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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검사 열명 중 한명 ‘댓글 연판장’…디지털 검란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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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디지털 검란(檢亂·검사의 난)이 진행되고 있다. 나흘 전 평검사의 글에 전·현직 법무부 장관이 협심해 좌표찍기를 하고 보복성 발언을 잇따라 쏟아낸 것이 도화선이 됐다. 1일 현재 댓글 연판장에 실명으로 ‘커밍아웃’한 일선 검사가 300명을 넘어섰다. 전체 검사 2200여 명 중 10%를 넘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 직후 검찰개혁을 명분 삼아 정권을 겨눈 수사를 담당해 온 검사들을 좌천시키고 전례 없는 두 차례 수사지휘권 박탈과 감찰 지시를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도를 드러낸 것에 대해 일선 검사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전·현 법무, 평검사 좌표찍기 협공 #검사들 “평검사까지 보복하나” #“이제 내 문제 됐다” 실명 커밍아웃 #“주말 잊고 일했는데 적폐로 모나”

제주지검 검사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이환우(43·사법연수원 39기) 제주지검 검사가 지난달 28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제목의 글에는 나흘 만인 1일 현재 70여 명의 검사가 실명 댓글을 달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같은 달 29일 이 검사의 과거 의혹 관련 기사를 올리는 속칭 ‘좌표찍기’를 한 뒤 40여 분 만에 추 장관이 협공이라도 하듯 “커밍아웃하면 개혁만이 답”이라는 보복 예고성 답을 내놓은 데 대한 항의 릴레이다. “저 역시도 커밍아웃하겠다. 현재와 같이 정치권력이 검찰을 덮어버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밝힌 최재만(47·36기) 춘천지검 검사의 글에는 239명의 댓글이 달렸다. 최 검사는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사위다.

검사들의 반발

검사들의 반발

일선 검사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실명 ‘커밍아웃’에 나선 배경은 뭘까.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한 추 장관의 공격 범위가 윤 총장과 검찰 조직을 넘어 평검사로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첫손에 꼽힌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때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검찰 조직이 검사들의 주요 가치였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조직보다는 맡은 바 업무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특수통도 아닌 일선 형사부 검사에게까지 추 장관이 과도하게 대응하자 평검사들도 “이제 내 문제가 됐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평검사는 “주말도, 칼퇴근도 잊고 사건과 씨름하는 검사들을 무슨 이유로 적폐라 낙인찍고, 개혁 대상이라고 구분짓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실제 검사들이 느끼는 불합리와 분노는 이프로스에 기재된 것보다 더하다”고 말했다. 검사들의 댓글이 과거 집단행동에 나설 때 돌리던 ‘연판장’과 비슷한 의미라서 디지털 검란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추 장관과 조 전 장관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라임·옵티머스 사건 관련 수사지휘 등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반발에 추 장관은 31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멤버였던 김용민씨가 올린 글을 공유하며 페이스북에 “저도 이 정도인지 몰랐다. 불편한 진실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까지”라고 썼다. 조 전 장관도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선택적 순종과 선택적 반발”이라며 검사들을 비판했다. 특히 그는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2013년과 2015년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조사 등을 언급하며 “유죄 판결이 난 지금, 자성의 글이나 당시 수사 책임자 및 지휘라인에 대한 비판은 왜 하나도 없냐”고 질타했다. 이어 “과거엔 ‘대선배의 지도편달’이라더니 왜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공식적 지휘를 했을 때만 ‘검란’이 운운되는 것인가”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검사는 “지금까지 어떤 법무장관도 평검사를 상대로 공개적으로 보복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며 “이걸 선택적 반발이라고 하는 건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MB, 김학의 잡아넣은 게 검찰입니다. MB, 김학의 잡아넣은 검사들 잡는 게 추미애, 조국이고요. 그래서 반발하는 게 아닐까요?”라고 반박했다.

여권 인사들도 평검사 비난에 가세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페이스북에서 “검사들의 ‘나도 커밍아웃’이 유행”이라며 “국민은 ‘자성의 커밍아웃’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30, 31일 연이어 “100명도 좋고, 200명도 좋다. 어차피 검찰개혁 본류에 들어서면 검사들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힐난했다. 커밍아웃 검사들 다 나가도 좋다는 취지였다.

윤석열 내일 진천 방문, 메시지 주목

디지털 검란이 실제 검란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2012년 한상대 검찰총장을 축출한 검란 때는 검사들이 평검사회를 열고 연판장을 돌려 직접 서명했지만 지금은 집단행동 방식에도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법률 시장 내 경쟁이 치열해져 변호사로 개업해도 녹록지 않다. 검찰 조직이 추미애 사단과 윤석열 사단으로 갈라져 한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정치권력에 의해 검찰은 와해됐고 장악됐다”며 “예전엔 대검 중수부 폐지 등 이슈가 있을 때 외부 세력에 한목소리로 대응했으나 지금은 반쪽씩 갈려 있어 쉽지 않다”고 관측했다.

윤 총장은 오는 3일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 간다. 초임 부장검사 대상 강연을 위해서다.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도 이곳에 근무 중이다. 며칠 전 대전고·지검 방문 시 검찰 수사관이 윤 총장에게 “총장을 볼 때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무소가 떠오른다. 무소는 뿔이 두 개다. 큰 뿔은 총장이 맡되 작은 뿔은 우리가 맡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어떤 메시지로 화답할지 주목된다.

조강수 사회에디터, 강광우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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