건하게 손 맞잡길 기원한다"며 대남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미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와 관련, 바이든 후보 당선으로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 북·미 협상을 이어가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대선을 이틀 앞둔 1일 북한 대외용 주간지 통일신보도 ‘사대 굴종 외교의 후과’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혈맹이라는 미국으로부터 갖은 모멸과 냉대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비난하면서도 미국 대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톱다운 방식', 北 협상 공간 넓혀    

미국 대선의 두 주인공: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AP=연합뉴스]

미국 대선의 두 주인공: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김 위원장과의 친밀한 관계를 내세운 '톱다운 방식'의 협상 기조를 유지해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되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바로 진행하겠다고 밝혀 북·미간 협상에도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 이유다.

그러나 바이든 후보의 경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전망이다. 또 섣부른 정상회담보다는 깐깐한 실무 협상에 방점을 두며 보다 체계적인 협상 방식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바텀업(bottom-up)' 방식의 협상에서는 북한의 외교적 공간이 넓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지난달 27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로 열린 '한·중·일 평화포럼'에서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톱다운' 방식의 트럼프식 개인 외교를 재검토해 '바텀업' 방식의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외교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적인 재검토(policy review) 절차가 뒤따를 것"이라며 "바이든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을 김 위원장 자신도 알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간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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