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권투의 ‘기수’…알리 방한 때 웃통 벗고 즉석 스파링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09호 23면

[죽은 철인의 사회] 프로복싱 첫 세계챔피언 김기수

김기수(오른쪽)가 세계타이틀 2차 방어전에서 프레디 리틀을 공격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기수(오른쪽)가 세계타이틀 2차 방어전에서 프레디 리틀을 공격하고 있다. [중앙포토]

1966년 6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 세계권투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와 도전자 김기수의 타이틀매치가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을 위시해 6500여명의 관중이 체육관을 입추의 여지 없이 메웠다. 공동대회장은 대통령 실세였던 차지철 의원과 포항제철 설립자 박태준 회장이었다.

체격·근성 월등, 왼손잡이 파이터 #올림픽 때 패한 벤베누티 꺾고 챔프 #홍수환 등 ‘김기수 키즈’ 황금기 개척 #은퇴 후 빌딩 사 ‘챔피언다방’ 열어 #‘북청 물장수’ 끼 이어받아 승승장구 #간암 투병하다 59세 나이로 별세

1966년은 북한이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박두익을 앞세워 8강에 오른 해다. 자존심이 상한 박 대통령은 “우리도 세계 정상에 갈 만한 종목이 없나”고 다그쳤다. 권투의 동양챔피언 김기수가 가장 근접하다는 차지철의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김기수를 청와대로 부른다. “임자, 자신 있어?” “각하, 젖 먹던 힘까지 다하겠습니다.” 챔피언은 원정 방어전 대가로 무려 5만5000달러의 파이트머니를 불렀다. 1인당 소득 200달러 시절, 그 돈을 정부가 지급 보증해 대결은 성사됐다. 김기수는 치고 클린치하는 지능적인 전술로 2-1(72-69 68-72 74-68) 판정승을 거두며 대한민국 첫 세계챔피언이 됐다.

북청 출신 … 1·4후퇴 때 여수 정착

이기현 김기수기념사업회 대표가 세계챔피언 벨트를 보여주고 있다. 신인섭 기자

이기현 김기수기념사업회 대표가 세계챔피언 벨트를 보여주고 있다. 신인섭 기자

김기수(1939∼1997)는 억척스런 ‘북청 물장수’로 알려진 함경남도 북청 출신이다. 1·4후퇴 때 돛단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전남 여수에 정착해 중학교 때 복싱 선수가 됐다. 다부진 체격과 강인한 정신력, 왼손잡이라는 이점이 보태져 승승장구했다. 서울 성북고(현 홍익사대부고)에 스카우트됐고,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60년 로마 올림픽 8강전에서 아마추어 통산(87승 1패) 유일한 패배를 기록했는데 상대가 바로 벤베누티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벤베누티는 프로로 전향해 자국 라이벌 산드로 마징기를 꺾고 WBA 챔피언이 됐다.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원정을 왔다가 김기수에게 벨트를 뺏긴 것이다. 김기수는 68년 5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마징기와 3차 방어전을 벌였다. 잘 싸웠지만 홈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판정패, 타이틀을 잃었다. 통산 49전 45승(16KO) 2무 2패 전적을 남기고 69년 9월 미련 없이 글러브를 벗었다.

은퇴 후 김기수는 폭넓은 인맥과 짠돌이 정신으로 사업가로 성공했다. 매 맞아 번 돈을 잘 굴려 명동에 4층짜리 빌딩을 사고 1층에 ‘챔피언다방’을 열었다. 국내외 권투인들과 일반 손님들로 다방은 흥성했다. 슬하에 2남2녀를 둔 김기수는 96년 9월 간암 판정을 받았고 이듬해 6월 10일 세상과 이별했다. 59세 한창 나이였다.

챔피언다방이 있던 건물은 5년 전 헐리고 10층짜리로 다시 세워졌다. 이름은 그대로 챔피언빌딩. 2,3층에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이 건물을 관리하는 (주)챔피언상사 이기현(59) 대표는 김기수 선생의 제자이자 김기수기념사업회 대표도 맡고 있다. 그는 이곳에 김기수를 포함한 역대 챔프들의 자료를 모아 한국권투박물관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선생님은 구두쇠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힘든 복싱 후배들을 남몰래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아직도 복싱계 큰어른으로 존경받고 계신 겁니다”라고 그는 회고했다.

1976년 알리 방한 때 김기수가 알리와 이노키의 대결을 재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1976년 알리 방한 때 김기수가 알리와 이노키의 대결을 재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기수 선생과의 인연은?
“제가 천호상고에 적을 두고 신설동에 있는 권일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는데 거기서 선생님 지도를 받았죠. 시골서 상경해 피 냄새 올라오는 링 바닥에서 몇 달을 잤는데 선생님이 명동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셨어요. 대학(강남대 부동산학과)도 선생님 권유로 다녔고, 학비도 지원해 주셨죠. 주말에는 챔피언다방에서 아르바이트 해서 생활비도 벌었습니다.”
다방이 그렇게 잘 됐나요?
“주말에는 서빙하는 사람만 20명에 주방에 남자만 6명이었어요. 커피 한 잔에 350∼400원 할 때 하루 100만원 매상을 올렸으니 지금 기준으로 1000만원 이상이죠. 복싱 관련 트로피·메달 같은 걸 전시했는데 그것도 볼거리였고, 일본에서도 많이 찾아왔죠. 돌아가신 김득구 선배님이 요 앞에서 밤에 포장마차를 했어요. 선생님이 냄새 나는 어물 씻도록 주방도 내주시고 매상도 많이 올려주셨습니다.”

형편 어려운 후배들 일일이 챙겨줘

김기수

김기수

김기수는 어떤 선수였나요.
“힘은 타고났고 집념이 워낙 강해 한번 계획 세운 건 꼭 해내는 분이셨어요. 왼손잡이에다 복부 공격도 잘했고요. 펀치력을 키우기 위해 산에 다니면서 해머로 나무 밑동을 내려치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그걸 박종팔 같은 후배들이 따라 했죠.”
알리와 맞붙는 사진도 있네요.
“무하마드 알리가 76년 6월 도쿄에서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세기의 대결을 벌인 뒤 서울을 찾아 팬 미팅을 했어요. 그때 장내 아나운서가 ‘우리나라에도 챔피언이 있다’며 즉석 맞대결을 부추겼죠. 선생님이 웃통을 벗고 링에 올라 알리와 스파링 비슷하게 한 겁니다.”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죠.
“96년에 간암 판정을 받았는데 수술은 안 하고 치료만 받으셨어요. 다 나았다고 생각하셨는지 활동을 열심히 하셨죠. 선생님이 프로 수준으로 골프를 잘 치셨는데 그날도 골프 끝나고 사우나에서 목욕하시다가 몸이 안 좋다며 세브란스병원으로 직접 찾아가셨어요. 그런데 바로 혼수상태가 오고 그날 돌아가신 거죠. 저희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의료사고 아닌가’ 생각도 했어요.”

챔피언빌딩은 고인의 두 아들 공동명의로 돼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김기수기념사업회는 유망주 장학금, 동양타이틀 획득 시 격려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곳을 대한민국 권투의 메카로 만들고 싶습니다. 자료를 잘 정리해 무료로 개방하고, 큰 경기가 열리면 조인식과 계체량 등 이벤트도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골프에는 박세리 키즈, 야구에는 박찬호 키즈가 있다. 한국 복싱의 황금기를 열었고, 온 국민의 가슴을 뛰게 했던 챔프들도 김기수를 보며 꿈을 키운 ‘김기수 키즈’다.

홍수환 “김기수 선배님 좋아 목욕탕까지 따라갔죠”

복싱 1,2,3호 세계챔프 김기수·홍수환·유제두(오른쪽부터). [사진 김기수기념사업회]

복싱 1,2,3호 세계챔프 김기수·홍수환·유제두(오른쪽부터). [사진 김기수기념사업회]

‘원조 김기수 키즈’는 4전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70·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이다. 홍수환은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으로 김기수와 같은 실향민이다. 김기수가 세계챔피언이 돼 카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홍수환은 챔피언의 꿈을 꾼다.

홍 회장은 “어릴 적 어머니가 참고서 사라고 준 돈으로 김기수 선수 시합을 보러 갔어요. 링사이드에서 보다가 김기수 선수가 이기면 쫓아가서 종아리 막 만지고 그랬죠. 선배님이 운동하시던 을지로 한국체육관에 구경 갔다가 운동 끝나면 은성탕이라는 목욕탕까지 따라갔다니까요”라고 옛날을 회상하며 웃었다.

홍 회장은 김기수 패밀리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1974년 아널드 테일러와 세계 타이틀매치 하러 남아공 가기 며칠 전이었어요. 정동 MBC 방송국 있던 자리에 빵집이 하나 있었어요. 빵을 사서 먹고 있는데 한 여고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아저씨, 홍수환 선수 맞죠? 우리 아빠가 김기수예요’ 이러더라고요. 세계 타이틀매치 하러 가는데 챔피언 딸을 봤으니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죠.”

예감 대로 홍수환은 아널드 테일러를 네 번이나 다운시키며 챔피언에 오른다. 66년 김기수에 이어 8년 만에 나온 대한민국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었다.

홍 회장은 “생전에 선배님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저였어요. 김기수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사분오열된 한국 권투가 하나로 모여야 합니다. 김기수배 대회만 열어도 침체된 복싱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 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