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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미국 정치권까지 간 ‘LG·SK 배터리 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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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7일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트럼프는 한국 분쟁에서 빠져야 한다(Trump Should Stay Out of Korean Dispute)’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LG, WSJ 기고문서 트럼프 거론 #SK도 미국 내 전방위 여론전 #“최대 수혜자는 미 로비스트” 분석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SK이노베이션과 전기차용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는 LG화학 임원 명의의 글이었다. 글의 요지는 ITC가 오는 12월 10일 SK이노베이션 패소를 결정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아직 나오지 않은 ITC 최종 결정을 가정하고, 그 이후 트럼프 대통령 행보까지 짐작한 뒤 의견을 제시한 셈이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민감한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한, 소송 당사자인 기업인의 글은 눈길을 끌었다.

LG 임원의 글은 WSJ 칼럼니스트가 쓴 칼럼에 대한 독자투고 형식이었다. 앞서 WSJ 칼럼니스트는 “우리 모두 트럼프가 미국 일자리를 위협하는 가혹한 결정을 무효로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통령은 그럴 권리가 있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고, 마땅히 그래야 하며, 그렇게 되기 전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 합의하는 게 좋다는 취지의 칼럼이었는데, 이를 반박한 기고문이었다.

일단 워싱턴에서는 LG 임원의 글이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 임원은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안 되는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법을 위반한 한국 기업이다. 지식재산권을 훔치고 한국인의 불법 노동력으로 조지아주 공장을 짓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 [SK이노베이션 제공]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이 워싱턴을 무대로 전방위 여론전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측은 “조지아주에 짓는 배터리공장이 2024년 완공하면 일자리 2600개를 만들고, 인근 테네시주 폭스바겐 공장과 미시간주 포드공장 일자리에도 영향을 준다”는 주장으로 미 정치권을 설득하고 있다.

문제는 두 기업의 과열된 신경전이 단순히 소송전의 승패 여부뿐 아니라 미 정치권의 이해로까지 폭넓게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회사 모두 트럼프 재선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경합주, 특히 초박빙 접전이 벌어지는 곳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소송전의 최대 수혜자는 양측의 편을 들어주는 미 정치인과 워싱턴의 로비스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 대선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워싱턴을 무대로 한 진흙탕 정치 여론전이 향후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는 가늠하긴 힘들다. 다만 그게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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