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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이 만든 당헌 뒤집은 여당의 서울·부산시장 공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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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전 당원 투표를 어제 끝냈다. 오늘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결과를 발표한다. 아마도 당헌을 고쳐 후보를 내야 한다는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거대 여당의 오만과 독주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것인가.

민주당, 오만과 독주의 약속 뒤집기 #당헌 개정에 대한 대통령 입장 뭔가

당헌은 정당의 헌법이다. 민주당 당헌 96조 2항은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내년 보궐선거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생겨난 만큼 여당은 공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 등 주요 여권 인사들이 다짐한 것이 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당 대표 시절 고성군수 재선거 유세에서 “새누리당 전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돼 치러지는 선거입니다.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후보를 내지 말아야죠”라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2017년 당 대표 시절, 자유한국당의 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상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한국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아야 마땅하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했었다.

오죽하면 민주당 소속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국감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권력형 성범죄’는 (후보를 내지 않는) 중대한 사유인가 아닌가”라고 묻자 “중대한 사유가 된다”고 했을까. 범여권인 정의당이 비판하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청년 류호정 의원은 “비겁한 결정을 당원의 몫으로 넘겼으니 민주당은 비겁하다”고 했고, 이낙연 대표의 공천 사유에 대해선 “해괴한 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도 “당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에 대해 국민적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약속 뒤집기가 이미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밀어붙여 법까지 개정해 놓고 손해가 예상되자 약속을 어기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난을 받았다.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며 ‘야당에 거부권을 줬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제는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여당이야말로 추 장관의 과거 발언처럼 후안무치 그 자체다.

당헌 96조 2항은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만들었다. 당장 야당이 어제 “문 대통령도 당헌 개정에 동의하는지 분명히 입장을 밝혀 달라”(김종인 비대위원장)고 압박하는데 뭐라고 답할 것인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박원순·오거돈까지 이번 투표 강행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여당의 인식 수준이 저열한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총선에서 압승했다고 민심이 언제나 자신의 편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한다면 공천 방침을 재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