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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듯 만들어"···37년 걸린 솔로앨범 들고 돌아온 김창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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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소릴 멈추고 커텐을 내려요/ 화병 속에 밤을 넣어 새장엔 봄날을/ 온갖 것 모두 다 방안에 가득히/ 그리고 둘이서 이렇게 둘이서”
가수 김창완(66)이 꼽은 ‘내 인생의 노랫말’입니다. 1977년 김창완·김창훈·김창익 삼형제의 이름을 알린 산울림 데뷔곡 ‘아니 벌써’부터 그해 시작된 대학가요제에서 샌드 페블즈에게 대상을 안겨준 ‘나 어떡해’(1978), 후배 아이유와 함께 다시 부른 ‘너의 의미’(1984) 등 숱한 히트곡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의 선택인데요.

[내 인생의 노랫말]

그는 2집 수록곡 ‘둘이서’를 고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래 생각하는 것을 터부시하는데 ‘둘이서’가 딱 생각이 났어요. 지금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인의 벤치’ 같은 곡을 만들었는데 그때 당시 ‘둘이서’는 행복이 만들어낸 음악 같아요. 사랑에 빠진 어떤 청년의 소망인지, 고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두 곡을 한번 비교해볼까. 나도 처음 해보는 거야.”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노래하는 김창완. 그가 가장 자주 서는 무대 중 하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노래하는 김창완. 그가 가장 자주 서는 무대 중 하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터뷰 내내 기타를 쥐고 있던 그는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노인의 벤치’는 지난 18일 발매된 솔로 앨범 ‘문’의 타이틀곡입니다. 1983년 ‘기타가 있는 수필’ 발매 이후 “일기 쓰듯이, 달력 넘기듯이 만들면 되겠지” 하고 미뤄뒀다가 37년이 걸린 솔로 앨범입니다. 내겐 여신 같던 그녀를 다시 만난 노인은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시간’)가 되어 나지막이 조언을 건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 중에 ‘꿈’(1983)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왕자와 공주에 비유한 이야기인데, 내가 혹시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런 게 있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노인의 벤치’에서는 그 사람들이 현현해요. ‘꿈’에 등장하는 화자가 노인이 되어서 나타난 거죠. ‘시간’에서 유치한 동화책은 일찍 던져버릴수록 좋다고 한 건, 아름다운 사랑이 다른 곳에 있을 것이란 환상을 버리라는 뜻이에요. 지금 당신이 가진, 지금 하는 그 사랑이 전부라는.”

30일 공개된 SBS 파워FM ‘아름다운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20주년특집 언택트 미니 콘서트. ‘재택근무’ 콘셉트에 맞춰 김창완 자택에서 선우정아, 잔나비 등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불렀다. [사진 SBS]

30일 공개된 SBS 파워FM ‘아름다운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20주년특집 언택트 미니 콘서트. ‘재택근무’ 콘셉트에 맞춰 김창완 자택에서 선우정아, 잔나비 등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불렀다. [사진 SBS]

그의 이야기는 어느 한 곡에 갇히는 법이 없었습니다. 산울림에서 김창완밴드로, 때론 홀로 조금씩 모양이 바뀌었을 뿐 넘실넘실 흘러갔습니다. 당신 얼굴을 보니 ‘백일홍’(1995)이 떠오른다며 “언제나 피고 지는 꽃들 사이를 걸을 수만 있다면”을 불렀고, ‘청춘’(1981)을 청하자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을 곱씹었습니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끝나기 무섭게 차기작 ‘낮과 밤’ 촬영에 들어가고,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20주년을 맞은 바쁜 와중에도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부지런해지고 싶으면 아침에 즐거운 일을 만들라고 하잖아요. 저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아침창’ 가는 게 그렇게 즐거워요. 어쩌면 그렇지 20년을? 지겨울 법도 한데. 곡과 곡 사이, 이동할 때, 잠 청할 때 그런 자투리 시간을 모아 모아서 써요. 성냥의 불씨를 계속 태우고 있으니까. 그게 원동력인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영상=정수경·이경은

내 인생의 노랫말

가수들이 직접 꼽은 자신의 노랫말입니다. 시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가수와 청중에게 울림이 컸던 인생의 노랫말을 가수의 목소리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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