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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디다스·H&M·안다르 사로잡은 ‘실’의 비결은?

중앙일보

입력

홍진호 효성티앤씨 패션디자인센터 센터장이 효성의 원사로 브랜드와 협업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책상위에 안다르와 함께 만든 '리업페이스 마스크'가 놓여있다. 이소아 기자

홍진호 효성티앤씨 패션디자인센터 센터장이 효성의 원사로 브랜드와 협업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책상위에 안다르와 함께 만든 '리업페이스 마스크'가 놓여있다. 이소아 기자

옷은 상표(브랜드)로 기억된다. 실을 떠올리며 옷을 고르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런 점에서 효성그룹은 새로운 실험을 진행 중이다. 원사→원단→염색가공→봉제→브랜드(패션유통)로 연결되는 의류산업의 공급사슬에서 중간 단계를 줄여 시작점인 실과 도착점인 브랜드를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다.

지난 29일 서울 마포 효성 본사에서 만난 홍진호 효성티앤씨 패션디자인센터장은 “전 세계 브랜드를 상대로 ‘A란 실을 가지고 이런 기능을 가진, 이런 디자인과 스타일의 옷을 만들 수 있다’고 가이드를 주는 것”이라며 “B2B(기업간거래) 기업이 세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사업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스판덱스? 크레오라?…뭐가 다르지

지난 2018년 6월 문을 연 패션디자인센터는 소재·중공업 등 B2B 사업이 많은 효성에서 다소 생소한 이름의 부서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우리 사업은 B2B가 많아 이미지가 너무 딱딱하다. 원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보자”고 제안해 만들어졌다.

일례로 스판덱스는 유명해도 효성의 크레오라를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스판덱스는 고무처럼 신축성이 좋은 폴리우레탄 합성섬유인데 미국의 듀폰사가 만든 스판덱스 브랜드가 ‘라이크라’고, 효성의 스판덱스 브랜드는 ‘크레오라’다. 크레오라는 세계 시장 점유율 32%인 1위 스판덱스다.

조 회장은 평소 관심이 많던 홍콩의 리앤풍을 언급하며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주문했고 이곳 출신의 홍진호 센터장이 수장을 맡았다. 리앤풍은 세계 각국 브랜드의 주문을 받아 디자인·원자재조달·제조관리·운송 등 일련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글로벌 의류소싱 기업이다. 효성은 크레오라(스판덱스)·에어로쿨(폴리에스터)·아쿠아엑스(나일론) 등의 원사 브랜드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리업 페이스 마스크(reup face mask)’. 사진 안다르

‘리업 페이스 마스크(reup face mask)’. 사진 안다르

최근 출시한 운동용 마스크 ‘리업 페이스 마스크’는 의류 브랜드와 직접 협업한 대표적 사례다. 효성은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자 지난 3월 마스크 개발에 들어갔다. 항균 기능을 가진 폴리에스터 ‘에어로실버’와 냄새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크레오라’를 사용했다. 요가·필라테스복으로 유명한 국내 기업 안다르는 이 마스크에 만족해했고 지난 8월31일 출시 이후 네 번째 재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마스크 포장지엔 ‘안다르-효성티앤씨’ 로고가 붙었다.

물론 모든 공정을 효성이 다 처리하는 건 아니다. 일단 계약이 성사되면 원단제조와 가공, 봉제 등 다양한 업체를 연결해 작업한다. 홍 센터장은 “브랜드와 직접 만나서 일하기 때문에 어떤 옷을 원하는지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이 훨씬 정확하다”며 “수주가 늘고 공정이 투명해지면서 협력사들과 윈-윈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똘똘한 한 벌’ 찾는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가 남미 카우보이들과 함께 파타고니아 지역의 댐 건설 반대에 나선 모습. 사진 라이팅하우스

친환경을 지향하는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가 남미 카우보이들과 함께 파타고니아 지역의 댐 건설 반대에 나선 모습. 사진 라이팅하우스

홍 센터장은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유통이 확산하면서 유통 구조는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며 “중간 유통망 없이 소비자와 제조사가 바로 연결되면 가장 마지막에 남을 분야는 머티리얼(소재)”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결정권이 강해질수록 소재가 좋은 옷이 알려져 선택을 받고, 브랜드들도 옷의 품질을 결정하는 원사에 주목할 거라는 얘기다.

소비자 파워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큰 흐름으로는 ‘친환경’과 ‘기능’을 꼽았다. 홍 센터장은 “20~30대 밀레니얼·Z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친환경에 민감하다. 시장 조사를 해보면 조금 비싸더라도 환경을 해치지 않고 생산한 옷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브랜드들도 앞다퉈 친환경 기업임을 내세우고 있다.

파타고니아, 환경보호 위해 무료 수선 제공

독일의 아디다스는 2024년까지, 스웨덴의 H&M은 2030년까지 재활용 소재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재를 100%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패션브랜드 에버레인은 2021년까지 100% 재활용 섬유를 사용하고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아예 ‘환경 보호를 위해 옷을 사지 말고 수선해 입으라’며 무료로 수선 서비스를 하는데 그럴수록 매출은 늘고있다.

효성도 친환경 제품인 ‘리젠’에 역량을 쏟고 있다. ▶폐플라스틱에서 뽑은 원료로 실을 만들고 ▶제조 과정에서 버려진 소재를 활용하고 ▶버려진 옷이나 현수막으로 새 제품을 만들고 ▶옥수수·쌀겨 등 자연에서 뽑아낸 원료를 사용하고 ▶토양에서 썩는 생분해 원사를 개발하는 일이 모두 친환경 제품에 포함된다. 브랜드와의 직접 협업 구조로 친환경 부문은 탄력이 붙어 지난해 대비 매출이 30~40% 늘었다. 안다르와 만든 마스크도 빨아서 다시 쓸 수 있는 재질이다.

효성, 2025년까지 제품 40% 친환경으로 

홍 센터장은 “환경 친화적이면서 편안하고 기능이 좋은 ‘똑똑한 한 벌’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면서 "2025년까지는 제품군의 40% 정도를 친환경 섬유나 원사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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