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공무원 피살 사건의 진실, 바다에 감출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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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류제화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류제화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가을바람은 종잡을 수 없다. 연평도 앞바다는 이맘때쯤 꽃게잡이가 한창이다. 때를 놓치면 꽃게는 자취를 감춘다. 연평도 어민들은 촉각을 곤두세워 바람과 조류를 살핀다.

북, 비무장 민간인 잔인하게 총살 #청와대가 무슨 조치 했나 밝혀야

499t급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는 불법 어선들을 단속하는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야간 당직 근무 중이던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8급 공무원 이모(47)씨는 지난 9월 21일 새벽 1시 35분 문서 작업을 한다며 조타실을 나섰다. 그리고 새벽 2~3시 무궁화 10호에서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연평도 남방 2.2㎞ 지점,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연평도 바다는 유속이 매우 빨라 사람이 한 번 바다에 떨어지면 순식간에 100m 이상 흘러갈 정도였다고 연평도 어촌계장은 국회에 출석해 증언했다.

이씨는 공직에 자부심이 강한 대한민국 공무원이었다. 고2 아들은 원양어선 선장으로 일하다 늦깎이 공무원이 된 아빠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손편지에서 밝혔다.

이씨는 표창장을 모두 네 번이나 받은 모범 공무원이었다. 해경은 “(이씨가) 도박 빚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했다”며 소설 같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사자명예훼손 감이다.

실종 다음 날인 22일 오후 3시30분 황해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이씨를 발견해 북한군에 인계했다. 무궁화 10호 이탈 추정 시점으로부터 약 36시간 지난 뒤였다. 김정은의 전통문에 따르면 이씨는 북한군에게 자신을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이씨를 배에 태우는 대신 장장 6시간을 바다에서 끌고 다니다 끝내 총살했다.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잔인하게 불태웠다.

합참은 지난 9월24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실종자 이씨가 22일 오후 북한군에 억류됐다는 사실은 감청 등을 통해 합참에 포착됐고 곧바로 국방부에도 보고됐다. 국방부는 그날 오후 6시36분 청와대에 그 사실을 서면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이씨가 북한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아 사망할 때까지 약 3시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는지는 아직 알려진 게 없다.

다만 대통령은 피살 엿새 뒤인 9월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북 간의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군사통신선을 통해 연락과 소통이 이뤄져야 남북의 국민이나 선박이 해상에서 표류할 경우에도 구조 협력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남북은 국제상선 통신망을 통해 상시 통신이 가능하다.

국가의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는 그저 보기 좋으라고 써놓은 글이 아니다. 국가는 근원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정부는 이씨의 생존 사실이 알려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이씨가 피살된 오후 9시 40분까지 약 6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대통령은 청와대로 보고가 들어온 그 날 오후 6시 36분부터 이씨가 피살된 오후 9시 4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미 드러난 책임과 앞으로 밝혀야할 책임이 분명한데, 세상은 온통 자진 월북을 둘러싼 진실 게임에 빠져 있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지만, 심지어 북한도 인정하는 사실은 하나다. 비무장 상태의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상황을 알고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해결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류제화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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