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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하마’에 안 속으려면 클릭 말고 생각을 깨워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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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호 22면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가짜 콘텐트 부수기

미디어 리터러시 캠페인 영상에 등장한 가상 동물 캐릭터 인 가정집 하마. [사진 미디어스마트]

미디어 리터러시 캠페인 영상에 등장한 가상 동물 캐릭터 인 가정집 하마. [사진 미디어스마트]

“3700만 캐나다 국민이 잠든 저녁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집에 숨어 있던 하마가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손바닥 크기의 이 하마를 목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하마는 애완동물의 단잠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작은 하마를 다시 가정집으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옆 사람도 못 믿고 포털 검색 맹신 #왜곡된 성문화·식습관 등 범람 #네티즌 86% “가짜에 속은 적 있다” #1년 중 하루 ‘검색 없는 날’ 설정 #미래 세대 사실 판단법 길러줘야

2019년 가정집 하마라는 가상 동물이 등장하는 아동 청소년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정보 독해력) 캠페인 영상 내용 중 하나다. 캐나다 오타와의 비영리 단체 미디어 스마트(Media Smarts)가 제작했다.

이 캠페인 영상에 등장하는 하마는 1999년 TV 상업광고 내용을 맹신하지 말고 대중 매체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깨우치도록 고안된 캐릭터였다. 당시 캐나다 전역과 미국 동부에서 발견된 작은 하마로 설정된 이 캐릭터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 진짜인지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TV에서 보는 내용을 그대로 믿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질문하는 데 익숙해지자는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기획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어렸을 때 이 영상을 보고 가정집 하마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음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기도 했다. 정보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 하마가 깨어난다?

미디어 리터러시 캠페인 영상에 등장한 가상 동물 캐릭터 인 가정집 하마. [사진 미디어스마트]

미디어 리터러시 캠페인 영상에 등장한 가상 동물 캐릭터 인 가정집 하마. [사진 미디어스마트]

이 하마가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가짜 부수기 (Break the Fake)’ 캠페인을 위해 20년 만에 다시 소환됐다. 그 이유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속을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캠페인을 위해서다. 특히 스마트 기기와 친숙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동 청소년들은 매체를 기능적으로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소비하는 정보를 평가하는 능력은 취약하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친구들과의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접하거나 단순히 포털을 통해 각 매체 특성과 신뢰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뉴스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 많은 국가가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래서 어떤 정보를 공유하기 전에 반드시 뉴스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습관을 키우자는 캠페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정보 출처를 검증하고 사실을 확인하는데 30초 정도면 충분하다. 이 작은 습관을 키워주자는 가짜 부수기 캠페인은 특히 각 초중고교 현장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중요성을 강조한다. 교육은 모든 미디어가 특정한 목적과 관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각자가 인정하고 경계하자는 것에서 시작된다. 소셜 미디어에 넘쳐나는 정보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해당 메시지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떤 표현 기법을 사용했는지, 여론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등에 관한 판단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가짜 부수기 캠페인 상징. [사진 미디어스마트]

가짜 부수기 캠페인 상징. [사진 미디어스마트]

2019년 국제 거버넌스 혁신센터(CIGI)가 전 세계 20개국 2만5000명의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불신한다는 응답자가 75%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중 86%가 한번은 가짜 뉴스에 속았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44%는 자주 가짜 뉴스에 속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가짜 뉴스에 속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은 14%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 사용자들이 느끼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 대한 문제의식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거대 포털과 소셜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투명성 부족과 편향된 정보 유통이다. 또 다른 하나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미디어가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힘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우려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온라인상에서 잘못된 정보를 접하는 것을 폭력이나 사이버 따돌림보다 더 많이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가 통신품위법 230조에 규정된 소셜 미디어 업체의 면책 범위 축소를 통해 콘텐트 규제 강화 논의를 시작한 것도 이런 여론과 무관치 않다.

미디어 스마트는 유튜브 구독이 아닌 구독 취소를 권한다. 특정한 정보의 편식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구독보다 의제별로 신뢰할 수 있는 전문 정보를 탐색하는 방식을 추천했다. 자신이 찾은 정보, 특히 뉴스를 공유하기 전 잠시 멈추고 출처 확인이라는 작은 실천을 강조한다. 특히 코로나 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허위 및 오해의 소지가 있는 온라인 정보와의 싸움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또한,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무언가 공짜인 것처럼 유혹하는 콘텐트를 경험할 때 개인의 관심이나 삶의 방식에 대한 많은 정보가 제공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색적인 미디어 실천 운동이 제안되기도 했다.

‘공짜’ 탈을 쓴 개인정보 탈취 조심

‘구글 검색하지 않는 날’ 캠페인 포스터. [애드 버스터즈]

‘구글 검색하지 않는 날’ 캠페인 포스터. [애드 버스터즈]

2016년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비영리 잡지 애드버스터즈는 ‘구글 검색하지 않는 날(google no search day)’이라는 실천 캠페인에 도전했다. 당시 5월 5일을 구글 검색하지 않는 날로 지정했는데 구글이 우리 삶 속에서 너무 큰 영역을 차지하면서 검색 의존도가 심각하게 커졌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만약 당신의 손끝에 답이 없을 때 당신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자신의 판단과 생각으로만 결정을 내릴 때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단 하루 동안 구글 검색을 사용하지 않고 무언가 결정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도전이었다. 일회성 캠페인이었지만 그들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당시 구글 없는 날을 제안했던 이유는 지배적 정보 서비스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단 하루라도 자신의 본질적 가치에 관해 각성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미래학자이자 작가인 니콜라스 카는 “구글이 우리를 얼마나 어리석게 만들고 있는가?”라고 대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과 사고의 틀이 재구조화하고 있다는 불편함 때문에 시작된 질문이라고 했다. 그가 토로한 자신의 변화는 이렇다. 책이나 긴 기사를 읽으며 자기 내면에서 다양한 논리를 펼치고 논쟁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경험이 서서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독서 시간이 줄었는데 온라인에서의 정보검색과 서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몇 번의 검색과 링크 클릭만으로 정답 찾기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가짜 부수기 캠페인 상징. [사진 미디어스마트]

가짜 부수기 캠페인 상징. [사진 미디어스마트]

시간이 지날수록 갑질, 횡포, 독과점 등과 같은 부정적 어휘들이 소셜 미디어와 포털의 생태계 내에서 넘쳐나지만, 개인의 삶 속에서 검색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 미디어가 주고 있는 영향에 관한 논의는 별로 없다. 개인이 접해야 할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온전한 콘텐트의 가치에 걸맞게 공정하게 공유되는지에 관한 문제 제기는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어리석은 물음이 된 지 오래다. 그 사이 아동 청소년들은 왜곡된 성문화, 잘못된 식습관,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 등 가짜 콘텐트 소비의 부작용과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마주하고 있다. 어느 순간 포털이 찾아주는 정보에 의존하면서 하루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옆 사람의 말도 믿지 않고 오로지 검색 결과만 맹신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책임은 각자 이용자에게 있다. 우리가 뉴스를 걸러내고 댓글에 좌고우면하지 않을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갖추는 것만이 유일한 길 같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사실 판단의 방법만이라도 알려주는 캠페인이다.

캐나다에서는 2016년 구글 없는 날에 도전했고 2019년 가정집 하마를 다시 등장시켰다. 1997년 10월 15일 삼성SDS가 신규사업을 위해 공모로 선정했던 사내 벤처기업 아이템이 바로 검색엔진 웹 글라이더, 지금의 네이버다. 당시와 비교해 그 공간에서 형성되는 오늘날 여론 현실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매년 11월 주말 중 하루는 개인적으로 검색엔진 없는 날로 정하고 잠시 아날로그 삶 속 자신 그리고 아이들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공소통연구소 소장이다. 디자인 씽킹과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캠페인 개발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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