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사업이 도중에 차질을 빚은 것은 시화호 영향이 컸다. 1994년 시흥과 화성을 잇는 12.7km의 방조제가 완공되고 물을 가두자 곧바로 썩기 시작했다. 주변 공단에서 배출되는 산업폐수를 제대로 정화하는 대책 없이 담수화를 했기 때문이다. 1996년 물고기 수십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해 떠올랐다.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화호는 환경오염의 대명사가 됐다.
1991년 공사가 시작된 새만금도 죽음의 호수가 된 시화호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공포가 엄습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극렬히 반대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공사는 중단됐고, 하염없이 세월은 흘렀다.
그런데 새만금 사업이 중단된 사이, 김대중 정부는 시화호의 담수화를 포기했다. 닫힌 갑문을 여는 것으로 부족해 추가로 배수갑문을 설치했다. 이왕 방조제 일부를 트는 김에 조력발전소를 만들어 해수 유통량도 늘리고 전기도 만들기 시작했다. 2011년 완공된 조력발전소의 발전량은 소양호 수력발전량의 1.5배에 이른다. 바닷물이 유통되면서 수질이 개선되자 물고기와 철새가 돌아왔고, 수변 환경이 살자 생태 지역이자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에 따른 결과다.
이 때문에 절대 따라가선 안 되는 사례로 꼽히던 시화호가 새만금의 롤모델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세월의 역설이 어떻게 결론 맺을지 관심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