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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경찰서 소속이냐고? 아뇨, 전 곤봉 버린 '대화경찰'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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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대화경찰' 서상훈 경위(왼쪽)가 집회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대화경찰' 서상훈 경위(왼쪽)가 집회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경찰서 서상훈 경위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화경찰’ 서상훈 경위입니다. 집회 현장 혹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대화경찰’이라고 적힌 형광 조끼를 입고 있는 경찰관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조끼를 입고 있는 게 바로 접니다. 가끔 “대화 경찰서 소속이냐”고 묻는 분도 있어요. 그건 아니고요. 저는 종로경찰서 정보과 소속입니다. 지난 2018년 10월부터 집회 현장을 책임지는 일선 경찰서 정보관들이나 경비 경찰들이 대화경찰로 활동하고 있죠. 전국에 저와 같은 대화경찰은 1600명 정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냐고요? 대화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경찰과 시민들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집회 시위 현장에서 일정 조율부터 관련 정보 수집까지 저희의 몫입니다. 예전엔 정보관들이 사복을 입고 집회 주최 측 옆에서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정보를 수집하곤 했지만, 지금은 대화를 통해 양지에서 정보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대화경찰'이 한 집회 참가자와 악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대화경찰'이 한 집회 참가자와 악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저는 집회 현장에서 되도록 선글라스나 모자도 착용하지 않으려고 해요.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리면 위압감을 느끼는 시민들 분이 계실까 봐서요. 대화경찰을 하다 보니 제 말투도 바뀔 수밖에 없더군요. 집회를 자주 나오시는 분들은 이미 얼굴이 익숙해요. 그래서 “선생님 또 나오셨어요?” 혹은 “어머님 오늘도 나오셨네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그럴 때마다 그분들도 살갑게 인사를 받아주시곤 해요. 일부 경찰들은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스피치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지난 8월 집회 현장에서 저와 가까이서 대화했던 목사님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는 일도 있었어요. 다행히 저는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요. 추후 그 목사님께 “우리 경찰들은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나 때문에 경찰들이 고생이 정말 많다”며 따뜻한 말씀을 건네주시기도 했죠. 항상 집회 참가자분들과 가까이 소통을 하다 보니, 올해만 코로나19 검사를 세 번이나 받았답니다.

지난 9월 여의도에서 열린 '유흥주점 2차 재난지원금 제외 규탄 기자회견'에서 대화경찰이 집회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여의도에서 열린 '유흥주점 2차 재난지원금 제외 규탄 기자회견'에서 대화경찰이 집회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항상 이렇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며칠 전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데 한 분이 옆에서 욕을 하면서 회견을 방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즉시 저희가 이동을 시켰는데, 그때 저를 발로 차시더라고요. 예전엔 바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하겠습니다”라고 했겠죠. 하지만 이젠 최대한 법률 용어 대신 조금 더 쉬운 단어를 쓰면서 다가가요. “선생님, 자꾸 이러시면 가족들이 불편해합니다. 자꾸 이러시면 처벌받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이죠.

그렇다고 불법 행위를 마냥 묵과하는 건 아니에요. 폭행 피해자가 발생했거나 명백한 불법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인근 파출소로 인계해 법적인 처벌을 내립니다. 다만, 작은 마찰은 최대한 대화로 해결하고, 시민들도 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이런 활동 덕분일까요. 현장에서 다치는 경찰들도 줄고 있어요. 2015년엔 집회 도중 다친 경찰이 총 302명이었는데 지난해엔 78명뿐이었답니다. 요즘엔 집회 현장에 가면 “대화경찰은 어디있느냐”며 저희를 먼저 찾아주는 분들도 많아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내려가면서 서울 곳곳에서 다시 집회들이 시작되고 있는데, 경찰은 안전한 집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 마시고 앞으로도 편하게 대화경찰을 찾아주세요.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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