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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으로 해피엔딩, 이동국 축구인생 2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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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은퇴식에서 다섯 자녀와 함께선 이동국. 5남매는 은퇴하는 아버지를 위해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래 영상을 준비해 공개했다. [연합뉴스]

은퇴식에서 다섯 자녀와 함께선 이동국. 5남매는 은퇴하는 아버지를 위해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래 영상을 준비해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동국(41)이 23년 축구 인생을 해피엔딩으로 마감했다.

프로축구 전북 K리그 최초 4연패 #이, 은퇴경기 풀타임 뛰고 마무리 #부인 이수진씨 은퇴 남편에 편지 #“이젠 아프면 아프다 말해도 돼요”

이동국의 소속팀 프로축구 전북 현대는 1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최종전에서 조규성의 2골(전반 28분, 40분)로 대구FC에 2-0으로 승리했다. 비겨도 우승이었던 전북은 이날 승리로 19승3무5패(승점 60)를 기록, K리그 최초로 리그 4연패를 달성했다. 같은 날 2위 울산 현대(승점 57)는 광주FC를 3-0으로 이겼지만, 전북에 승점 3 뒤졌다. 전북 이동국은 선수로는 마지막 경기였던 이날 풀타임을 뛰었다.

지난 주 이동국은 은퇴를 선언했다. 최종전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체 좌석의 25%(1만201석)만 개방했다. 이동국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팬들이 몰리면서 경기 사흘 전 매진됐다. 온라인에 암표까지 등장했다. ‘라이언 킹’ 이동국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영화 ‘라이언킹’ OST가 울려 퍼졌다. 김민종의 ‘어느날’도 연주됐는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이동국의 애창곡이었다.

이동국은 무릎 부상을 털고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출전했다. 전반 13분 전매 특허인 발리슛을 시도했지만 골키퍼에 막혔다. 이동국의 등번호 20번을 기념하기 위해 팬들은 전반 20분부터 2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서 아빠를 지켜보던 이동국의 자녀 오남매도 함께했다. 이동국은 후반에도 여러 차례 슈팅으로 은퇴 기념골을 노렸지만, 연거푸 막혔다. 비록 골이나 도움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은퇴 경기에서 전북 현대의 우승을 이끈 이동국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전북은 K리그1을 사상 처음 4연패 했다. 이동국의 등번호 20번은 영구 결번됐다. [뉴시스]

은퇴 경기에서 전북 현대의 우승을 이끈 이동국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전북은 K리그1을 사상 처음 4연패 했다. 이동국의 등번호 20번은 영구 결번됐다. [뉴시스]

전북은 2005년 이전까지 만년 하위팀이었다. 최강희 전 감독이 2009년 이동국을 데려왔다. 전북이 강팀으로 올라서는 계기였다. 모기업(현대차)도 매 시즌 운영비로 400억원 이상 쓰는 등 화끈한 투자를 이어갔다. 최종전이 열린 이날 정의선 현대차 회장도 전주성(전북 홈구장 애칭)을 찾았다.

전북은 이날도 트레이드 마크인 ‘닥공’(닥치고 공격)을 펼쳤다. 전북은 이번 우승으로 성남FC(성남 일화 포함, 7회)을 제치고 K리그 통산 최다인 8회 우승을 달성했다. 대기록의 한 획을 이동국도 함께 그었다. 경기가 끝난 뒤 우승 축하행사에 이어 이동국의 은퇴식이 진행됐다.

전북 이동국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식을 마친 후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 이동국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식을 마친 후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은퇴 경기를 앞두고 아내 이수진씨가 현역 마지막 경기에 나서는 이동국에게 편지를 건넸다. 이씨는 전날 눈물을 쏟으며 편지를 썼다고 했다. 미스 하와이 출신 이씨는 이동국과 2005년 12월 결혼했다. 오남매를 낳아 키우며 남편을 내조했다.

이씨는 편지에서 “프로생활 23년, 우리가 함께한 세월도 23년. 어느덧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해온 당신이지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처럼 언제나 사랑한다고 표현해주는 따뜻한 사람. 그 많은 시련과 아픔을 이겨내고 또 다시 일어나는 당신을 보며 ‘독종이야’ 말해왔지만. 사실 그런 당신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러운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자신이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해 팀이 패했을 때도, 경기가 끝나기 바로 전에 굴러 들어온 공이 빗물에 미끌려 골인하지 못해 평생 먹을 욕을 다 먹던 순간에도. 그게 동료 선수가 아닌 자신이여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당신. 후배들이 자신보다 더 오래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선수 생활 할 수 있게 길을 잘 닦아 놓아야한다며 지금껏 뛰어온 당신. 최강희 감독님이 떠날 때도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이 먼저 감독님을 떠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당신”이라고 이어갔다. 이동국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 우루과이전에서 빗물을 먹은 잔디 탓에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쳤다. 최 전 감독은 2018년 직후 중국 프로축구로 떠났다.

이동국과 그의 아내 이수진씨. [사진 이동국 인스타그램]

이동국과 그의 아내 이수진씨. [사진 이동국 인스타그램]

이동국은 지난달 28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시련에 부딪히면 아내가 ‘우리 영화 찍고 있다고 생각하자. 엔딩이 중요한데 마지막에 꼭 웃자’고 위로해줬다. 짜놓은 것처럼 흘러가는 것 같고,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하고 은퇴하는 순간에 제가 있다면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해피엔딩이었다.

이씨는 편지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던 당신의 축구 인생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 누가 눈물없이 당신을 보내줄 수 있을까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은퇴 기사와 팬들 댓글을 읽으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당신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고 얘기한 뒤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했다.

“슈퍼맨 아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제 아프면 아프다 말해도 돼요.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그 무거운 짐도 이제 그만 내려놓아요. 우리가 함께 오랜시간 상상해온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해피엔딩 순간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더 멋진 당신 후반기 인생도 우리 오남매와 함께 멋지게 만들어가요. 당신이라서 참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전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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