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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세일즈와 판매의 차이점, 뭘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경랑의 4050세일즈법(31)

이사를 앞둔 20년 차 주부 김 모 씨. 요즘 건조기가 유행이라기에 가전 매장 앞을 지나다 잠시 들렀다. 빨래를 탁탁 널어 햇빛에 말리는 게 좋은데, 굳이 저렇게 커다란 물건을 또 하나 집에 들여다 놓아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장에서는 전담 직원이 건조기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좋긴 참 좋아 보인다. 빨래를 널지 않아도 되고, 세탁기 위에 얹으면 그리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가격이 좀 부담된다. 덜컥 구매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프로모션도 있다 하니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도 여기저기 비교도 해야 하고, 오늘 구매를 결정하는 건 섣부른 듯하다.

한 달 후 이사를 하면서 결국 건조기를 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더 생각하고, 그때 사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브랜드 제품도 알아보았고 후기도 조사했는데, 꼭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고 말이다.

"멋진 가구 하나보다 빨래 건조대를 없앨 수 있는 건조기 한 대가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직원의 멘트에 20년 차 베테랑 주부인 김 씨는 이제야, 건조기를 사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사진 pxhere]

"멋진 가구 하나보다 빨래 건조대를 없앨 수 있는 건조기 한 대가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직원의 멘트에 20년 차 베테랑 주부인 김 씨는 이제야, 건조기를 사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사진 pxhere]

이사한 지 두달가량 지났을 때 다른 가전 매장에 청소기를 사러 들어갔다. 청소기를 판매하는 직원이 갑자기 새로 이사한 집에서 불편한 점은 없냐고 물었다. 이사한 집은 베란다도 없고, 거실이 좀 좁은 것 같지만 그것 빼고는 괜찮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거실의 면적은 사실 대부분 ‘시선처리’에서 오는 부분이 큽니다. 혹시 거실에서 빨래를 말리고 계신가요? 만약 그러시다면 실제 면적에 비해 많이 좁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만….”

이어지는 직원의 멘트 “이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새로운 집에서 그 전 집과는 다른 특별한 만족감을 느끼시는 게 어떠세요? 멋진 가구 하나보다 거실에서 빨래 건조대를 없앨 수 있는 건조기 한 대가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세탁과정이 효율적으로 변하는 것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머무는 공간이 더 안락해지는 것 때문에 많은 고객께서 선호하시는 거지요.”

20년 차 베테랑 주부인 김 씨는 이제야, 건조기를 사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물론 이 스토리는 가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분명 실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기술의 혁신이 더 이상 놀랍지 않고, 낯설던 다양한 기술이 우리 생활 곳곳에 파고들고 있어 우리의 적응력도 빨라진다. 그래서인지 많은 제품과 서비스 모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주장하며 서로 경쟁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 해결 전에 사실은 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문제’가 ‘문제’라고 느끼는 과정이다. 이를 우리는 ‘니즈’라고 표현한다. 건조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니즈’일까? 물론 ‘필요’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니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크게 보면 이렇다. ‘집안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싶다’, ‘집안의 공간을 좀 더 깔끔하게, 넓게 사용하고 싶다’,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 ‘더 깨끗하게 세탁하고 싶다’,‘아내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등의 니즈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건조기’의 등장에 임팩트는 떨어진다. 그다지 대단한 솔루션이 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세일즈는 고객과 ‘니즈’를 이야기하는 일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솔루션’만 이야기하는 것은 세일즈가 아니라 ‘판매’라고 명명해 보겠다. 판매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제공하면서 설명하고, 계산하는 서비스다. 세일즈는 고객과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함께 개발, 발견, 강화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하는 또 다른 업무다. 물론, ‘판매’의 과정에도 세일즈의 개념이 결합한다면, 고객은 동일한 제품을 사더라도 더 큰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세일즈도 제품을 설명하고, 이후의 서비스를 제대로 진행할 때 비로소 매출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세일즈의 역할은 판매의 개념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 해결 전에 사실은 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문제’가 ‘문제’라고 느끼는 과정이다. [사진 pxfue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 해결 전에 사실은 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문제’가 ‘문제’라고 느끼는 과정이다. [사진 pxfuel]

약한 니즈를 기반으로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해도 고객이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과 니즈에 대해 대화를 해 고객 니즈에 관심을 가진 후 솔루션을 제시하면 고객 구매의 확률을 높이고 동시에 고객의 만족도는 더 커지게 된다. 특히 고가의 제품이나, 필수품이 아닌 경우 등 관여도가 높은 제품의 구입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한 실전에서의 니즈는 고객 관점이 없이는 제대로 발견하고, 개발하며, 강화하기 어렵기에 고객 접점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온라인, 비대면의 시대라는 말을 1년 내내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니즈’에 대한 접근보다 ‘솔루션’에 대한 접근이 더 주목받는 것처럼 보인다. 니즈가 있는 고객이 우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다양한 제품 디자인, 홍보 메시지, 유통 경로와 과정을 찾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좀 다르다. 결국 혁신은 ‘니즈’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빠르게 배송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솔루션이 아니라 언제나 쉽게 원하는 주문을 하고, 물건을 받고 싶은 니즈에 대한 솔루션이다. 여러 SNS에서 거부감 없이 우리의 클릭을 잘 유도해내는 쇼핑몰 광고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콕 찔러 자극하고 있다. 솔루션을 찾아 클릭하고 있지만, 우리가 자극받는 점은 우리의 ‘니즈’다.

상대방을 ‘흥분’ 시키고, 제품 구입 후의 만족감을 ‘상상’할 수 있으려면 솔루션만으로는 허망하다. 코로나 사태로 여러 기업에서 본격적으로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고객 접점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귀해졌으니 더 그렇다. 이는 단순히 ‘매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클릭 하나로 못 사는 것이 없는 시대에 어떻게 고객과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고객을 이해하여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가 그 어느 때보다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다가온다.

기업의 차별화를 만들고, 고객의 만족을 높이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제품은 모두 ‘니즈’에서 출발한다. 제품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과정뿐 아니라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현장에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내가 팔려고 하는 것이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는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과정을 거친 후에 진행되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이 바로 고객의 니즈를 발견하고, 개발하며, 강화하는 절차일 것이다.

직장에서 새로 도입되는 좋은 협업의 툴과 IT 솔루션 사용을 권장하기 전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진 pxhere]

직장에서 새로 도입되는 좋은 협업의 툴과 IT 솔루션 사용을 권장하기 전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진 pxhere]

경쟁은 치열하고, 고객은 더 예민하고, 차별화는 어렵다. 게다가 가성비, 가심비를 이야기하는 시대이지 않은가? 비즈니스 현장뿐 아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학원, 좋은 교재를 권하기 전에 공부하는 의미에 대해 대화를 해야 한다. 직장에서 새로 도입되는 좋은 협업의 툴과 IT 솔루션 사용을 권장하기 전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책과 제도가 어떤지를 설명하기 전에 그 정책과 제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지, 무엇을 위해 다양한 변수를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니즈에 대한 이야기가 없이 제시되는 솔루션은 ‘비교’ ‘평가’ ‘의심’ 등의 장애물을 거쳐야 한다.

누군가를 이해시키고 설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대방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대방의 ‘니즈’를 주도적으로 끌어내야만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SP&S 컨설팅 공동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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