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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불륜 드라마? ‘핏빛 로맨스’에 더 빠져들게 하죠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아티스트 라운지] 뮤지컬 ‘머더 발라드’ 주연 김재범·에녹

뮤지컬 ‘머더 발라드’(11월 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가 돌아왔다. ‘뮤지컬판 부부의 세계’로 통할 만큼 사랑의 유혹과 일탈의 욕망을 대담하게 그려낸 ‘핏빛 로맨스’로, 2013년 국내 초연 때부터 호평 받아온 작품이다. 4년 만에 한층 업그레이드된 무대의 막을 지난 8월 올렸지만, 강화된 거리 두기 조치로 1주일 만에 중단해야 했다. 한 달 만에 재오픈된 소극장에서 띄어 앉기 시행으로 사실상 공연이 어려운 형편이지만, 김재범·에녹·조형균·고은성·김경수 등 ‘대학로 황태자’들이 총출동한 라인업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두 차례 연장 공연이 결정되며 뜨거운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옛 애인 탐 역 김재범 #바에 들른 듯 질펀한 음악 매력 #연기는 해석, 많은 사람 만나야 #착한 남편 마이클 역 에녹 #숨가쁘게 ‘송쓰루’ 연기, 더 재미 #새 장르·캐릭터 만나는 게 공부

뉴욕의 한 술집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살인사건을 다룬 만큼 극장이 곧 술집이라는 컨셉트다. 세트인 바를 둘러싼 스테이지석까지 운영하며 관객을 깊숙이 끌어들이도록 짜여졌다. 하지만 ‘거리 두기’로 인해 훌쩍 멀어진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온전히 배우의 몫이 됐다. 90분간 쉴 틈 없이 송쓰루 뮤지컬의 숨 가쁜 호흡을 끌어가야 함에도, 두 배우 김재범(41)과 에녹(40)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다.

뮤지컬 ‘머더 발라드’의 두 주인공 김재범(오른쪽)과 에녹. 신인섭 기자

뮤지컬 ‘머더 발라드’의 두 주인공 김재범(오른쪽)과 에녹. 신인섭 기자

“배우로서 쉬지 않고 달리다 보면 지치기도 하는데, 진심으로 그런 나를 되돌아보게 됐죠. 한 달 동안 집에만 있으면서 무대에 서고 관객들이 보러와 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하며 지냈어요.”(재범)

“마음이 아주 힘들었어요. 한 주 쉬어보자던 게 계속 늘어나서 4주까지 가니까 ‘이게 되겠어?’ 싶고, 연습하다 없어지는 작품도 있으니까요. 결국 그걸 풀어주는 건 무대밖에 없더군요.”(에녹)

김재범은 탐, 에녹은 마이클 역할을 맡았다. 착한 남편 마이클과의 일상에 지친 여주인공 세라가 자유로운 영혼의 옛 애인 탐을 다시 만나 파국으로 치닫는, 뻔한 불륜 드라마인 데도 몰입도가 상당하다.

“뻔한 게 매력이에요. 음악도 좋고, 진짜 바에 온 듯 빠져드는 매력도 있죠. 사실 무대와 객석 간 경계를 허물고 한바탕 같이 놀게 만든 공연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 매력을 다 발산할 수 없어 아쉽네요.”(재범)

“이런 행동이 상처의 씨앗이 될 수 있고, 살인까지 갈 수 있다. 그러니 상대방한테 잘하라는 단순한 이야기라는 게 매력이에요. 송쓰루다 보니 이야기를 복잡하게 가져가면 이해하느라 즐기지 못하는데, 단순한 이야기에 배우들이 그 감정을 굉장히 농도 짙게 보여주니 지루할 틈이 없죠. 배우들은 좀 힘들긴 해요. 감정 잡을 새도 없이 팍팍 넘어가는데, 그걸로 관객을 납득시켜야 하는 게 우리 몫이니까.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요.”(에녹)

일탈을 꿈꾸는 여자에 대한 두 남자의 대처방식이 다 못마땅한데요.
"저는 마이클에게 굉장히 공감해요. 가장 평범한 남편상이거든요. 세라의 변심은 마이클 탓이 아니라 본인의 가치관 때문일 거예요. 책임감 있는 삶을 위해선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는데, 그걸 간과한 것이죠.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먼저 터놓고 상의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행을 가자던가, 둘째를 낳자던가.(웃음)”(에녹)

"누구나 욕망이 있는데 참고 사는 것이겠죠. 제가 탐이라면 세라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을 겁니다. 너 이러면 안 된다, 집으로 돌아가.(웃음)”(재범) 

발랄한 반전 컨셉트의 커튼콜에 특별한 의도가 있겠죠.
"자, 우리가 해준 얘기 잘 들었지, 이러면 안 돼. 잘 봤으면 이제 재밌게 놀자. 이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바 안에 사람들이 모이는 컨셉트로 만든 건데 나뉘어 버려 아쉽죠. 지난 시즌 야간 공연엔 맥주를 드렸다는데, 지금은 집에 가져가서 드시라고 해요.(웃음)”(재범)

"원래 커튼콜에 관객분들이 올라오셔서 같이 노는 공연이었거든요. 스테이지석이 너무 가까워 불편하지 않았냐구요? 오히려 빈 자리를 보는 게 마음이 불편하죠. ”(에녹)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해에 4~8 작품씩 꾸준히 활동하는 두 사람도 어느새 마흔을 넘겨 고참급이 됐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을 보며 위기감도 느낄 터다.

“‘대학로 황태자’가 아니라 ‘대학로 황태’가 맞습니다.(웃음) 저는 어려서부터 늘 불안했어요. 안정된 직업이 아니니까. 요거 끝나면 다음엔 뭐하지? 오디션 없나 맨날 찾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업이죠. 감사하게도 지금은 여러 개를 하고 있지만, 어느 날 나를 안 찾아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늘 있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재범)

“매 순간 불안한 동시에 책임감도 느끼죠. 이 정도 되니 하나의 컴퍼니에 들어가면 맏형이 될 때가 많거든요.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고 연기도 잘해야 하고. 잘하는 후배들 보면 가끔 질투도 나고 부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 것 때문에 자극이 되니까 나태하지 않게 관리도 하고, 좋은 시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다음 공연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죠.”(에녹)

에녹은 최근 웹뮤지컬 ‘킬러파티’의 촬영을 마쳤다. 코로나 시대에 공연계 불황의 돌파구로 개발된 영상 콘텐트로, 숏폼 형식의 명랑 미스터리 드라마에 뮤지컬 넘버를 입혔다. “코로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컨셉트예요. 배우들은 각자 촬영과 녹음을 따로 하고, 모인 적이 없죠. 살인범을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인데, 배우들은 화면상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연기하고요. 아주 재밌는 작업이었는데, 배우의 예술은 아니더군요. 편집하는 스태프들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에녹)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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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배우의 예술’이란 만남이 시작과 끝이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다른 장르 아티스트처럼 혼자서 도 닦듯 완성할 수 없다. 공연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배우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해요. 만나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얘길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데서 배우거든요. 연기는 해석의 문제니까요.”(재범)

“공연을 하다 보면 항상 새로운 분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되죠.”(에녹)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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